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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콘테스트][부산] 그 선배를 암살하는 법-下-

작성자
월하령
캐릭터
서유리
등급
태스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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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9.07.10
  • view4638

#해운대 #수영복










“죽고 싶습니다, 아니 죽을 겁니다, 지금 깔끔하게 죽어버리면 이 이상 부끄러움을 겪지 않아도 되겠죠?”


“지, 진정해 후배님. 그거 내려놓고, 말로 하자고.”



사람들이 한껏 몰린 곳에서 한바탕 폭탄발언을 터트리고 도주한 파이.
영 마음에 걸린 볼프강이 인적이 드문 곳까지 그녀를 쫓아왔을 때, 그녀는 공허한 눈을 한 채 사검의 날을 들여다보며 위험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한 참이었다.



“아, 선배. 오셨습니까.”


“어, 어어…응.”


“…….”


“야?!”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목에 들이대는 파이를 보고 기겁하는 볼프강.
황급히 달려온 그는 항상 따라붙는 검은 책을 펴고 집게로 집어내듯 사검을 책으로 움켜쥐었다.



[------?!!]


‘시끄러, 이것들아. 냉방 빵빵하게 틀어줬더니 불만이냐!’



순식간에 퍼지는 냉기에 책 속의 사념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지만 사념으로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무시해버리는 볼프강.
지금 책 속에 갇혀있을 사념들이 추워한다는 ‘사소한 문제’는 아무래도 좋을 비상사태였다.
친구인 슈브가 있을 페이지로 붙잡은 건 아니니 그쪽까지 피해가 가진 않았겠지…아마도.



“놔 주세요, 선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감당 안 될 발언을 했다니…전 이제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그, 그 뭐냐~이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내가 좀 잘생겼어야 말이지. 후배가 여름바다의 마력에 잠시 더위먹고 홀렸다고 하면 다들 이해-.”


“……….”


“오케이, 알았어. 쓸데없는 농담 안 할 테니까, 칼 잡은 손에서 힘 좀 빼자?”


“…….”


“애들 생각 해야지? 선생님에게 무슨 일 생기면 그 애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어!”


“아이…들….”



제자들을 떠올렸는지 약간이나마 풀리는 힘.
한동안 그대로 대치상태를 유지하자, 이내 이성이 돌아왔는지 파이는 사검을 도로 집어넣고 모래사장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또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요.”


“아니, 뭐, 진정했으면 됐어. 큰일 안 났으니까 됐지.”


“…….”


“근데…아까 그건 대체 뭐였어? 왜 갑자기 그런 말을-.”


“암살입니다.”


“……응?”


“제 일족의 기술을 사용한 암살이라고요.”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하는 파이.
이쪽을 바라보는 볼프강의 등줄기에 한 방울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파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암살, 입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면 됐다는 얼굴로 바다를 응시하기 시작하는 파이.
멍한 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쭈뼛거리며 옆으로 다가간 볼프강이 곁에 슬쩍 주저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근데…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 건데?”


“명목상으로는 대기 중인데 선배가 일반인하고 희희낙락 하고 있었잖습니까. 그래서야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없죠.”


“그런 거라면 그냥 말로 해도 됐잖아.”


“거기서 잔소리를 시작했으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을 겁니다. 선배야 어떻게 되던 상관없지만, 아이들이 쉬면서 불편해 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어이구…좋은 선생님 납셨네.”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침묵.
서로가 서로의 눈치만 보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파이가 먼저 슬쩍 말문을 다시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뭐가.”


“그 여성분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퍽이나 즐거워 보이시던데.”


“별 거 아니었어. 외국에서 왔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고, 살던 곳은 어떤 곳이냐고 해서 대충 알려줬을 뿐이니까. 외국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더라고.”


“…아무리 봐도 그렇게 만면에 화색을 띄면서 대화할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름다운 여성분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지.”


“우와….”



노골적으로 가늘어진 시선을 옆으로 보내는 파이.
대체 이런 어설픈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뭐가 좋다고-.



‘…뭐, 가만히 있으면 그럴 법도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책을 잃고 있으면, 의외로 그림이 나오는 사람이기는 하지.
기본적으로는 태만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할 때는 확실하게 해내는 성격이기도 하고.
여차하면 신참인 자신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나름대로 잘 생겼고, 여차하면 믿을만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



‘…그렇게 나열하면 이 글러먹은 선배가 완벽한 이상형처럼 들리게 되는 것 같은데.’



파이는 아까 전의 소동으로 살짝 지쳤는지 먼 바다를 내다보는 볼프강의 옆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백금의 장발이 괜히 시선을 자극-.



“……!!”


“…? 이번엔 또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휙, 고개를 돌리고 괜히 쏘아붙이는 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억지에 가까운 억울한 마음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사람 때문에 자신은 그런 부끄러운 꼴을, 일족의 기술까지 써 가면서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당하고 말았는데, 적어도 비슷한 정도의 부끄러움 정도는 느끼게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죄송…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뭐가.”


“아까 있었던 일…말입니다. 선배가 다른 여성분들이랑 즐겁게 웃고 있는 걸 보니, 미묘하게 속이 나빠졌거든요.”


“……?”



갑자기 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하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는 볼프강.
하지만-이미 때는 늦었다.



“우왁?!”



소리도 없이 곁에 붙어서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는 파이.
당황해서 ‘멈칫’하는 볼프강의 손 위로, 파이의 오른손이 슬그머니 올라간다.



“생각보다 기대는 감촉이 좋군요. 저 모르게 단련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아니, 이건 현장에서 구르다 보니-.”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라…이상적이네요.”



한층 더 어깨에 밀착해가는 파이.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슬금슬금 끌어안으려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해오는 그녀의 태도에, 오랫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온 베테랑인 볼프강조차 잔뜩 긴장해선 몸을 굳혔다.



“어, 어이, 후배-.”


“여긴 조용하네요. 해수욕장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바위도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


“무슨 일이 있더라도…아무도 모르겠죠?”



어느새 볼프강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한 파이의 양 손.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숨소리가 선명하게 한 단계씩 볼륨을 올려간다.
설마 이런 곳에서-비밀로 해야만 할 일을 하기라도 할 생각인 걸까.



“선배….”


“어…어어…….”



마침내 그의 귓가에, 파이의 목소리가 곧장 흘러들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고-.



“……지금, 한 번 죽으신 겁니다?”


“…?!?!!”



짙은 웃음기가 실린 선언에 화들짝 놀라는 볼프강.
고개를 들어보니 한껏 분위기를 잡으면서 혼신의 연기를 펼친 파이가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너, 너-.”


“후후후…저, 저만 부끄러운 꼴을 당하는 건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솔직히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해 본 건데, 상상 이상으로 잘 걸려드셨네요.”


“크윽…!”



폭발하듯 붉어진 얼굴을 양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볼프강.
한껏 부끄러워하는 반응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한결 후련해진 표정의 파이는 그의 곁에 다시 주저앉았다.



“이제 제 기분이 어땠는지 좀 아시겠습니까?”


“그래…아주 잘 알았다. 이 망할 후배님아….”


“전에 ‘부끄러움이 감당되지 않는다면 같이 부끄러울 사람을 만들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진실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말 지껄인 인간, 찾아서 책에 가둬버린다….”



후배에게 농락당한 것이 영 못마땅한지 꿍얼거리는 볼프강.
삐진 어린애 같은 그의 얼굴을 곁눈질하던 파이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걸린다.



“오늘 절 부끄럽게 만드신 건, 이걸로 봐 드리겠습니다.”


“봐 주긴…순전히 자폭한 거였으면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한 번 저와 농밀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겁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배님~!”


“네~선배님.”



바다를 건너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유유자적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과연, 이것이 이 선배가 항상 휴가를 부르짖는 이유인걸까.



‘앞으론 과할 정도로 고지식하게 굴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다시금 스스로의 인식을 고쳐가는 파이.

하지만 그건 그거고-.



“선배, 아까 달라붙었을 때 말입니다만.”


“……?”


“아주 조금은, 진심이었습니다. 아마도.”


“……?!”



암살자는 한 번 정한 목표를 놓치지 않는 법.
적어도 여태까지 골려졌던 걸 다 갚기 전까진, 가끔 오늘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 또한 나쁜 선택은 아니리라.



“그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뭘?! 대체 뭘?!”



당황하는 선배와, 즐겁게 웃음을 터트리는 후배.
한적한 모래밭 위로, 시원한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갔다.













p.s : 와아~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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