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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콘테스트][부산] 해운대에서

작성자
SummerDia
캐릭터
파이
등급
태스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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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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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사롭다 못해 따가운 초여름의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몇 개의 그룹을 지어 어울리고 있었다. 이런 그룹에서 조금 멀리 동떨어져있던 볼프강 슈나이더는 자신이 펴낸 파라솔 밑에서 느긋하게 누워있었다. 그는 지금 유니온에 입사하면서 손에 꼽힐 정도의 휴가 중 하나를 온 힘을 다해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전에 휴가를 떠났던 휴양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도 본래 휴양지를 목적으로 조성된 장소임은 틀림없다. 그런 건물들이 볼프강이 누워있는 곳 바로 뒤에 무너지기 직전인 잔해로 남아있다는 것이 보통의 휴양지와는 다를 뿐이었다. 앞쪽으로는 그야말로 눈부신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닷가, 뒤쪽은 그와는 정반대 느낌의 삭막한 잔해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의 경계선에서조차 볼프강은 느긋하게 휴가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애초에 저 뒤쪽에 있는 잔해들을 만든 장본인이 자신을 포함한 몇몇이라 그런 것에 일일이 불만을 토로할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 제일 크게 작용할 것이다. 

 볼프강은 휴가를 좋아했다. 아니, 사실은 퇴사를 훨씬 더 좋아했다. 하지만 퇴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라서 그에 대해 대체할 방법으로 휴가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휴가, 휴가, 휴가, 신나는 휴가~♪’ 라는 말을 노래처럼 달고 살던 볼프강에게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은 휴가 명령이 내려졌다. 단 며칠밖에 없는 휴가기는 했지만 볼프강은 모처럼의 휴가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불만 사항이라고 함은, 

 -왜 작전을 수행했던 곳이 바로 휴가 장소가 되는 건데? 이래 가지고는 휴가 기분이 아니라, 다음 작전까지의 짬 타임 정도의 기분밖에 나지 않는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작전 구역이었던 곳이 갑자기 휴양지로 탈바꿈이 된 것. 게다가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해운대라고 하는 해수욕장에서만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이리저리 안내 책자를 통해 부산을 둘러보고 싶었던 볼프강은 이 조치가 상당히 불만이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오퍼레이터 겸 신서울 지부 임시 관리요원인 앨리스는 건조하게 대꾸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부산은 한국인들이 여름휴가로 자주 오기도 하는 곳이라니 그런대로 괜찮지 않나요? 요원님이 말하는 괌, 하와이와 비슷한 바닷가 도시니까... 
 -차라리 날 그냥 하와이로 떨궈줘... 
 -안 됩니다. 

 앨리스는 역시 단호했다. 그래도 같은 한국에 위치해있는 신서울을 방문했을 때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았다. 앨리스의 말대로 볼프강이 늘 입에 달고 사는 휴양지와 비슷한 해수욕장이 여러 개 있는 도시였고, 쉴 틈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신서울 때보다는 확실히 나은 상황이라는 걸 볼프강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찾은 부산의 해운대라는 곳은 아직 본격적인 성수기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시기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전부 유니온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시기에 부산에 와서 굳이 해수욕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더 비정상적이었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건물들이 즐비해있는 곳에서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긴다면 아마 그 사람은 평소에 스릴을 잘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해운대에서 약 1시간을 머무르던 볼프강은 결국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때까지의 유니온은 이런 짬 같은 휴가도 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휴가라도 내주는 것은 지금 자신들의 직속상관들이 자신들을 그런대로 챙겨주고 있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늦잠이나 좀 자볼까.’ 

 볼프강은 그렇게 깊은 수면에 빠졌다. 조만간 일어나게 될 작은 사건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걸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 * * 



 볼프강은 곧 주변에서 난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늦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말썽꾸러기 1호와 2호. 그 건너편에는 바이올렛을 제외한 <늑대개> 의 팀원들. 한두 명의 팀원이 없는 <늑대개> 와 <사냥터지기>를 빼고 전원 모여 있는 <검은양>. 아까 전 볼프강이 본 상황에 맞지 않는 휴가를 즐긴다던 인원의 전원이 볼프강을 둘러싸고 모여 있었다. 

 갑작스러운 전원 집합에 볼프강은 바짝 긴장했다. 앨리스가 아침에 휴가라고 하면서도 ‘만일의 사태’ 에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볼프강은 서둘러 윗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런 잠에서 깬 볼프강을 바라보는 제자 두 명의 표정은 의외로 평온했다. 만일의 긴급사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얼굴이었다. 루나는 심지어 볼프강의 안부도 물었다.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어, 어...무슨 일이야? 이렇게 전원이 다 모여 있고.” 

 괜히 당황하지 않은 척 말을 꺼냈는데 소마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쌤, 쌤! 지금 축구 대회를 한데요!” 
 “뭐? 축구 대회?!” 

 갑자기 무슨 뜬금포의 축구 대회인지. 보통의 상식적인 축구라고 하면 잔디밭이나 운동장에서 한다. 모래사장에서 하는 축구도 있기는 하다만, 한국에도 그런 비치사커(Beach Soccer) 팀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주변에서 비치사커 대회를 한다는 말은 못 들었다. 게다가 지금 볼프강 주변에 있는 위상능력자들을 제외하면 해운대에는 한 명의 사람도 없다. 이해력이 빠른 볼프강은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소마에게 물었다. 

 “설마, 우리끼리 하는 거야?” 
 “쌔앰, 쌔앰~!! 쌤도 같이 나가요오~!!” 
 “뭣?!” 

 완벽한 정답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늘어지게 누워만 있고 싶은 볼프강에게 제자 2호는 같이 하자며 조르기까지 했다. 루나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볼프강하고 같이 비치사커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소마의 제안에 아직 찬성도 안 했건만, 일제히 볼프강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지금 볼프강을 제외한 인원의 대부분은 무슨 꾐에 당했는지는 모르나, 루나와 소마처럼 자체적으로 여는 대회에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마치 교수님이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볼프강은 휴가 기간 내내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기에 필사적으로 회피할 곳을 찾았다. 

 “하지만 공이 없지 않나?” 
 “공이라면 여기 있다.” 

 볼프강에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준 사람은 바로 티나였다. 티나의 말처럼 티나의 손에는 축구공으로도 쓸 수 있고, 배구공으로도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공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볼프강은 뜨악했다. 다음으로 볼프강이 내민 수는 이거였다. 

 “비치 사커는 5명이 1팀인 걸로 아는데, 우리는 10명은 일단 넘잖아? 그러니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빠져야 하니 나는 빠지겠...” 
 “걱정하지 마라, 볼프강 슈나이더. 나와 제이가 심판을 보기로 했다. 너만 수락한다면 딱 10명이다.” 
 “...” 

 볼프강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원래라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의 인원은 자신을 포함해 15명이 되어야 했다. 허나 바이올렛, 파이, 세트는 아침 일찍부터 할 일이 있다며 부산 시내로 홀연히 사라졌기에, 티나와 제이가 심판으로 빠진다면 딱 10명이 되었다. 

 이런 상황까지 예측한 걸까, 선배들은! 볼프강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굴을 가려서 잘 안 보이지만, 아마 볼프강이 생각하기에 지금 제이와 티나는 웃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부터 재간껏 눈치 채고 도망쳐야만 했다. 두 사람은 의외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 이럴 수도 있다, 라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는 이미 엄청 신난 상태였다. 

 “그럼 깜짝 해운대 모래사장 축구 대회를 시작해보도록 하지!” 
 “와아~!!” 
 “...” 

 그리고 저 네임 센스는 도대체 누가 지은 걸까? 수많은 박수갈채 속에서 무심하게 박수를 치는 볼프강이 생각한 것이었다. 



* * * 



 일명 ‘깜짝 해운대 모래사장 축구 대회’ 가 열리게 된 경위는 대략적으로 이렇다. 

 볼프강이 늘어지게 늦잠이라도 잘까, 라고 생각할 때쯤 그의 선배들은 – 두 명이다 - 조금 생각이 달랐다. 그 둘도 볼프강처럼 파라솔을 펴고서 그 밑의 그늘에 앉아 있었지만 늘어지게 쉬려는 모양새는 절대 아니었다. 둘은 매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 토론의 주제에 대해 대강 말하자면, ‘이 협력 관계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안타깝게도 둘 다 부정적이라는 것에 가까웠다. 

 평소와는 다른 휴가용 선글라스를 쓴 – 볼프강에게 빌렸다 – 제이가 옆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팀하고는 다시 싸우고 싶지는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냉장고라고 생각했던 것에서는 문이 빼꼼 열리더니 은발의 소녀가 고개만 내밀어 제이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티나는 조금은 씁쓸하게 여겨질 법한 말을 곧바로 내뱉었다. 

 -허나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군. 
 -... 
 -그리고 역시 바깥은 덥군. 냉장고의 온도를 좀 더 내려야겠다. 

 티나는 다시 냉장고 안으로 쏙 사라졌다. 제이는 볼 때마다 신기한 냉장고라고 생각했다. 뒤에 코드가 없는데도 자력으로 냉기를 품고 있다는 점이라든지, 심지어 그 안에서는 무슨 마법의 주머니처럼 온갖 것이 나올 때라든지. 

 제이는 티나에게 아주 조금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나도 말이야, 우리 애들끼리 싸우지 않으면 좋겠어. 
 -늑대개 팀의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한다. 허나 팀원 개인과 팀 전체에 대한 생각이 항상 같을 수는 없지. 
 -역시 복잡하단 말이야. 

 제이는 바로 앞에서 물장구를 치는 검은양 팀의 아이들을 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느껴진 게 있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제이의 움직임에 티나가 물었다. 

 -무슨 일이지? 혹여 적이라도 출현했나? 
 -그건 아니고...지금 아이들을 보니 ‘팀별’ 로만 어울리고 있는 거 같아서. 
 -그런가? 

 티나는 제이의 말에 위화감을 느껴 제이를 따라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세하와 이슬비와 서유리, 루나와 소마, 나타와 하피 등등...물론 레비아와 미스틸이라는 예외의 조합은 있었으나 제이의 주장은 대부분 맞았다. 방금 전의 ‘서로 싸우지 않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제이와 티나는 볼프강이 설명했던 것처럼 의외로 죽이 잘 맞는 타입이었다. 그 죽이 잘 맞는다는 것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팀 구별 없이 이 짧은 휴가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제에서도 잘 맞았다는 게 볼프강의 입장에서는 문제라면 문제였다. 

 -역시 운동만 한 게 없겠지? 
 -팀워크를 올리는 데는 운동이 최고다.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둘은 통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좋아하고 – 아까의 심각한 분위기는 벌써 사라졌다 - , 곧장 어떤 운동이 좋을지에 대해 토의하기 시작했다. 

 바닷가 모래사장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비치발리볼(Beach Volleyball)이었는데, 티나는 기각시켰다. 보통 3명이 1팀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다른 팀이 운동을 할 때 남는 팀이 생겨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자 곧바로 이어진 운동 종목이 바로 비치사커였다. 

 -5 vs 5로 싸운다면 이것이 가장 적절할 거 같다. 
 -그렇군, 나랑 티나가 빠진다면 딱 10명이군. 하지만 후배가 참여하겠다고 할까? 

 여기서 제이가 말한 후배는 볼프강을 의미했다. 아까 선글라스를 빌리면서 볼프강과 잠시 대화를 나눈 제이였기에 이런 질문이 가능했다. 볼프강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다고 말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티나는 그것이 뭐가 걱정이냐며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 볼프강 슈나이더는 꼭 참여할 것이다. 
 -티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상품이로군. 우승 팀에게 줄 상품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지. 

 두 사람이 머리를 잠깐 맞댄 후에 나오게 된 상품은 이거였다. 아니, 역시나 이 상품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 * * 



 “우승 팀에게는 시원한 빙수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여기까지라면 볼프강처럼 불만인 사람이 몇몇 존재했겠지만, 그 직후에 붙은 조건은 엄청 파격적이었다. 

 “그리고 우승 팀 관계없이 VIP 선수 하나를 뽑도록 하겠다. VIP 선수에게는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소원권 1개를 주도록 하겠다.” 
 ‘이래서 나처럼 불만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거였군.’ 

 볼프강도 솔직히 VIP 선수의 특혜를 듣자, 조금 귀가 솔직해지기는 했다. 그런데 저 소원권이라는 것에 허점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무엇이든지’를 볼프강은 이제 쉽게 믿지 않게 되었다. 

 ‘만약 그 소원권을 얻게 된다면, 난 하루 정도 잠만 자게 해달라고 해야지.’ 

 이게 현실적인 소원권의 사용법. 아마 여기에 참여하는 비치사커 선수들도 볼프강이 생각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는 소원을 생각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든지, 꼭 가지고 싶었던 물건 하나를 얻는다든지 등의 그런 소원 말이다. 

 “팀은 어떻게 정하나요?” 

 아마 이 참가자들 중에서 제일 열성적인 의욕을 가진 소마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했다. 그에 대한 제이의 답변은 간단했다. 

 “별 거 없고, 손바닥을 뒤집기로 정하자고. 손등을 든 사람들끼리 팀이 되는 거고, 나머지는 당연히 손바닥을 든 사람들끼리 팀이 되겠지?” 

 10명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 속에서 한 번에 5명이 속해있는 팀이 만들어질 리는 만무했겠지만, 그 기적은 여기서 일어났다. 딱 손등 5개와 손바닥 5개가 원 사이에 보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팀은 정말 의외의 조합이었다. 

 우선 손등 팀, 일명 청(靑)팀의 구성원은 이러했다. 

 “내 앞길 방해하면 죽여 버린다?” 
 “게임인 이상, 적어도 VIP를 목적으로 해볼까?” 
 “사부랑 세하랑 같은 팀이네! 잘 부탁해!” 
 “서, 선생님! 우리 완전무결하게 잘 해봐요!” 
 ‘집에 가고 싶다...’ 

 그런 청팀에 맞서는 손바닥 팀, 일명 홍(紅)팀은 이러했다. 

 “차원종, 내 앞에서 얼쩡거리면 죽여 버린다?” 
 “네, 알겠어요, 소마님...” 
 “소마 누나, 그런 말은 조금...” 
 “소마! 같은 팀원에게 그러는 거 아니야!” 
 “이거, 정말 짜릿한 경기가 될 거 같네요?” 

 정말 랜덤 추첨이다 보니 의외의 조합이 탄생했다. 팀별로 서로 투닥거리는 조합은 1개 이상은 있는 거 같았고... 

 삐이익--!! 어디서 가져왔는지 티나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휘슬까지 있는 걸 보니 본격적인 대회 모양새는 났다. 

 “그럼 각 팀별로 주장이랑 골키퍼를 뽑으면 된다.” 
 “주장은 누가 할래? 1호가 할래?”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볼프강이 대놓고 루나를 지목했다. VIP 소원권이라는 건 조금 탐나기는 했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루나는 갑자기 자신에게 향해진 막대한 책임에 당황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볼프강을 제외한 3명도 루나가 주장을 맡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독여주었다. 

 “우와, 루나가 주장이야? 난 찬성!” 
 “나도 괜찮아. 나타 너는?” 
 “...흥, 난 경기 뛰기만 하면 상관없어.” 

 루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럼 다음은 골키퍼를 정해야 하는 모양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볼프강이 지원했다. 이유는 한 가지, 덜 뛰어다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청팀의 의견 조율은 의외로 순탄하게 잘 흘러갔는데 홍팀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청팀이 주장에 골키퍼까지 다 정한 와중에 아직도 열띤 토의 중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홍팀에서도 마침내 포지션을 다 정한 모양이었다. 홍팀의 주장은 이슬비였고, 골키퍼는 레비아였다. 

 제이가 휘슬을 크게 불었다. 이어지는 간단한 경기 규칙이었다. 

 “3판 2승제로, 1 대 1 상황에서는 15분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비디오 판독은 나한테 맡겨라.” 
 “참고로 위상력은 사용 금지. 조금이라도 위상력을 실어서 공을 차는 것이 발각된다면 퇴장 5분이다.” 

 티나의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비디오 판독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면, 그 뒤를 이은 위상력 금지라는 제이의 추가 규칙은 의문스러웠다. 어차피 여기에서 위상능력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데, 이제 와서 왜 위상력 금지라는 규칙을 새로 세운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순수 운동신경이라고 한다면 볼프강은 조금 자신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순수 운동신경으로 치르게 된 경기라 그런지 팀마다 선천적으로 타고는 운동신경으로 하드캐리 하는 선수가 1명씩 생기게 되었다. 청팀의 서유리와 홍팀의 하피였다. 둘 다 위상력 성질이 속도와 관련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위상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동신경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두 사람은 아주 빠른 반사 신경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선수들이 이 선수들로 인해 묻힌다? 그것도 아니었다. 두 팀의 실력 격차는 별로 없었고, 대등하였다. 

 일단 볼프강이 놀란 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아이기스로 차원종을 직접 패는 전투 스타일을 가진 루나가, 즉 전방 지원을 무척 좋아했던 루나가 후방 지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무조건 한 가지 스타일의 전투 방식만 고집하는 것은 좋게 말하면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이고, 안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는 전투가 불가능하여 틈을 많이 보여주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나가 먼저 후방에서 골을 지키겠다고 했을 때부터 볼프강은 나름 루나가 많이 성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바로 세하와 나타의 관계였다. 이 둘이 어떤 사이인지는 가까이서 지켜본 바가 별로 없었기에 성급한 정론을 내리는 것은 안 되었지만, 볼프강이 보기에는 세하와 나타는 서로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세하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나타는 <검은양> 팀 전원에게 약간의 껄끄러운 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타도 루나처럼 후방 쪽에 있었다. 그래서 이 점도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나타가 유리와 세하의 실수를 잘 잡아주어 넘겨주는 걸 보고서 왜 나타가 후방을 직접 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1경기는 청팀의 완벽한 승리였다. 무작위로 뽑힌 팀인데 평균 이상의 팀워크를 보여주는 자신의 팀의 저력에 볼프강은 살짝 짜릿했다. VIP는 못 되어도, 우승 팀이 되면 시원한 빙수는 먹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청팀에 비해 홍팀의 팀워크는 별로였다. 경기를 하는 내내 하피만 눈에 띌 뿐이지, 다른 선수들의 실력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피가 혼자 팀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경기가 끝나자 잠깐 쉬는 하피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보다 땀이 더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기요, 중간에 골키퍼 교체해도 되나요?” 

 이 말을 꺼낸 것은 홍팀의 주장인 슬비가 아닌 소마였다. 골키퍼를 경기가 끝나면 바꿔도 된다는 말에 소마는 레비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 잔뜩 움츠려있는 레비아에게 소마가 말했다. 

 “너, 보니까 골키퍼는 못하는 거 같더라.” 
 “죄, 죄송해요. 사실 제가 축구라고 하는 것이 처음...” 
 “됐어. 그걸 왜 이제 말해? 불만이 있으면 처음부터 말하라고.” 

 그리고 미스틸을 향해 부탁했다. 

 “미스틸, 미안하지만 네가 골키퍼를 해줄래?” 
 “네? 제가요?” 
 “응, 부탁할게. 레비아는 옆에서 직접 알려주면서 해줘야 할 거 같아서.” 

 너무 자연스럽게 지나가서 홍팀의 사람들은 소마가 레비아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었다는 것에 뒤늦게 놀라워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소마와 레비아는 의외로 평온했다. 소마의 알려주겠다는 말에 레비아는 고개를 까닥 숙였다. 

 “고마워요, 소마 님.” 
 “됐어. 날 보고, 내가 하는 대로만 하면 돼. 알았지? 그마저도 못하면 어찌 될지 알아서 생각하라고.” 
 “네...!!” 

 그걸 힐끗 보고 있던 슬비가 하피에게 말했다. 

 “하피 씨, 앞에서 열심히 뛰어준 하피 씨에게 좀 죄송한 부탁이지만 전방에서 한 번 더 힘내주시겠어요? 소마가 알려준다고 해도 레비아가 그걸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전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는 게...” 
 “주장님이 하라면 그대로 해야죠. 하지만 주장님 말대로 전 이미 체력을 좀 써버렸는데...하지만 주장님이 간절히 부탁한다면 생각은 해보도록 하죠.” 
 “하, 하피 씨...! 정말...!” 

 하피의 능청스러움에 당황하던 슬비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선배님, 다시 한 번 부탁드릴게요. 전방에서 저와 같이 힘내주시겠어요?” 
 “그러죠. 귀여운 후배님 부탁이니 어쩔 수 없겠네요. 선배가 조금 더 힘내야겠죠?” 
 “귀, 귀여운 후배라뇨...” 

 이렇게 2경기부터 포지션을 바꾼 홍팀은 놀랍게도 2경기에서 청팀을 이겼다. 청팀은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청팀 또한 2경기에서 보여준 실력이 기량이 딸리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이제야 좀 재밌어지는 경기가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제이와 티나는 기뻐했다. 

 제이가 휘슬을 불렀다. 

 “1 대 1 상황이므로 15분간의 휴식 이후, 3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다들 수고했다.” 

 짤막한 티나의 말을 끝으로 각 팀은 각 팀의 골대 겸으로 쓰고 있는 거대한 파라솔의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비치사커 1경기를 하면서부터 강렬하게 내리쬐던 태양은 구름에 가려졌다. 그렇기에 경기를 내내 뙤약볕에서 한 건 아니었지만, 한국의 현재 계절은 여름이고, 복사열이 잘 통하는 모래사장 위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힘든 건 당연했다. 

 바닷가 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차가워서, 왜 지금 이 시기가 성수기가 아닌지 볼프강은 조금 알아차린 기분이다. 모래사장은 더워도 아직 바닷물 온도는 해수욕을 충분히 즐기기에는 차가운 것이었다. 

 “청팀 모두 수고했다.” 

 청팀 이외의 사람이 말을 걸어서 볼프강은 놀랐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티나가 서 있었다. 게다가 티나의 손에는 딱 5명분의 얼음물이 있었다. 더위에 조금 지친 이들에게는 차가운 얼음물은 그야말로 마침 딱 필요했던 물건이었다. 

 얼음물을 나눠주면서 티나는 딱딱한 군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 수분 보충은 필수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땀을 흘리게 되었는데...’ 

 볼프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까 비치사커를 하기 직전만 해도 좀 불만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후방에서 열심히 지원하는 루나를 보아서일까, 아니면 먼저 포지션을 바꾸자고 말을 하는 소마를 보아서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볼프강의 이런 표정 변화를 티나는 빠르게 알아챘다. 

 “즐거워 보이는군, 볼프강 슈나이더.” 
 “제가요? 아뇨, 아뇨, 안 즐거워요. 이렇게 더운 곳에서 운동하라고 하면 즐거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 너 또한 즐거워 보인다.” 
 “즐겁다? 하, 뭐 그런 걸로 치죠.” 

 홍팀 쪽을 쳐다보니 거기는 제이가 얼음물을 나눠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볼프강은 티나에게 투덜거렸다. 

 “억지로 참여한 사람은 별로 즐겁진 않아요.” 
 “그렇군.” 
 “솔직히 말하세요. 일부러 제가 잠자고 있는 파라솔 아래에 모여서 이야기한 거죠? 저도 이 대회에 참가시키려고.” 
 “글쎄.” 

 티나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볼프강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그렇기에 직접 답을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답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말없이 얼음물을 마시는 볼프강에게 티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그런 의도도 있었지만 볼프강 슈나이더, 네가 가지고 있던 파라솔이 가장 커서 그 안으로 모인 것도 있다.” 
 “아...” 

 하긴, 파라솔을 빌리려고 할 때 심사숙고하여 가장 큰 파라솔을 고르기는 했다. 티나가 이어서 말했다. 

 “10명이나 되는 사람을 뙤약볕에서 기다리게 하며 설명을 듣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죠. 현명한 판단이네요.” 

 빈정거리는 투로 들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비치사커를 한 이후로 구름이 가려져서 날씨가 흐려졌던 것뿐이지, 비치사커를 위해 모였을 때에는 태양이 강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늘에 있는 것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티나는 무언가를 뜬금없이 갑자기, 그리고 담담하게 말하는 특유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다, 티나가 갑자기 이런 소리를 했다. 

 “고맙다, 볼프강 슈나이더.”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딴청 피우지 마라. 다 들은 거 안다.” 
 “그렇기는 하지만, 역시 제 귀가 잘못된 것이 분명...” 
 “그럼 다시 한 번 말하지. 고맙다고 했다, 볼프강 슈나이더.” 

 저렇게 두 번 말하는 걸 보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볼프강은 계속 딴청을 피웠다. 자기 귀 탓이 아니라면 다른 이유로는... 

 “더위 먹었나요?” 
 “난 지극히 제정신이다.” 
 “하지만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이건가?” 

 볼프강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티나는 홍팀 쪽 파라솔을 보았다. 정확히는 홍팀과 이야기를 나누는 제이를 보는 것이다. 

 “아까 제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직도 팀별 간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문학적인 표현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오늘은 여러모로 놀라는 날인가 보다. 티나는 볼프강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런 대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팀별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 
 “조금 1차원적인 방법이네요. 무슨 청춘 드라마도 아니고. 땀을 흘리며 같은 팀이 되면서 고난을 이겨낸다는 식의...” 
 “그래도 효과 하나는 확실하지 않은가?” 

 티나가 볼프강의 말을 자르고 반박했다. 볼프강은 예상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티나는 끝맺음을 짓기 시작했다. 

 “아마 제이도 여기에 있었다면 너에게 이렇게 말했겠지. 고맙다, 볼프강 슈나이더, 라고.” 
 “...그 말을 세 번째로 듣기 시작하니까 슬슬 소름이 돋기 시작하네요.” 

 소름이 돋는 건 차라리 얼음물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티나는 담담했다. 

 “사실이니까, 너무 거부감을 가지지 말도록.” 
 “...알았어요.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 그 말 다시는 내뱉지 마세요.” 
 “노력하도록 하지.” 

 티나는 그 말을 끝으로 파라솔에서 떠났다. 볼프강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티나의 생각, 제이의 생각, 그리고 볼프강 자신의 생각도 비슷한 무언가를 겨냥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죽이 잘 맞는 건 티나와 제이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볼프강도 사실 엄청나게 죽이 잘 맞았다. 

 서로 앉아있는 거리가 가까워서 볼프강과 티나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청팀은 무척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볼프강은 이렇게 은밀히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부끄러운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먼저 운을 뗀 건 세하였다. 

 “생각해보니 티나 씨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네.”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 보니 선을 그어버리고 있었네.” 
 “저 깡통이 눈치가 없는 거야. 그걸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래도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좋잖아요?” 

 알기 쉽기도 하고. 루나의 일리 있는 말에 나타마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 무슨 잘못이 있었다는 소리기도 하니까...납득은 가지.” 
 “헹, 그것보다 이세하, 너 VIP 노린다면서? 그거 내가 할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나타 너 잊었나 봐? 나 은근 승부욕 강한 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유리가 루나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고 세하와 나타 사이에 가까이 붙었다. 유리의 대꾸에 루나도 맞는 소리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루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대화에 살짝 동떨어진 볼프강에게 향했다. 루나가 물었다. 

 “선생님도 혹시 VIP를 노리시나요?” 

 아까 전까지는 그런 마음 적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바닷바람을 쐬면서 쉬고 있자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니.” 

 뒤이어 덧붙인 이 말에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난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 * * 



 한바탕의 비치사커 경기를 치른 그날 밤이었다. 낮의 열띤 운동으로 인해 지친 모두가 잠을 자는 시간, 제이와 티나는 밤 바닷가를 같이 구경하고 있었다. 낮보다는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은 상당히 차가워서 겉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분명 온몸에 닭살이 돋았을 것이다. 

 오늘 낮의 작은 사건의 주도자이자 공범자인 두 사람은 오늘 낮에 자신들이 벌인 자랑스러운 결과물에 대해 뿌듯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들의 대화에 푹 빠져 있다고 해도 뒤에서 누군가가 오는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심취해 있지는 않았다. 

 그게 누구인지는 티나의 입에서 곧바로 상대방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볼프강 슈나이더.” 

 티나는 예의 그 미니 냉장고 안에서 얼굴만 빼꼼 내비치고 있었다. 볼프강을 아예 뒤돌아보고 있던 건 제이였다. 볼프강은 사실은 아까부터 계속 묻고 싶었던 질문을 드디어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왜 VIP를 정하지 않았나요?” 

 우승 팀은 당연히 나왔다. 허나, 3경기를 맞춘 직후, 때마침 바이올렛 일행 – 파이의 부산 시내를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 바이올렛이 끌고 간 것이다. 그리고 파이와 떨어지기 싫다면서 세트가 합류하는 바람에 세 사람의 나들이가 된 것이었다. - 이 돌아왔다. 그리고 낮의 해변은 더웠을 거라면서 거대한 빙수를 직접 공수해온 바람에, 우승 팀이든 패배 팀이든 상관없이 어울려 빙수를 몸이 얼얼해질 때까지 실컷 먹었다. 

 그러나 이런 사태에 대해, 청팀이랑 홍팀 어느 팀에서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우승 팀의 특혜가 아닌, 전원이 즐기는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평범한 여름 피서와도 같은 풍경이었기에, 사실은 바이올렛 일행은 시내 구경을 갔다 온 게 아니라 여름 피서 쇼핑을 오랫동안 했던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우승 팀 상품은 뭐, 양쪽 팀 다 불만이 없으니 유연하게 넘어간다고 쳐도, 우승 팀보다는 VIP가 되는 것이 더 관심이 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 모았던 소원권. 그 소원권의 주인공인 VIP를 뽑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볼프강은 당연히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볼프강의 질문에 제이의 답은 대략 이러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 
 “...”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반문이라니...그러나 물어보는 제이의 옆얼굴은 진지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제이가 물었다. 

 “후배님은 그 경기에서 VIP를 꼭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 

 그래, 그것이 정답이었다. 볼프강도 처음부터 사실은 알고 있었다. 

 대답은 어차피 하나였다. 볼프강의 답은 마침 그 하나뿐인 답과 똑같았다.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 거야...즐거웠으면 된 거야.” 

 제이와 티나는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별이 총총 박힌 바닷가를 보고 있었다. 달은 보름달은 아니나 보름달에 가까운 모양새였고 밝은 편이었다. 살면서 본 밤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인 건 맞았다. 

 아까와는 다른 뉘앙스로 제이가 또 질문했다. 

 “후배님은 이번 휴가 어땠나?” 
 “글쎄요.” 

 내일 아침이 되면 이 상황이 언제 급작스럽게 변할지 모른다. 좀 더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칠지, 아니면 조금만 손을 대도 무너질 후반부의 젠가 탑처럼 될지. 

 그래도 이 정도의 답은 해줄 수 있었다. 세 사람 사이로 아까보다는 산뜻한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최고의 휴가는 아니지만, 잊지 못할 휴가는 될 거 같군요.” 

 이것이 볼프강의 정답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정답 그 자체이기도 했다.





[후기]
1. 어쩌다보니 좀 많이 길어졌네요.
2. 15캐 나름 골고루 비중을 둘려고 하였으나, 베테라누스 중심의 휴가 글이 써졌네요. 시간이 된다면 다른 태스크포스 팀 위주의 휴가 글도 써볼까 합니다.
3.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4. 늘 느끼지만 전 정말 제목 센스 없는 거 같습니다.
5. 글 쓸 때에 많은 도움을 준 지인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보냅니다.

#부산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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