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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랍/서유리] 탈피
작성자 | 구금 등록일 | 2019.01.10 조회 | 453  
클로저스 사계절 합작 여름 파트로 준비하던 거였는데

쓰다보니 본래 주제인 여름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서 접었던 글입니다

사실 이어서 쓰고 싶은데 요새 작문하는 것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이대로 묵히기도 아쉬워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크악 작문 연습을 충분히 끝냈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다시 쓰고 싶을 정도로 취향 가득 담아 쓴 내용으로 


상당히 우울하고 암담해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가진 이가 희망을 포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이윽고 죽음을 생각하는 내용이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읽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 * *

붕괴에 잇따른 파괴, 파괴에 잇따른 혼란, 혼란에 잇따른 피해. 재와 먼지는 그 속에서 태어났다. 모두가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자 제가 신었던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제 얼굴에 옅은 생채기가 나는 것도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뛰던 혼돈 속에서 태어난 그들은 누구보다 균열을 좋아했으며 누구보다 파멸을 사랑했다. 어지러운 무질서함 속에서 새로이 탄생할 질서를 계획하여 이윽고 맞이하는 걸 즐거워했다. 어쩌면 그들은 단지 탄생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에 도취된 나머지 가장 완벽한 존재의 탄생을 발취하는 훌륭한 감별사가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위대한 탄생을 직접 맞이하지 못한 원통함으로 인해.

 

7월 중순, 끝날 듯 끝나지 않을 듯 간신히 제 숨을 이어가며 끊임없이 내리던 장마가 언제 그랬냐는 듯 뒤꽁무니를 감추고 무더위를 피해 혼자서만 사라졌다. 과연 장마마저 피할 질척거림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뽀송뽀송하게 마른빨래를 걷어보는 게 제 소원이라며 투정을 부리던 유리가 이제는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을 어찌하지도 못한 채 빨래를 하지 않는 게 제 소원이라며 투정을 부렸다. 끔찍해. 제 등에 찰싹 붙은 와이셔츠를 떼어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래도 이건 조금 과격한 표현이겠지.

 

비록 제 몸을 축축이 적시는 땀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면을 뜨겁게 달구는 햇볕에 대해서는 나쁜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강렬히 내리쬐는 햇살, 도시 속 전신 유리창에 반사되는 열기가 도시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제가 서 있는 신서울을 자랑스럽게 꾸몄으니 어찌 꾸중하겠는가. 그녀에게 빛나는 신서울이란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위엄을 뽐내고 있는 거다. 네가 빛날 수 있는 장소! 너의 꿈을 펼칠 장소! 저절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미래!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나열되는 희망이 그녀가 여름과 어우러진 신서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이 만들었다. 단순한 폐허가 되기 전까지.

 

이제 그만 받아드려. 귓가에 맴돌며 하루살이처럼 윙윙대는 거추장스러운 소음에 그녀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후들거리는 두 팔로 간신히 지지해 일어서는 듯싶더니 이내 세게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당연하게 잇따라 찾아오는 아픔이 그녀를 휘감았고 그녀는 아악,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깨진 유리 파편과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으로 가득 찬 바닥을 뒹굴고 피가 새어 나오는 제 이마를 감쌌다. 아파. 아파. 아파. 가장 원초적인 생각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살고 싶어. 며칠이나 지난 거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야. 싫어. 싫어. 곯은 배가 앙상하게 들어가 제 늑골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자신의 애처로움을 뽐냈다. 이미 해질 대로 해져 더 이상 옷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천은 상처를 감쌀 붕대조차 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녀는 응급 처치에 대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저 제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잔뜩 쉰 목울대로 거칠게 찢어지는 소리를 만들었다. 아픈 제 이마가 원망스러웠다. 며칠 전 게워낸 토사물의 냄새가 원망스러웠다. 잔뜩 곯아 뒤틀리는 장기가 원망스러웠다. 찢어진 상처 속을 가득 메운 재와 먼지가 원망스러웠다. 제 몸뚱이를 기어 다니는 벌레 원망스러웠다. 갓난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여럿이 달려들어 아이의 불편과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누군가 제 아픔을 듣고 이를 해결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니 아무도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는 신서울 원망스러웠다.

 

여름이라는 계절로 인해 부패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녀가 갇힌 잔해 속 어딘가에서 죽었을 시체 냄새가 멀리 버리고 온 분뇨와 쏟아낸 토사물에 뒤섞여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다시금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은 그녀는 서둘러 바닥에서 구르던 유리 조각 하나를 집어서 분뇨를 처리하느라 이제는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려주지도 못하는 천 조각을 다시 갈가리 찢어 입과 코를 가렸다. 뒤늦은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그녀는 냄새가 조금은 가셨다고 믿었다. 정신을 놓고 울부짖은 게 며칠 전이었을까. 아니, 몇 시간 전이었을까. 그녀는 교복 주머니에 시계를 넣어 놓은 걸 새삼스럽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보았다. 찢어진 이마가 나름대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손에는 시뻘건 피 대신 언젠가 붙어 굳어버린 검붉은 피가 보였다. 짜증나. 그녀는 생전 입에 담지 않았던, 생각지도 않았던 욕지거리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다 싫다. 이제는, 아니 사실은 언제인지 모르는 시간에서부터 모든 게 다 싫다. 이곳에 갇힌 상황부터, 자신에게 오지 않은 구조대, 자꾸만 귓가에서 들리는 이명, 제가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죽음까지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받아드려. 귓전에 맴도는 소리에 그녀는 감았던 눈을 떴다. 눈 옆을 기는 파리를 손짓으로 내쫓았다. 벌레들이 득실대는 여름이 싫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등에서 떨어져 나가는 파편들로 인해 고요하던 잔해 속이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숨 쉴 때마다 덜렁거리는 천 쪼가리를 치운 그녀는 결국 제 몸을 끌고 보다 먼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썩어들어가는 냄새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천천히 다리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났다. . 머리가 지면으로부터 160센티미터 떨어져 있는 천장과 살포시 맞부딪혔다. 콘크리트 가루가 곧장 그녀의 머리에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눈을 질끔 감고서 다시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제 머리는 허옇게 변했을 거다. 분과 먼지로 범벅이 된 머리를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제가 이곳으로 이동하던 와중 잔뜩 엉킨 머리카락이 세로로 솟은 철근에 걸려 뽑힌 적이 있었고 슬쩍 보기에도 더러운 회색이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콘크리트로부터 내리는 안개비가 멈추자 그녀는 허리를 수그린 자세 그대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받아드려.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바닥에 널브러진 철근이 우악스럽게 그녀의 발을 쥐어 잡았다. 철퍼덕 넘어진 그녀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일어나기 싫다. 일어나면 뭐가 달라지지? 저 더러운 냄새를 피해 도망갈 수는 있는 걸까. 내 존재 자체가 더러운 균 덩어리일 텐데 저걸 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미 제 몸을 감쌀 무언가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생전 하지 않았던 인간임을 증명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 다 부질없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내가 사람이면 뭐가 달라지지? 여기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여기서 눈을 뜬 것에 대한 것도, 두피가 타들어 갈 듯이 아프고 두 눈이 뽑힐 것같이 따가웠던 것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 창자를 비웠던 것도, 전부, 전부 다! 내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유를 찾으려 해도 결국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저 지독한 혐오만이 남아 그녀를 옭아맸다. 밉다. 열어 죽지도 못하는 날씨가 밉다. 아슬아슬하게 명을 이어가는 얄팍한 목숨이 밉다. 허기진 배가 밉다. 곯아 터지고 여기저기 쑤시는 몸뚱이가 밉다.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밉다.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 사람들이 밉다.

 

이제 그만 받아드려. 귓바퀴에 맴도는 목소리가 잔뜩 날이 선 그녀의 신경을 벅벅 긁었다. . 뭐를 더. 이제 뭘 더 받아드려야 하는 건데? 그녀는 이 상황에 모든 걸 무의미라는 단어로 간결하게 정리해 체념하고 받아드렸다. 그런 그녀에게 가시지 않고 알짱거리는 이명은 장마와 무더위 혹은 아직도 제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벌레보다 끈질겼다. 짜증나. 다시금 제가 하지 않은, 감히 시도조차 못 해본 욕설을 떠올린 그녀는 오랫동안 닫혔던 눈꺼풀을 열고 허리를 세웠다. 우수수 떨어지는 파편과 함께 제 몸에 붙어있던 벌레가 멀리 달아나는 게 보였다. 무언가를 그리는 것처럼 허공을 윙윙대는 벌레의 모습에 그녀의 머릿속에 번득였다. 저 벌레는 어디서 온 거지? 그러고 보니 잠시 눈을 감았다 뜰 때 조금씩 변하던 음영이 분명히 있었다. 틈이다. 이 근처 어딘가 바깥과 연결된 틈이 존재하는 거다. 생각과 동시에 그녀는 바닥을 구르는 철근 중 제 허리께에 올 만한 것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 번만 더. 제 몸에 남은 위상력을 철근에 집중시킨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빛이 들어올 만한 곳. 벌레가 드나들 아주 작은 틈새. 지대를 무너트리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 만큼 정교한 컨트롤이 지금 가능한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습을 감췄던 희망이 그녀를 부르는 지금, 서두르는 것만이 그녀의 온 신경을 감싸 돌아 머리를 회전시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막힌 앞? 작은 틈조차 없었어. 빛은, 빛은 그쪽이 아니야. ? 당연히 그럴 리가 없어. 걸어왔던 길 중에서 빛 하나 찾을 수 없었어. 밑에서는 당연히 빛이 들어올 리 없고 그렇다면 남은 건, 위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는 대신 다리를 어깨보다 널찍하게 벌리고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잡았다. 자신을 옥죄어오는 희망에 손은 송골송골 맺히는 땀으로 철근을 놓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까슬까슬한 철근을 꽉 쥐어 잡고 짧은 심호흡 끝에 철근을 휘둘렀다. 둥근 원이 천장에 새빨간 불을 그리며 반짝이더니 이내 풀썩 주저앉았다. 콘크리트의 잔해가 쌓인 쪽을 베어버렸는지 순간 덮쳐오는 먼지 폭풍이 그녀를 휘감았고 그녀는 서둘러 뒤돌아 몸을 웅크리고 숨을 멈춘 후 두 눈을 꼭 감았다. 일 초가 일 분처럼 흐른다고 느낄 만큼 그녀는 조바심이 났다. 솟구쳐 오르는 희망에 그저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됐나? 된 건가? 나갈 수 있는 거야? 차오르는 흥분을 아슬아슬하게 억눌러 천천히 뒤돌아 감았던 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깔끔한 동그라미 모양으로. 쏟아진 잔해들이 그녀가 더욱 편히 올라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었고 그녀는 제 운동화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쓰레기 산을 올랐다. 나갈 수 있어. 드디어, 드디어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 …뭐…야…”

 

소란스럽게 일렁이는 벌레를 제치고 콘크리트 더미 사이 켜진 손전등이 콘크리트 산 곳곳 솟아난 팔다리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살덩이와 내장 따위를 비추며 기대에 부푼 그녀를 맞이했다. 역한 냄새의 근원지가 바로 제 눈앞에서 자랑스러운 위용을 뽐냈고 그로 인해 잊혀진 구역질이 다시금 그녀의 목구멍을 쑤셔 자극했다. 아파. 아파. 아파. 게울 것이 없는데도 자꾸만 올라오는 욕지기에 화가 났다. 입에서 줄줄 흐르는 침과 힘겹게 역류하는 위산에 짜증이 솟구쳤다. 지독한 꼴을 당하고서 아직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남아있는 제가, 삶을 포기하는 듯싶더니 찾아오는 희망을 뿌리치지 않은 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끔찍이도 싫어졌다. 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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