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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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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하] 여우 석상
작성자 | 구금 등록일 | 2019.09.20 조회 | 189  

*2017 1월에 쓰여진 글을 약간 수정했으며 이 당시에는 지수가 언급될 뿐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배경으로 쓰였기에 인물의 말투가 다르며 캐붕이 정말로 존재합니다. 그로 인해 밑에 추가 주저리주저리 있습니다.

 




 

장군 중 장군이라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그녀에게 자식이 생겼다는 소식에 마을에는 유량한 풍악 소리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제 어미처럼 아들은 활 솜씨가 남달랐고 글도 곧장 읽고 지을 줄 알았으나 장군 밑에서 독하게 자란 나머지 제 나이에 맞는 행색을 한 적이 없었다. 칭얼거리는 소리 하나 낼 줄 모르는 것인지 한집에 사는 식솔마저 그의 울음소리를 기억하지 못했고 그저 어렴풋이 멧돼지 사냥을 나가거나 늦은 밤 글을 읽는 게 그, 나름대로 감정을 삭이는 방법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비록 그가 제 나이에 맞게 행동하지 않았지만 다들 일찍이 그가 과거에 합격해 어미에게 웃음을 선사하리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에게 사소한 실수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모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그의 나이 열여덟, 그는 돌연히 산속 별채에 들어가 일체 연을 끊었다.

 

* * *

 

닭이 울지 않는 새벽, 눈 밟는 소리가 창호지 너머 들려왔다. 어설프게 잠에서 깨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 소리는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잇따라 찾아온 고요에 다시금 홀로 산속에 있구나, 싶었다. 이불을 덮어 다시 온기를 모아 금세 오들오들 떠는 몸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익숙한 방 안에 어둠이 짙게 깔려 혼자임을 실감하니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멀리 놓아둔 유기 등잔에 손을 뻗어 가까이 끌고 와 조심스레 불을 밝혔다. 따스한 온기에 굳었던 표정을 지우고 스리슬쩍 양 입꼬리가 둥그렇게 올라 초승달을 만들었다.

 

눈 밝는 소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사박사박,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새벽마다 다시금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그 소리가 정겨워 들리지 않으면 섭섭할 지경이었으니 몇 주는 훌쩍 지났을 거다. 그 소리의 주인은 알고 보면 먹이를 찾아 산을 넘나드는 짐승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그렇다면 한겨울 식량 창고 같은 자신이 무사할 리 없었다.

 

대체 누구지?

 

새벽, 쏟아지는 잠을 두 눈 부릅뜨고 몰아내려 했지만 가시지 않았다. 꾸벅꾸벅 고개를 제 뜻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쯤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순간 잠이 번쩍 달아나 서둘러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담 너머 언뜻언뜻 불빛이 보였다. 그는 곧장 나막신을 신고서 그 무게도 잊은 채 뛰어가 대문을 벌컥 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막대 끝 달랑달랑 매달린 등롱이 그녀의 윤기 나는 검은 머리와 수려한 외모를 자랑스럽게 알렸고 그는 그 모습에 잠시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노란색 저고리와 다홍치마가 퍽 잘 어울리는 여인은 그가 나오자 화들짝 놀라 어색하게 제 머리 상부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대였나?

“예, ?

“여명이 닿지 않을 때 스리슬쩍 다녀간 이가 그대인지 묻고 있는 걸세.

“소, 소저, 나리의 잠을 방해했다면 면목이 없사옵니다”

“…일단 들어오게.

 

그는 대문 안으로 발을 옮길 수 있게 손짓으로 한 번 더 그녀를 부른 후 먼저 들어갔다. 그녀는 잠시 멀뚱멀뚱 대문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발을 떼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찬바람이 휭, 하고 스치자 홀로 높게 뻗은 소나무에서 눈이 흩날려 짧게 눈보라가 생겼다. 혹 나리를 놓칠까, 여인은 마당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쪽으로 오게.

 

그는 그녀가 등롱을 내려놓은 후 신을 벗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오자 다시 한번 손짓으로 그녀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미 그녀가 저를 따라올 거란 확신이 생겼는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간 궁금증으로 남몰래 머릿속에 상상했던 모든 행동을 거침없이 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슬쩍 발걸음을 옮기며 나리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가자 이미 등에 불이 켜져 있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금 온돌을 때웠으니 조금만 참고 앉게.

“실례하겠습니다.

 

어두웠던 바깥과 달리 환히 보이는 방 안 구조로 그녀는 무례라는 것도 잊고 방안을 훑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앉은 채로 한참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자신이 들어와서는 안 될 공간에 들어와 설렘을 맛보는 것처럼 신기해하는 여인을 잠자코 지켜보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어딜 그리 다녀온 건가?

“아! 소저, 한 도련님께 잊지 못할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하온데 이 마음을 어찌 전할까, 고민되어 달밤에 산책이라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그리하였습니다.

“지금 시각에 위험하지 않은가.

 

비록 날이 금방 밝는 한겨울 새벽이라지만 사방이 어둠으로 짙게 깔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종을 붙여 다니는 여인도 아닐뿐더러 그저 인근 마을 사람일 터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산을 오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제가 터무니없는 인물을 한낱 궁금증에 불러온 것은 아닌지 문뜩 섬뜩해졌다.

 

“불빛이 저를 지켜줘 짐승들이 피해가며 산 지리를 꿰뚫고 있어 길 잃을 일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게다가… 꿈에서마저 그 도련님이 나오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도 도련님을 말하며 수줍게 웃는 여인의 모습에 그는 그만 입꼬리를 올려버렸다.

 

“내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다리를 다친 절 구해주시고, 치료해주시고, 먹여주시고… 포근히 안아주셨습니다. …아아, , 안았다는 것이 저, 정사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내, 내 알겠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네.

 

그녀는 잠잠한 분위기 속 그 도련님이라는 자와의 추억을 회상하는지 슬며시 미소 지었고 그런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듣던 그는 괜스레 그녀와 도련님 사이를 자신이 듣기에 머쓱하다고 판단하여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저 혼자 추억에 빠져 있던 여인은 맞은편에 앉은 그를 확인하자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지만 말을 반복할수록 과격한 단어가 나오자 그는 서둘러 자신이 말을 꺼내 그녀의 입을 막았다.

 

“흠흠, 그자가 여간 좋은 게 아니었나 보구나.

“…네. 도련님은 정말로 여리신 분이었습니다. 다들 눈을 흘기고 다그치기 바빠 제대로 도련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분입니다. 다친 이를 보면 쉬이 넘기지 못하며 남이 위험한 일에 얽히지 않게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 분이었으며 추운 날, 몸이 걱정되어 안아주시는… 그런 포근한 분입니다.

“…그대가 그리 좋아해 주니 그도 분명 알 걸세.

“정말… 그럴까요?

 

도련님을 생각하는 여인은 제 첫인상을 더욱이 굳힐 수 있게 해줬다. 도련님을 말할 때마다 뚝뚝 묻어나오는 애정에 여인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보였고 그는 그런 여인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나름대로 진실해 보이는 표정에 미소를 띠우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그가 위로 삼아 건네는 조그마한 말조차 놓칠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이 나는지 자신의 치마 끝자락을 세게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분명. 분명 그도 알 걸세.

 

확신을 심어줄 수 있도록 단호하게 얘기하는 그의 말에 안심한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등롱 하나로 짐승을 막다니… 내 이 산을 잘 알고 있진 못해도 호랑이가 위험하단 사실 하나는 잘 알고 있네. 지금까진 괜찮았을지 몰라도 먹이가 떨어지면 흉포해질 터이니 조심하게.

“사실… 등불 하나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혹시 이 근방에 있는 여우 석상을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여우 석상 뒤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지 않은가.

 

그는 여우 석상과 느티나무를 회상하며 등잔에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보았고 썩 좋은 추억이 담긴 곳은 아닌지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손에 활을 쥐었다. 당연히 시위 당기는 법을 알지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늘 가지고 다니게 될 터이니 한시라도 손에서 떨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조금씩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손에는 빨간 줄이 생겼다. 행여 놓칠세라, 어머니의 불호령이 무서워 꼭 쥐고 다닌 행동의 결과였다. 제 손이 새빨갛게 변한 게 스스로 흉측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점점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걸 피하게 되었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글을 배우는 자신이 오히려 대견하다고 생각했는지 활을 쥐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그는 속내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안심했다.

 

해가 지나고 지났다. 어머니께서는 그를 밖으로 불러 검을 쓰는 방법과 함께 시위 당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제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숨을 헐떡이고 땀 범벅이 된 얼굴을 손부채로 살살 열을 식히며 하루를 보냈다.

 

해가 또 지났다. 어머니께서는 그에게 말 타는 법을 알려주셨다. 또한 말 위에 서서 중심 잡는 법과 함께 말을 타고 시위 당기는 법을 알려주셨다. 진절머리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말을 타는 그 순간, 시원한 바람 사이 함께 쏘다니며 머릿속에 들어 있는 고민이 전부 날아가는 기분이 들어 그는 어머니가 주신 망아지에게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하는 명마의 종자였고 그는 그런 자신의 망아지가 자랑스러워 곧잘 타고 밖으로 나섰다.

 

그해 겨울 일이 터졌다. 근방에 떠돌아다니던 호랑이가 겨울철 먹이가 부족해 마을 가까이 오고 있던 것이다. 실전에서 활을 쏴본 적 없던 그는 버벅거리는 모양새로 시위를 당겼고 그로 인해 호랑이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금세 망아지 위에서 꼬꾸라졌고 그는 호랑이에게 물린 제 망아지를 버려두고 허겁지겁 마을 안으로 도망쳤다.

 

그날 밤 어머니의 따귀로 인해 입안이 알싸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모양새가 초라한 것이 사실이기에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손을 세게 움켜쥐며 어머니의 말을 꾹꾹 제 안으로 눌러 담아 자신의 무능함을 다시금 되새겼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되도록 밖을 돌아다니지 말고 안에서 연무하라는 것으로 끝났다. 그는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말을 따를 것이라 얘기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침상에 누운 그는 그리도 아끼며 애정을 쏟던 아이를 쉽게 버린 자신이 부끄러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몇 분 전 나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어기고 망아지를 버린 느티나무로 달려갔다. 호랑이는 제 망아지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눈 위에는 빨간 핏자국이 듬성듬성 이어져 있었다. 이미 그가 뒤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던 시점에서 그 아이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여기로 오면 무언가 바뀌리라 생각했는지 한참을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여우 석상 앞에는 많은 돌덩이가 쌓여있죠.

“그렇지….

“사람들은 돌을 올리며 여러 가지 소원을 빌어요. 자식이 생기게 해주세요, 이번 해 농사도 무사히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보릿고개를 무탈하게 넘길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번 해에는 과거를 보러 간 임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어머니가 병상에서 일어나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 나리도 소원을 빌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마을 태생인데 없을 리가 있나.

 

그의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무언가 시키고 가르쳤다. 어머니의 냉철한 표정이 무서웠던 그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 매달리며 노력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쉽사리 자신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자신의 헤픈 웃음이 아버지를 잊게 한다고 생각하신 걸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삼년상을 치른 후 어머니가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언제나 웃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지….

“소원은 이뤄졌나요?

“그랬으면 좋았을걸.

 

옅은 기억 속 어머니가 웃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너무나 어릴 적의 일이라 정확히 무엇이 원인이 되어 어머니가 그리도 환하게 웃었는지 모르겠지만 환한 미소를 품은 어머니는 정말 선녀 부럽지 않게 아름다웠다. 왕왕 떠드는 식솔들은 어머니가 웃음이 많은 분이었다고 했으니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어머니를 다시 웃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꿋꿋이 해왔다. 타인이 자신 속에서 어머니만을 찾게 된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여우 석상은 오래전 현관(現官)의 꿈속에 매구(천 년 묵은 여우가 변하여 된다는 전설에서의 짐승)가 나타나 자신의 상을 만들어 매해 5월 공찬한다면 그 지역을 지켜준다고 했대요. 아마… 그 매구는 자신을 누군가 알아주길 원해서 그렇게 했겠죠?

“알아주길 원하더라도 원하는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게 있는 법이지…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주지 않는 경우도 반드시 존재하고 노력의 방향이 항상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만 흐르지 않아.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느티나무 밑 여우 석상은 늘 웃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자신과 달리 헤실 웃는 꼬락서니가 분해 뒤틀린 심상으로 헤실 웃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생각을 바꿨다. 자신이 환히 웃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꿋꿋이 참아가고 있으니 그 말은 오히려 자신을 바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어머니가 자신에게 한 번만 더 미소를 지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어째서 그게 전부 자신의 노력이 아닌 어머니의 아들로서 당연한 결과로 치부되는 걸까, 억울했다. 자신의 노력을 허투루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꼴도 보기 싫었다.

 

“나리, 무진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필히 누군가에게 보이기 마련이에요. 나리의 노력을 누군가는 분명 알고 있을 거예요.

 

망아지를 잃은 날 느티나무 아래를 서성이던 그에게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아지가 내는 소리가 분명 아니었지만 그는 발걸음 재촉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검은 여우였다.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어 사람을 불러놓고는 그가 다가오자 쩔뚝거리는 다리로 어설프게 도망치려 했다. 그는 다친 여우가 자신의 망아지와 겹쳐 보였는지 그대로 보내기 아쉬워 몇 번의 숨바꼭질 끝에 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몰래 나간 탓에 종을 불러 아이를 씻길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아이를 씻겨주며 치료해주었다. 여우는 잠시 반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손을 받아들이며 후에는 제집인 양 그의 방안을 쏘다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여우는 그의 옆에 꼭 붙어 제 몸을 비비적거렸고 그는 그런 여우에게 목소리가 옥쟁반을 구르는 유리구슬 같다고 하여 유리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좋아했다. 어느새 집 안에는 여우가 살고 있다는 말이 돌아다녔고 그 얘기가 어머니 귀에도 들어갔을 게 뻔한데 어머니는 아무 말 않고 그저 이따금 자신이 연무를 제대로 하고 있나, 충고 차원에서 얼굴을 비쳤다.

 

여우가 집에 들어온 지 몇 주가 지났다. 여우는 그를 쫄래쫄래 따라다녔고 집 안에서 귀여운 강아지로 변해 다들 여우를 보면서 미소를 띠워 만지고 싶어 했지만 그 외에는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내심 다리가 나아도 자신의 곁에서 달아나지 않기를 빌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로서는 친한 친구를 잃은 기분이었고 한동안 여우와 같이 뒹굴며 놀던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유리라면 알아줄지도 모르지. 그리도 붙어 다녔으니.

 

그는 잊고 있던 여우가 생각나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던 그녀도 잇따라 입꼬리를 둥글게 올려 미소 지었다.

 

“나리, 지금도 여우 석상에 누군가는 소원을 빌고 있을 거예요. 산속 별채로 도망간 아들이 열병에 걸려 밤낮없이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은덕을 베풀어 아들을 낫게 해달라며 눈물을 쏟고 빌고 있을 거예요.

“…어째서 그대는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건가.

“당당히 인시(寅時)에 다닐 수 있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저는 여우 석상 얘기를 꺼냈습니다.

“설마… 그대가 그 매구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세하 도련님, 이제 일어나세요. 어머니가 걱정하세요.

 

대뜸 그녀의 머리 위에 여우 귀가 쫑긋하게 솟아올랐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어벙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왼 손목을 낚아채 둘둘 감아주었다.

 

“그, 그대는!

“아직 저를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만약 도련님이 원하는 게 있다면 석상 앞으로 찾아와주세요, 은혜를 갚으러 갈 테니.

 

그렇게 말을 끝마친 그녀는 그의 왼손바닥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 * *

 

“…의, 의원! 의원을 불러오게! 세하가 눈을 떴어!!

 

시간 속에 갇힌 것처럼 주변이 소란스럽게 움직였고 잠에서 깬 그는 그저 멍하니 방 천장을 바라보며 껌뻑껌뻑 눈꺼풀을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니 안절부절 자신과 문을 연신 번갈아 바라보며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는 지수가 보였다.

 

“세, 세하야. 내가 보이느냐?

“…잘 보입니다, 어머니.

 

며칠간 소리를 내지 않아 거칠거칠한 그의 목소리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잠을 ** 못했는지 초췌해 보이는 얼굴에 그는 손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볼을 쓰다듬었다. 지수는 그 손이 툭, 하고 떨어져 다시 사라질까, 볼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을 붙잡았다.

 

“너까지 가는 줄 알고 이 어미는…”

 

그가 쓰다듬는 볼에 촉촉한 물길이 생겨 그의 손등과 지수의 손등을 타고 그의 볼 언저리로 투둑 떨어졌다. 지수는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되레 세하를 지워 서둘러 한 손으로 눈을 비볐지만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 울리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그는 슬며시 양 입꼬리를 올렸다.

 

“어머니… 어머니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내 몇 번이고 웃어주마. 그러니, 그러니 다시는 그리 사라지지 말아라.

 

지수가 서둘러 세하를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오랫동안 올려지지 않은 입꼬리에 만들어진 어색한 미소였지만 세하는 그래도 좋았다. 선녀처럼 고운 미소라 생각했다. 그는 허리를 세워 일어나 문득 제 왼 손목에 감긴 검은 줄에 시선을 던졌다.

 

“유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가야겠어요. 소원을 이뤄줘서 고맙다고…”

 




남편을 잃은 지수가 만약 자신이 죽고 홀로 남을 세하를 생각하며 세하를 엄하게 대했고 그렇게 변한 지수로부터 미소가 보고 싶은 마음을 품은 세하의 내용입니다~~~ 사실 세하유리로 준비하던 내용이고 어,, , 지수 캐붕은 저도 할 말 이 업습ㄴ다,,,  서지수 사랑해 ㅎ 하여튼 위상력으로 외톨이라는 게 불가능하니 교육욕이 심한 어머니로 인해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못하고 글 공부랑 연무를 열심히 하는 세하입니다,,,캐붕인 거 알지만 조선시대 AU 먹어주세요 와~ !~ !~ ! 맛있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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