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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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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영하피] OH, MY HARPY
작성자 | 구금 등록일 | 2020.05.21 조회 | 192  

작년 7월에 공개된 아이돌 합작에 냈던 하피시영하피 입니다 핲시핲 우주 맛있고 , , ,, 다들 맛있는 핲시핲 한입해보십쇼, , , ,사실 마감할 때 여름 여행 일정 잡힌 게 있어서 퇴고를 급하게 하긴했읍니다 , , , 아무튼, , 진짜 , ,맛있음, ,, , 


아이돌합작이라 아이돌 AU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돌아온 우리의 디바! 하피 씨, 안녕하세요! 어휴, 요즘 너무 바쁘셔서 이렇게 날짜 하나 잡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니까요.

 

커다란 유리창에 스며드는 도시의 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밋밋한 회색빛의 암막 커튼을 쳐놓은 채 번쩍이는 화면을 응시하는 여성의 두 눈은 올곧게 하피를 향해 있었다. 천천히 진행자의 안내를 따라 길거리를 걸으며 팬들의 환호성 속에 둘러싸인 하피. 둥글게 올려진 입꼬리는 누가 보더라도 그녀를 행복한 여인으로 착각하게 만들었고 여성은 그런 하피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그와 비슷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최대한 부드럽게, 은은하게. 무릎을 꼭 껴안은 채 만든 미소는 화면의 하피와 비슷했을까

 

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주시다니… 한 분, 한 분 인사드리기 위해 제 그림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화면의 하피는 대중에게 천천히 손을 흔들며 다시 한번 입꼬리를 당겼다. 아름답네요…. 여성은 제가 지은 웃음이 화면 속 하피보다 못날 거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귀를 덮은 단정한 보브컷은 하피의 몸짓에 따라 가볍게 찰랑거렸으며 평소 즐겨 착용한다던 장갑에 미쳐 가려지지 않은 손목 부분이 카메라를 타고 제 뽀얀 살갗을 드러냈다. 저 하얀 피부에, 저 부드러운 머릿결에, 한데 어울려 빛나는 미소.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래. 저 군중 속에서 빛나는 하피야말로 아이돌 아니겠는가. 여성은 다시 한번 입꼬리를 당겼다. 어쩌면 하피와 비슷하게, 어쩌면 하피와 정반대로.

 

문득 여성은 TV 근처에 있는 디지털시계에 시선을 줬다. 오후 아홉 시. 늦저녁 번화가는 빛이 넘쳤고 제가 있는 방은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흑이었다. 굳이 꼽자면 흐름을 알리는 빨간빛과 하피를 표방하는 하얀빛이었다. 빨간빛과 하얀빛이 소파에 앉아 무릎을 껴안은 그녀를 물들였다. 저녁을 몇 시에 먹었더라, 아니, 먹기는 했나. 난 몇 시에 일어났지? 일어나서 뭘 했지? 씻기는 했나? 모든 게 의문이었다.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누른 여성은 두 다리를 소파 밑으로 내려 화장실로 향했다. 부스스한 머리, 번들번들한 얼굴. 일어나자마자 TV부터 켰던 건지 꾀죄죄한 모양새였다. 우선 씻을까.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아, 글렀네.

 

“몇 시에 자야 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사실 머리를 굴린 것도 아닌 단순한 느낌뿐이었지만 어제도 새벽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커튼을 쳐놓은 방 안에서 흐름을 알려주는 건 오직 시계뿐이었고 그 유일한 시계는 특별히 나서서 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제 일을 할 뿐. 그래,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정각마다 우렁차게 때를 알리는 것도 아니었고 아침마다 소란스럽게 저를 깨우지도 않았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는 여성에게 꼭 맞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오직 이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게 주어진 일인 여성과 똑같은 그림자로 말이다.

 

“그렇다면 저 시계는 전기를 급료로 받겠죠.

 

간단하게 씻고 나온 여성은 거실 벽에 덩그러니 놓인 시계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입을 열어야 조용한 집 안에 그나마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온기가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저를 맞이하는 빨간 불빛에게 인사를 해야 비로소 본인이 이 집 안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 제 꼴은 미처 수건이 가져가지 못한 물이 머릿결을 타고 그대로 허리를 적시고 며칠 전부터 꺼내 입었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 그런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싶었다.

 

여성은 화장실 문을 닫고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해 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소파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 위에 얹어 놓은 수건으로 다시 머리카락을 움켜줘 꾹꾹 눌러 물기를 없앴다. 제가 앉는 삼인용 소파 가운데 자리에 수건을 펴놓았다.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일련의 과정 속 군더더기는 없었고 이 생활에 충분히 적응한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여성은 그런 생각을 반박할지도 모른다. 적응이요? 당신, 시간이 멈췄다는 걸 느껴본 적 있나요? 되물으며 은근히 타박할 거다. 밤이고 낮이고 어쩌면 저 아홉 시가 오후 아홉 시가 아니라 오전 아홉 시일지 알겠는가? 시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는 보장을 누가 해준단 말인가. 그녀가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고 낮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방송은 날짜를 헷갈리게 했다. 분명 어제 자기 전에 봤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다시 켰을 때 똑같이 나오고 있다. 어쩌면 내가 깜빡 잠이 들었던 건 아닐까?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조차 여성이 지금 숨을 쉬며 존재하는 인간인지에 대한 답을 내려주진 못했다. 입 밖으로 그런 생각을 내뱉을수록 점점 더 꼬이기만 할 뿐이었다.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건 뭘까. 여성은 그에 대한 답을 미뤘다. 본인에게 하는 질문은 본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여성은 소파에 놓아둔 리모컨으로 다시 TV 전원을 켰다.

 

, 저기 학생이 하피 씨의 매력 중 빠질 수 없는 목소리, 를 말해주셨네요. 사실 하피 씨는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랑 무대에서 노래할 때 목소리가 조금 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여전히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보다 늘어난 사람들과 그 속에서 개의치 않고 방송을 계속하는 진행자와 하피. 그 둘은 그런 환경도 수용할 수 있고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이 되레 자리에 멈춰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듯했다. 어쩌면 다소 무례할 수 있는 말을 슬그머니 꺼내는 진행자에 맞춰 하피는 올라가는 제 입꼬리를 숨기지 않았다. 실실 웃는 모양새로 있던 하피는 참을 수가 없는지 기어코 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많이 듣는 얘기예요. 굳이 그렇게 동의를 받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그만큼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빼앗았다고 생각해요.

 

당연하게도 화면 속 군중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생방송이라고 했지만 이미 도입부부터 하강부까지 완벽하게 짜놓은 플롯을 훑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성은 만약 지금 서 있는 곳이 이 방 안이 아닌 저 번화가의 하피 앞이라면 분명 본인도 그렇다고 말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하피는 그런 힘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제 뜻대로 사람을 쉽게 뒤바꿀 수 있었고 그건 노래를 하는 것과 다른 힘이었다. 무대를 장악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맥락이었다.

 

“마음을 빼앗는

 

하피. 잔인한 여자를 뜻하는 말. 그 단어의 기원이 되는 신화 속 하피는 괴물이었다. 여성의 얼굴을 가졌지만 밑으로는 긴 발톱을 가지고 날개가 달린 추한 괴조로 말이다. 바람처럼 날래고 재빠른 능력을 가지고 약탈하며 죽은 영혼을 낚아채 간다는 괴물.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활동하는 아이돌의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다는 말에 소속사에서는 대중의 마음을 낚아채 가라는 의미에서 지었으며 간혹 신화에서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는 점에 착안해 혜성처럼 나타나 사람의 마음을 낚아채 가라는 뜻이라 풀어줬다. 어쩌면 하피는 그런 벌처스의 의도에 맞게 성장하고 있는 거였지만 그건 하피가 가진 미지의 힘을 설명해주진 않았다.

 

, 벌처스 호텔이요? 홍보는 아니고 시설이 좋아 애용할 뿐이에요. 도심 속에 있으면서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게 가장 큰 장점이죠. 방마다 암막 커튼이 달려 있어서 낮에도 밤처럼 잘 수 있어서 좋아요. 전 회사 자랑을 잘하는 편이라 좋은 점이라면 끝없이 말할 자신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잠시 여성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 화면 속 하피는 능청맞게 웃으며 진행자를 바라봤다. 진행자는 호텔 이름을 숨기려고 했던 모양인지 하피가 직접적인 호텔명과 회사를 언급하자 머쓱하게 웃으면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하하, 역시 평소 회사 물품을 애용하는 시영 씨답게 거침없네요. 마지막 질문의 답은 편하기 때문! , 정말 아쉬워요. 더 많은 질문이 있을 텐데 이렇게 마무리를 해야 하다니…

 

프로그램의 막바지, 곤란한 진행자의 웃음에 맞춰 천연덕스럽게 입꼬리를 당기는 하피를 바라보는 순간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아름답다. 사람을 이렇게 찬양해도 괜찮을까. 이미 당신을 탓하기엔 빛에 취한 나방이 되어 버렸어.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의문을 던질수록 명확해진 건 하피의 존재였다. 이 방 안에서 저를 확립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TV 속 하피가 부드럽게 만든 웃음만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저 웃음이 본인의 것이었는지 원래 하피의 것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하피가 지은 웃음이니 그에 빠졌을 뿐이다. 어째서 당신이었을까. 왜 그날 만났을까. 시영 씨가 날 눈여겨본 건 언제부터였을까.

 

* * *

 

“프롬퀸, 이라고 했나요? 좋은 목소리예요. 우리 벌처스에서 가져가고 싶네요.

 

늦은 저녁 어른인 척 홀로 앉아 시간을 때우던 프롬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몇 부류 되지 않았다. 시답잖은 말을 걸며 어떻게 해서든 엮어보려는 사람이거나 노래 한 곡 더 시키려고 오거나. 시큰둥하게 물컵을 만지작거리던 프롬퀸은 벌처스, 라는 단어에 의아하며 고개를 돌렸다. 벌처스? 계열사 많은 그 회사? 굳이 이 판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안 들어볼 수가 없는 회사였다. 근래, 적어도 일주일 동안 들었던 말 중에 제일 흥미로울 거다, 그렇게 확신하며 모로 돌아간 얼굴을 맞이한 건 그럴듯하게 입꼬리를 올린 여성이었다.

 

“전 벌처스에서 일하는 홍시영이라고 해요.

 

시영은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프롬퀸 옆에 앉아 장갑 낀 손으로 제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쓱 내밀었다. 정갈한 모양새에 적힌 석 자는 명확했다. 벌처스. 홍시영. 처음 받아보는 벌처스 명함이었기에 거짓임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또 엮어보려고 꺼내는 거짓일지 누가 알겠는가. 프롬퀸은 최대한 태연하게 그래서요? 말을 꺼냈지만 이미 시영은 그런 답으로도 만족한 것인지 다시 한번 입꼬리를 당겨 프롬퀸 쪽으로 제 몸을 가까이 당겼다.

 

“뭐긴요. 스카우트죠.

 

스카우트. 프롬퀸은 명함을 쳐다보며 제 나름대로 수지를 계산해봤다. 유니온을 뛰쳐나오고 몇 날 며칠이 지났더라. 구로 근처에서 소리를 판 지 제법 됐지만 여기는 구식 구로의 구석진 곳이 아니던가. 벌처스의 귀까지 들어갈 수는 없을 거다. 게다가 연습생 생활이 싫어서 나왔는데 다시 벌처스 밑으로? 벌처스라는 단어는 흥미로웠지만 이도 거기까지였다.

 

“죄송하지만, 괜찮아요.

“유니온 연습생 생활을 그만둔 건 제약이 많아서였죠? 저흰 바꿀 수 있어요.

 

프롬퀸은 그걸 어떻게? 하는 질문 대신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시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검은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더라면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벌처스에 들어가서 뭐를 할 건데. 자신은 지금 생활에 제법 후한 점수를 내리고 있었다. 근근이 목소리를 팔았고 이도 귀찮을 때면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다 몸을 쓱 부딪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는 가끔 저를 쫓아오는 사람을 따돌리고 요즘은 다들 카드만 쓰네, 하고 투정을 부리며 하루를 지내다 보면 내일이 찾아왔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냈는데 이제 와서? 혹한 마음에 연습생 생활을 했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면 저를 억압하는 규칙뿐이었다. 지금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단어로 유혹하는 모양새가 기가 차긴 했지만 어쩐지 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신다면 내일 오후 1시쯤 여기가 아닌 새로 지어진 구로역으로 와주세요. 그럼 기다릴게요, 프롬퀸.

 

시영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프롬퀸이 나올 거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웃음인지 이도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보단 인상 깊었다. 그리고 보브컷이 잘 어울렸다는 점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되게 젊어 보였는데. 거짓말 아니야? 구로역에 나갔더니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다든가.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최악을 생각해야 다음을 구상하기 쉬웠다. 그 홍시영이라는 여자를 만나서 생기는 끔찍한 일은 아마도 스카우트라는 건 전부 다 거짓이고 나를 어딘가에 써먹기 위해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는 게 농담이 아니라면 뭐 녹음시키고 돈을 주지 않는다거나 이조차도 속임수면 정말 팔려 가는 거겠지? 그려본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 할 일은 단순히 구로역에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애당초 홍시영이 혼자 잡은 약속이고 굳이 지켜야 할 의무도 없었다.

 

“오후 1시….

 

몇 없는 일정을 뒤적거려도 오후 1시는 비는 시간이다. 힘들게 계획을 만들면 길거리에서 슬쩍 손을 뻗는 시간이었고 간단하게 만들면 드러누워 있을 시간이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거였지만 만약 그렇게 행동한다면 홍시영은 도망쳤다고 생각할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봉고차면 뭐 어때. 오히려 그쪽이 더 재미있는 데다가

 

“달아나는 건 자신 있는데.

 

구로역 출구 근처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시영을 기다리고 있자니 예상외로 시영은 멀쩡하게 나타났다. 봉고차를 타지 않았고 택시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지하철을 이용한 모양인지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왔다. 혹여 주변에 다른 커다란 차가 있지 않을까, 싶어 두리번거려도 휑했다. 굳이 덩치가 있는 차를 꼽자면 십여 분 전 지나간 도로 주행 연습, 이라고 쓰인 승합차뿐이었다. 정말 가도 괜찮을까, 꼴사납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지만 프롬퀸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정말 약속을 지켜? 대체 왜? 벌처스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벌처스에 스카우트 됐던 적이 있다는 경험담을 풀기 위해?

 

“역시, 나올 줄 알았어요. 반가워요, 프롬퀸.

 

여러 가지 고민을 해봤지만 프롬퀸을 먼저 발견한 시영이 어제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반기자 모든 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그…래요. 시영 씨.

 

저 사람한테 흥미가 생긴 거야.

 

* * *

 

옷까지 갈아입어 부엌에서 토스터에 구운 식빵을 베어 물며 첫 만남을 회상하던 하피는 곧장 시영에게 붙잡혀 당한 여러 가지 일을 떠올리려 했지만 역시나 생각나지 않았다. 단편적으로 생각나는 이미지를 자세하게 늘어트릴수록 솟구치는 욕지기가 하피를 막는 건지 이도 아니면 정말로 시영에게 모든 걸 넘겨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저를 하피라 칭하며 제 웃음, 목소리를 앗아가더니 이윽고 이름까지 가져가 버렸다는 사실 하나가 남아 하피를 괴롭혔다. 유니온에 있을 때 내가 뭐라고 불렸지? 시영과 찰싹 붙어 지냈던 그 3년이 하피의 과거를 먹었다. 잘근잘근 씹어 꿀떡 삼킨 시영은 하피를 극진히 대했다. 그 누구에게도 저를 보여주지 않았고 꼭꼭 숨겨 오직 본인만 볼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었다. 시영의 사랑을 독차지한 하피의 역할은 단순했다. 시영을 위해 노래를 부르면 되는 거였다. 그러면 시영은 자신을 통해 그 목소리를 세상에 선보였고 하피는 어둠 속에서 그걸 바라만 보면 됐다. 시영이 사랑받는 세상. 어쩌면 내가, 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며 아니야, 시영 씨는 그럴만한 사람이야, 하며 대신 변호해준다. 나아가 시영의 좋은 점을 굳이 찾아내 알려주기까지 하는 친절함을 보인 자신이 기이했다. 시영이 가진 미지의 힘은 저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아, 하피. 일어나 있었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을 끝낸 시영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딸칵 불을 켰다. TV 속 번화가는 호텔 주변에서 이뤄졌는지 빠른 귀가에 하피는 두어 번 제 눈을 깜빡이더니 시영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조차 시영이 정해준 습관으로 생긴 버릇인지 이제 와선 알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시영이 오면 하피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어주면 되는 거였다.

 

“방송 봤죠?

“그럼요. 시영 씨 방송을 제가 놓칠 리 없죠. 사람들이 많던데 피곤하진 않으셨나요?

 

하피를 향해 몸을 틀며 슬쩍 소리가 나는 TV를 바라본 시영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며 물었다. 그 입에서 뭐가 나올 줄 알고 있으면서 구태여 묻는 시영은 제 이름을 부르는 하피의 목소리에 만족하며 하피와 비슷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외투를 벗어 소파에 올린 채 부엌으로 가면 하피가 저에게 마실 물을 줄 거다. 둘의 동작은 여러 번 호흡을 맞춰 연습한 배우의 몸짓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 정말. 귀찮았죠.

“바로 주무실 건가요?

 

물을 건넨 하피는 몇 입 남은 식빵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서 시영이 할 다음 행동을 기다렸고 꿀꺽 연하하는 생수를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영이 있는 순간부터 여긴 이미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 더는 답이 나오지 않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됐고 시계에게 던지는 여러 말을 내뱉지 않아도 됐다. 시영이 있음으로 하피의 세상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글쎄요. 오늘 밤은 어떻게 할까요.

 

oh, my Harpy. 갑자기 내 모든 걸 빼앗아 내 모든 게 되어버린 하피. 나에게 있어 시영 씨는 진정한 하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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