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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너는 나에게 피었다. 上 : 유리와 정미의 이야기

작성자
세하느
캐릭터
이세하
등급
정식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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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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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금 특별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달래주고 싶은 마음도, 유일한 너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모두 다, 너가 조금 특별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서로의 전부가 됐으면 좋겠다는 어렸을 때의 내 마음은 새하얗게 흩날려 갔지만, 너는 여전히 내게 독처럼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너를 닮은 꽃의 향만큼이나.



너는 나에게 피었다.

W세하느​


기억나지 않을 어렸을 때부터 우린 친구였다. 어느샌가 넌 내 옆에 있었고 나는 너의 옆에 있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것처럼 우린 당연하게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가 같은 반이 되었고 내가 억지로 자리를 바꿔 너의 짝이 되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해져 버렸다. 비록 나는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만, 원래 나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대각선 앞에 앉아 있는 너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매 수업 시간마다 너의 동그란 뒷통수를 바라보며 연필을 굴렸다. 종종 너가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반가움에 눈꼬리를 휘어 웃어줬고 너는 처음 몇 번은 당황했지만, 늘 나와 마주치는 눈에 익숙해진건지 나를 보고 예쁘게 웃어주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책상을 붙여놓고 마주 앉아 숟가락질을 하면서, 대체 수업 시간에 수업 안 듣고 뭐하냐는 너의 진심어린 타박도 나는 그저 기뻐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못했다. 너는 매일 그렇게 웃기만 하더라ㅡ, 너는 또 뭐가 불만인지 투정을 부리다가 금세 다른 얘기를 하곤 했지만.


너의 얼굴을 마음껏 보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이런 점심시간마다 나는 즐거웠다. 어떤 날엔, 이런 일이 있었다. 너는 종종 콩이나 당근 따위를 답지 않게 골라내곤 했다. 좋고 싫은 게 늘 확실한 너라 음식에마저 그런가 싶어 별다른 말 없이 종종 네가 골라낸 콩을 내가 대신 먹곤 했었는데, 늘 어른스럽게 구는 너가 자신도 역시 애라는 듯 그날도 역시 당근을 골라내는 게 내 딴엔 조금 못마땅한 기분이 들어 내 젓가락 한 짝으로 네 식판에 있던 당근과 소시지를 같이 찍어 네 앞으로 내밀어 버렸다. 너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눈살을 찌푸리고 툴툴대더니 ㅡ나 팔 아파, 한 마디에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못 먹을 걸 먹는 마냥 눈을 꾹 감고 있는 걸 그렇게 싫은가 싶어서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데 너는 목울대를 울리더니 뭐, 먹을만 하네. 라며 나를 흘겨봤다. 그래. 잘했어, 정미야. 너는 또 나에게 매일 웃는다며 입술을 비죽였다.


종종 남자애들과 축구를 하던 나와 달리 넌 콩알만한 글씨가 빽빽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햇빛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내가 밖에서 노는 날이면 꼭 자기도 나와 벤치에 앉아있겠다 고집을 부려서 오히려 힘든 건 내 쪽이었다. 발에 채이는 공보단 너가 더 신경 쓰였고, 골문 앞에서도 앞에 있는 골키퍼보다 그 뒤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니가 눈에 더 밟혔으니까. 그래서 난 너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정미야, 교실 안에 있어. 창가에서 날 내려다 볼 수 있잖아? 내가 골 넣으면 널 볼게! 넌 내 말에 알겠다고 했고, 나는 나를 내려다 볼 너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2층 우리반 창가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널 종종 올려다보며 난 생각했다. 수업 시간에 너가 날 돌아 볼 때 느끼는 기분이,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검도를 시작했다. 해보고 싶던 거였고, 운동을 좋아하고 재능을 보였던 나라 부모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셨다. 분명히 나는 취미로 생각하려 했지만 오가는 얘기를 들으니 그러기는 틀렸단 생각이 들었다. ㅡ원래 애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코치님과 엄마가 나누는 지루한 대화를 들으며 나는 네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정말 운동 시작하면 많이 바빠질 거 같은데.] 몇 분 이따 도착한 너의 답은 참으로 너다워서,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너 운동하는 거 보려면 같이 바빠지겠네.] 내 도복 입은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이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휘두르는 거냐고 도장에 와서 종알댔던 너도 점점 공부가 바빠지면서 뜸해졌지만, 단 심사가 있는 날은 학원도 미루고 나를 보러 와주곤 했다. 그렇게, 돌아보면 너와 눈이 마주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늘 용기를 얻었고 자신감이 생겼고, 행복했다.


교복을 입게 되고, 우린 여전히 같은 학교였다. 비록 운동을 좋아하는 나와, 생물학을 좋아하는 너라서 같은 반이 될 수는 없었지만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종종 만나 얘기를 나누는 너와의 일상이 소중했다. 너의 친구가 나 하나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반 애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반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니가 자랑스러웠다. 너가 내 체육복을 빌리러 오면 나는 체육복을 언제 세탁했는지 내가 땀을 많이 흘리진 않았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러노라 답했고, 너가 우리반에 와서 나와 친하게 지내는 몇몇 애들에게 예쁘게 인사하는 게 한편으로는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학교가 끝나도 우린 징하게도 붙어다녔다. 차원종 때문에 한창 시끄러울 때, 나는 신서울 주변이 위험하다는 핑계로 등교길도 하교길도 너와 함께하길 원했다. 그런 게 나오면 너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장난스럽게 물어본 네 질문에 나는 괜히 눈을 굴리며 진땀을 뺐던 기억도 있다. 내가 죽도로 후려패줄게! 너는 내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바보야, 내 손을 잡고 뛰어야지. 만약 내가 못뛰면.. 뭐, 너 혼자 가도 돼. ㅡ에이, 정미도 참! 내가 어떻게 혼자 가냐! 너의 앞에선 잔뜩 으름장을 놓았지만 나는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생전 안봤던 뉴스와 귀담아 듣지 않았던 재난대비훈련을 원망하며 차원종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봤다. 정말로 일반인의 공격은 안통하는구나..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내가 너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원래 친구라는 건 이렇게 지켜주고 싶은 걸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너의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너가 나오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도 집 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너의 전화기는 꺼.져 있다는 건조한 안내 음성으로만 답해 나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하며 홀로 등교할 수 밖에 없던 그런 날이었다. 분명히 넌 어제 좋은 일이 있다며, 오늘 말해주겠다고 웃으며 나와 헤어졌다. 그런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되는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질 못했다. 쉬는 시간마다 너희 반으로 찾아가 너를 찾던 까닭에 소식이 있으면 말해주겠다고 너희 반에서 너와 친한 아이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 친구도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초조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늘 내 곁에 있던 너였고, 설령 가족 여행을 간다던가 하는 이유로 나에게서 멀어진다 하더라도 내게 꼭 연락을 하던 너였다. 전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별 반짝일 때 침대에 누워 네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깨닫고 나서 너의 전화를 종종 기다리곤 했으니까. 그래, 그랬다.


혼자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려던 때, 핸드폰이 울렸다. 급하게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은 반짝거리며 너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여보세요란 형식적인 인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은 건, 너의 울음소리였다.


말도 못하고 내 이름만 부르며 우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심장이 꽉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어디야, 갈게. 다급한 나의 목소리에 너는 뭐라 웅얼거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어야하나 싶어 핸드폰을 봤는데 네가 보낸 메시지 창이 떴다. 눈에 보이는 장례식장의 이름에, 나는 숨이 탁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왔다. 너가 지금 나를 봤다면 위험하다고 화냈을텐데, 오늘만 봐 줘. [정말 죄송해요.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 멋대로 코치님께 자칫 버릇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내버리고, 나는 네가 말한 그 곳이 서울 어디에 붙어있는 지도 모른 채 택시를 잡아탔다.


정말로 네 생각만 하며 창밖의 가로수가 내 옆을 지나치는 걸 멍하니 바라봤지만, 그래도 너를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우는 너가 내 앞에 있으면 나도 같이 울어버릴 것만 같고, 나는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고, 내 마음이 너무 아려서 움켜쥐어야 할 것만 같은데, 너를 보면 내가 너무 아플 거 같은데 이런 내가 대체 널 어떤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택시에서 내리고 호흡을 고르며 생전 처음 와보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나는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엔 원색의 가방이 있고, 죽도집을 어깨에 메고, 교복 차림인 나를 내려다보며 과연 이대로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입구 근처의 화장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자세히 보니 정미의 어머니셨다. 눈이 마주치고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을 굴리며 당황하다가 인사도 드리지 않았단 사실이 떠올라 고개를 꾸뻑 숙였다. 귓가로 잔뜩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ㅡ유리 왔구나, 정미는 안에 있단다. 나는 작은 보폭으로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너는 처음 보는 까만 옷, 그러니까 상복 차림이었다. 널 보면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했던 내 고민이 무색하게도 너는 나를 보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보고싶었다며 울었다. 너 언제부터 울었어. 너 이러다가 탈진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너에겐 들리지 않는지 너는 나를 껴안고 계속 울 뿐이었다. 팔을 올려 한 품의 너를 마주 안았다. 미안해, 옆에 없어서 미안해 내가. 이제 와서 미안해. 우는 널 보니까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숨 쉴 때마다 따끔거리는데, 지금 나보다 더 아플 네 몫까지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이 때보다 한참 전일 지도 모르지만, 난 아마 이때 깨달았던 것 같다. 정미야, 내가 너를, 정말로.. 많이 좋아하나 봐. 너가 이렇게 우니까, 내가 너무 힘들고 아파. 근데도 너가 아픈 거까지, 내가 아파버리고만 싶어.


끌어안고 있어 귓가에서 울리던 네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어깨를 감은 손을 풀고 네 얼굴을 보려는데 물기 어린 축축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주머니에서 너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네 작은 머리통이 내 어깨 께에서 멀어지고 너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나는 네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매점에서 이온음료를 하나 사 네 손에 쥐어주고 네 옆에 앉았다. 캔을 따는 소리가 나고 네가 목을 축이는 소리가 났다. 한참 후에 너가 처음 한 말은 어깨를 적셔서 미안하단 심심한 사과였다.


너는 어제 하교 후에 아버지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고 했다. 오랜만에 바쁘신 아버지가 너를 위해 낸 휴가였고, 너는 말하지 않아도 참 행복했겠지. 하지만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름 안전하다고 판명되었던 곳에 차원종이 출몰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아이와 여자부터 빠르게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ㅡ정미야, 먼저 가 있어. 아빠가 금방 따라 갈게.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도착한 경찰과 안전 요원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너의 목소리가 다시금 젖어 가는 것만 같아 나는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너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너는 건물 밖에서 투입되는 클로저들과 특경대원들을 바라보았고, 구출되는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리고, 정미의 아버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너는 고개를 숙이고 허벅지에 눈물 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또 마음이 아파와 안절부절 못하고 너를 바라보기만 하는데 너는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유리야, 나는 어제 해가 지도록 아버지를 기다렸어. 거긴 나처럼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어. 그들이 다 가버릴 때까지, 엄마한테 연락도 못드렸는데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본 엄마가 먼저 내게 연락할 때까지, 엄마가 망부석처럼 서있는 날 데리러 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지하에 민간인들이 많았는데, 국회의원 가족이 있는 2층에 먼저 갈 수 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클로저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그게 상부의 명령이란 것도 들어버리고 말았어. 어떡해, 나. 유리야, 유리야.. 나는 엄마한테 이 얘기를 할 수가 없었어. 너한테밖에 할 수가 없어. 나는‥


나는 너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뱉는 이야기에 그저 너를 꽉 끌어안고 등을 다독여줄 수 밖에 없었다. 많이 아팠구나. 지금도 아프겠구나. 갈 곳 없는 분노에 혼자 살아남았단 죄책감에 너무 힘들었구나.. 나는 너의 어깨의 떨림을 느끼며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늘 행복하면 좋겠는 네가 왜 이렇게 힘들고 아파해야 되는 걸까. 정미야, 넌 잘못한 거 없어. 다 그 사람들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넌 죄책감 가지면 안 돼. 말이 없는 네 귓가에 조용히 말하며 나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반쯤은 너가 아프고 힘든 게 마음 아파서, 그리고 반 쯤은 너가 아픈만큼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너는 그 날 이후로 많이 달라졌다. 활발하고 노는 걸 좋아했던 너는 정말 공부에 매달렸고, 웃는 횟수도 현저히 줄었다. 그래도 넌 나와 있을 때면 전과 같이 웃어줬고 그건 나에겐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너는 어쩌다가 클로저의 얘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했다. 너는 그 일 이후로 클로저들을 아주 싫어하게 된 듯 했다. 아픈 기억을 헤집고 싶지 않아서 너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뉴스에서 클로저의 얘기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너의 행동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너는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연락도 뜸해지고 하교 후엔 학원이나 독서실을 다녀 너는 많이 바빴다. 너를 보기 위한 핑계로 수학 문제를 물어보려 문제집을 들고 너의 반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너의 주위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여전히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서 다행이네. 너가 바빠보여 그냥 뒷 문을 닫고 나가려던 날 너의 친구 중 하나가 알아채고 너를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온 걸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너는 특목고인 신강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했다. 와 거기 가려면 공부 진짜 잘해야 하잖아. 나는 꿈도 못꾸겠네. 뒷말은 밥숟갈과 함께 삼켰다. 오랜만에 같이 하게 된 점심시간이었다. 너의 말에 나는 너랑 지금보다 더 멀어져버릴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지만 내색은 차마 하지 못했다. 너는 꼭 갈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너는 그저 그러면 좋겠다고 무심하게 말하며 반찬의 당근을 집어먹었다. 나는 또 그런 너를 보고 문득 서운해지고 말았다. 너는 나와 헤어지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걸까. 나는 너가 없는 내가 너무 걱정되는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갖게 된 담임선생님과의 진학 상담 시간에 너의 말이 떠올라 신강고를 가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단박에 무리라고 하실 줄 알았던 선생님은 운동 특기자니까 그것도 괜찮겠다며 나를 놀라게 했다. 저 정말 거기 갈 수 있는 거에요? 눈을 반짝이며 물었더니 선생님은 이것저것을 찾아 알려주셨다. 부모님과는 얘기해봤니? 고개를 젓는 내게 선생님은 부모님과 상담 후에 다시 상담을 하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그러기로 했고,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오히려 좋아하셨다. 실기 준비만 하면 되는건가? 인터넷으로 입시 요강을 찾아보면서도 나는 참 기뻤다. 순전히 너를 조금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다가 난 신강고등학교가 한국의 위상 능력자들이 모이는 학교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보통 어릴 때 각성하는 위상 능력자들을 성인이 가까워지는 고등학교 시점부터 한데 모아 관리하는 곳. 저들중 대부분은 클로저가 되고, 못해도 유니온에 입사하게 되겠지. 나는 너가 이 사실을 알고 진학을 포기할까 걱정했지만 넌 그저 내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확실한 장소라 꼭 가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같은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걱정하던 너는 꽤나 높은 석차로 입학하게 됐고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을 알고 많이 기뻐했다. 많이 걱정했는데, 너가 있어서 다행이야. 네 말에 나도 웃으며 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점점 거짓말이 늘어간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다 너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오고 우린 서로의 일 때문에 더욱 바빠졌다. 너는 매일 달이 떠서야 집에 갔고 나는 늘 오전 수업만 듣고 훈련에 임했다. 등하교는 물론 점심시간에도 널 보기가 어려웠다. 가끔 오가다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종이 쳐도 짧은 얘기가 아쉬워 복도에서 서성일 뿐.


[대회인데 못 가서 미안해. 잘 할 수 있지?] 빈 잔에 우유를 채워넣으며 네게 온 메시지를 곱씹었다. [응!! 1등하게 응원해주기다?] 자칫 건조해보일까봐 메시지에 문장부호를 꾹꾹 찔러넣으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대회라 모처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다. 한창 시험기간의 너는 너무 바빴다. 너를 보고싶다고 조른다한들 나 또한 시간에 쫓겨 쉽사리 그러지도 못한다. 아쉽다. 손 뻗으면 곁에 있던 너가 점점 나와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너와의 통화도, 너와의 점심시간도 모든 것이 너무 그리운 날이었다.


그리고 전국 검도 대회의 날이 밝았다. 전국 규모의 대회는 처음 출전하는 것이다. 잠을 설친 것은 어쩌면 떨림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었을 것만 같지만 실제로 경기장의 규모를 보니 긴장감이 들긴 했다. 부모님과 코치님은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거라고 날 격려하셨지만 나온 이상 목표는 1등이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그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또,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네게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네 모습을 보고 힘낸 것처럼, 너도 내 모습을 보고 힘내길 바라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네게 칭찬을 듣고 싶었다. 웃는 네가 말해주는 잘했어, 유리야! 이 한 마디가 너무 듣고 싶었다. 죽도를 움켜쥐었다. 서유리, 하던 대로만 하자.


그리고 내가 받은 결과는 놀라웠다. 속으로 큰소리를 땅땅 쳤던 나지만 실제로 이 정도 수준을 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내 마지막 일격은 흠잡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해 호구를 벗고 심판을 바라봤는데 심판은 별안간 경기를 중지시켰다.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봤는데 다들 술렁이고 있었다. 나와 나의 관계자들은 회의실로 오라는 명을 받았다. 비디오 판독을 한다고? 검도에 그런 게 왜 필요한데? 나는 그저 어른들을 따라갔다. 그 후에 벌어질 일을 상상도 하지 못한채.


ㅡ반칙패라뇨?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항의하는 코치님과 부모님들 사이에서 멍하니 눈을 깜빡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위상력 능력자라구요? 떨리는 내 물음에 목소리를 높이던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중 부정의 말을 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대는 다치지 않았나요. 차갑게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다들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선, 불행 중 다행이네요. 헛웃음이 나왔다.


그 때 내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너여서.

뒤늦은 각성으로 나와 부모님은 이래저래 바빠졌다. 당연히 나의 진로라고 생각했던 검도는 강제적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여태까지 타낸 내 상패를 모두 몰수당했다. 몇 년 간의 나 자체가 싸그리 날아간 기분이었다. 온종일을 유니온이네 대한 검도회네 하는 곳에서 시달리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야 핸드폰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찍혀있는 건 부재중 전화 몇 통과 메시지 여러 개. [유리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서유리, 이거 보면 연락해.] [유리야.] 마지막 메시지는 꽤 최근이다. 너도 이 시간까지 잠 못들고 있을까. 내가 읽은 걸 알았을테니 뭐라도 대답을 해줘야하는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주저하다가 그냥 대화방을 나와버렸다. 차마 너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클로저 제의, 아니 말만 제의고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질문까지 받았다지만 고작 텍스트조차로도 너를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는 겁쟁이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고도 이곳저곳에서 온 연락이 많았다. 다 친구들의 무슨 일이냐는 물음. 너가 위상 능력자라는 게 진짜냐는 물음. 소문 참 빠르구나 싶다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려있던 뉴스 기사가 생각났다. 분명히 정미도 다 알아버렸겠지.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대회가 취소됐다는 것도. 그 까닭이 나라는 것도, 위상력에 관련됐다는 것도.. 일일이 눌러보2지 않고 대화방 목록을 거의 끝까지 내리다가 나는 낯선, 하지만 알고 있는 이름이 눈에 띄어 눌러볼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위상 능력자였냐? 반갑다.] [아, 나는 E반 이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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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클릭 시 이동됩니다. 석봉슬비 같은 경우는 정말 좋아하는 컨셉인데 길어서 그런지 혹은 소재가 별로여서 (..) 그런지 묻힌 감이 있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그러니까 봐달라는 말임.






유리정미 같은 경우는 현 최애 커플인만큼 꾸준히 쓸 거 같음! ㅎㅎ 이어지는 다음 편 쓰고 싶을 때.. 써서 가져오겠음. 사실 한 편에 다 몰아쓰려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예정과는 다르게 그냥 끊어버렸음. 다음 편이 中일지 下일지는 잘 모르겠음.. (._.)


그럼 다들 유리정미 파세요. ★갓정미 찬양해★


필터링 짜증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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