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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너는 나에게 피었다. 下 : 유리와 정미의 이야기

작성자
세하느
캐릭터
이세하
등급
정식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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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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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이 있습니다.



​너는 나에게 피었다.

W세하느

은 시간이었음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세하에게 답문을 보냈다. 상당히 성의없게 건넨 짧은 인삿말에 한참이나 답이 없어 자는 줄 알았더니 조금 후에 게임 중이었다는 메시지가 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이 시간에 깨어서 한다는 게 고작 게임이라니. 남자애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지만 우리 학교에 이세하란 애가 있다는 사실은 신강고의 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바로 그 위상 능력자였고, 그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이미지가 있길 마련이라 나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 미안한 마음이 들 뻔 했지만, 색안경이 벗겨진채 보는 모습은 또 이것대로 실망스러워서 별다른 티는 내지 못했다. 이세하는 뜬금없이 학교는 언제부터 나오냐고 물었고,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럼 내일 잠깐 만나자는 제안을 해왔다. [너가 나를 왜?] 녀석은 또 게임 중인지 한참은 대답이 없다가, 만나서 할 얘기라며 짧은 답을 보냈다. 대충 이세하의 하교 시간에 약속 시간을 맞추고 얘기를 끝낸 후, 나는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였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오늘 하루동안 지나치게 많은 일을 겪었고, 그건 내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 세워진 죽도를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 개인채 놓인 도복도.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으니 너의 모습이 그려졌다. 넌 자고 있을까. 만약 아니라면, 널 지금까지 깨어있게 만든 것은 나일까.

눈을 뜨자마자 불려나간 곳은 아니나 다를까 유니온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테스트를 받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했다. 연구소의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지만 나를 좋지 않게 보는 다른 위상 능력자들 또한 있었다. 분명히 처음 검도 훈련을 받았을 때보다 간단한 것들인데 왜 나는 이렇게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다 내 곁에 네가 없어서일까. 지친 몸으로 휴게실에서 늘어져있다가 약속 시간이 다가온 걸 깨달은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이세하가 잡은 약속장소는 유니온의 근처였다. 날 배려한건가 생각하다가도 어차피 그 녀석도 하교 후에 이 쪽으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카페 안에서 나는 또 너가 좋아했던 카라멜 마끼아또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딸기 스무디를 시켰다. 너에겐 아직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문을 열고 들어온 이세하는 두리번거리며 나를 한참이나 찾았다. 정말 나를 모르는 건가 싶어서 손을 흔들었더니 그제서야 나를 발견하고 내 앞에 앉았다. 너 나 몰라? 한 마디 하자 이세하는 생각했던 옷차림이 아니어서 그랬다며 말을 얼버무렸을 뿐이었다. 이세하는 말을 조리있게 잘 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몇몇의 궁금증을 쉽게 해결해주었다. 위상 능력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와 현재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검은양 프로젝트에 내가 투입될 것 같다는 말, 그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 등등을 천천히 말해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니 듣을 뿐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물로 목을 축이고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다. 애들이 딱히 이상하게 생각한다거나, 나를 다르게 보진 않는다는 점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분명히 서툴렀지만 나름의 위로였을 테다. 나는 녀석의 얘기를 듣다가 학교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문득 뱉어버렸다. 녀석은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학교는 다니는 게 좋다며 어울리지 않게 샌님 같은 말을 해댔다. 정 싫다면 어쩔 수 없단 식으로 말하면서도 모순적으로 녀석은 내 자퇴를 완강히 반대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이세하는 원래 이 자리는 자기가 아니라 아까 말했던 검은양 프로젝트의 리더인 이슬비가 왔어야했고, 그 녀석이라면 자기처럼 말했을 거라고 했다. 이슬비라면 옆 반의 그 눈에 띄는 모범생이다. 머릿속으로 이슬비를 떠올려보고 있는데 내가 아무런 말이 없는게 불안했던지 이세하는 몇 주는 쉴 수 있을 것 같으니 걱정 말라며 나를 다독였다. 내가 학교에 가기 싫은 건 아마 너를 볼 용기가 없어서일 지도 모른다. 나는 이세하에게 문득 애들에게 나랑 만났다는 얘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말을 뱉고 보니 유니온에서 이미 만났을 거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이세하는 그런 생각은 딱히 안들었던지 굉장히 당황해하며 꼭 그런다고 어울리지 않게 새2끼 손가락까지 걸어줬다.

이세하가 말했던 프로젝트는 극 초기 단계로 아직 확정된 것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무슨 연유로 미성년자만 모인 팀을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담당 책임자는 김유정이라는 언니였고, 나와 이세하와 이슬비는 합동 훈련도 하는 둥 점차 팀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가고 있었다. 시간은 어찌되었든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고, 생각보다 클로저 일을 하는 건 최악이지는 않았다. 평생 직장이 되준다는 말에 부모님은 내심 좋아하시는듯 해서, 계약서에 싸인을 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에게서 네가 없다는 악조건을 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직도 방 한켠에 놓여있는 죽도를 볼 때마다, 자기 전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볼 때마다, 가끔 너의 꿈을 꾸고 일어나 잠긴 목으로 차마 네 이름을 내뱉지 못할 때마다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숨이 막혀왔지만 시간이라는 성약 속에서 그 빈도는 분명 줄어가고 있었다.

대회날 이후로 네게 온 연락은 없었다. 사실 너가 연락을 한다한들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을테지만 나는 그런 네가 또 불안했다. 서로의 시간을 오래토록 나눠오면서 나는 널 잘 안다고 생각했고, 너가 이런 일로 날 싫어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마음 정리를 하길 기다리는 거라고, 오히려 널 혼자 둬서 너가 더 힘들 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너를 만나러 가고 싶다가도 나는 문득 두려워지고 마는 것이다. 만약, 어쩌면, 혹시, ㅡ라는 단어들은 나를 아프게 짓눌러온다. 너가 내게 배신감을 느낀다면. 너를 아프게했던 기억이 다 내 탓인 것만 같다면. 내가 너무 나빠서‥ 내게 많이 실망했다면. 더 이상 네 옆에 친구라는 이름으로도 남아 있지 못하게 된다면.

공유하지 못한 시간 조각들이 하나 둘 늘어가며, 우리라고 엮이기도 힘들어진 너와 나는 깊어가는 거리감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학교에 대한 문제는 여름이라는 시기가 모든 걸 해결해줬다. 기말 고사가 끝난 후 학교는 여름 방학에 들어갔고, 나는 보충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너와의 접점은 작아졌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너를 봐도 너를 안봐도 죽을 것 같은 난 어찌할 도리도 찾지 못하고 그저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으나,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었던 우리 팀조차 현재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라 강남이라는 구역을 맡아 실전에 투입되게 되었다. 이세하나 이슬비는 그렇다치더라도 각성이 비교적 최근이었던 나도 현장을 직접 뛰게 된 건 내 딴에선 상당히 의외였다. 한 편으로는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몸이 바빠 힘들어지면 네 생각할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궂은 일은 자처해가며 뛰어다녔지만 그럴 수록 나는 네가 보고싶어져 허탈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해하면 안될 것만 같았다.

방학의 끝물 쯤, 우린 꽤 우수한 실적을 냈고 그 덕에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휴가라 해도 단 며칠 뿐일테고 다음 배정까진 새로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둥 이것저것 또 바빠질 것이었다. 남아 있는 일을 갈무리하며 바쁘단 핑계로 미뤄뒀던 너와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상황 보고를 위한 무전을 주고 받던 유정 언니가 급하게 우리를 불렀다. 갑자기 신서울에 차원종의 출현이 감지되었다고, 그 장소는 바로 우리들의 학교인 신강고등학교라고.

그 소식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역시 너였다. 휴가고 뭐고 나는 네가 걱정되어 학교로 향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녁 시간이라 보충이 끝난 학생들은 하교한 상태였다. 미리 출동했던 특경대원들은 단순히 차원종의 확산만을 간신히 막고 있는 수준이었다. 레이더로 교내의 차원종을 파악하던 유정 언니는 신발끈을 고쳐매는 내게 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출 작전은 적지 않게 했던 훈련의 일부이다.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난 본관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된다면 오랜만에 빈 교실이라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본 것은 '너'였다. 색소가 옅은 너의 머릿칼과 눈동자, 나를 보고 커진 너의 눈, 그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들고있던 칼을 떨어뜨렸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선 무슨 일 있냐는 유정 언니의 목소리가 아득히 울렸다.

왜, 너가, 여기에 있는 거야.

나는 심호흡을 했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진정하려고 애썼고 아직은 떨리는 손 끝으로 칼을 주워들었다. 나는 네게 곧 대피할 수 있게 해줄테니 안전한 곳에서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을 나즈막히 전했다. 말을 뱉고 나서 나는 내 목소리가 떨렸을지, 그걸 네가 알아챘을지 고민하면서도 눈 앞의 차원종을 베어냈다. 언젠간 한 번 이런 상황이 오면 내가 널 지켜주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막상 눈 앞에 그 상황이 닥2쳐오니 나는 마냥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자칫하면 나도 위험해질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나는 차원종들의 처리가 끝나면 네게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뱉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갈라진 차원종의 단면에서 터져나온, '피'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체액이 얼굴에 튀었다. 손등으로 닦아내며 나는 문득 너가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어느 정도 수가 줄어들고 유정 언니는 차원종이 없는 중앙 계단 쪽으로 민간인을 대피 시키라고 지시했다. 나는 그 말을 네게 전했고 너는 입술을 깨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네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기가 힘에 겨워 나는 고개를 숙였고 너는 그런 내게 작게 말했다. 다치지 마, 서유리. 그 말에 난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봤고, 내 눈에 보인 건 내게 등을 보인 채 뛰어가는 네 모습이었다.

상황은 많이 호전되었다. 내 구역의 처리는 끝나서 임시 대피소로 향했는데 먼저 도착해있던 이슬비를 만났다. 장갑을 벗으며 물 좀 달라고 손짓하자 이슬비는 내게 물병을 던져ㅡ, 아니 염동력으로 천천히 내 손에 쥐어줬다. 늘 이세하가 던져대는 물병에 익숙해졌던 나라 멋쩍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세하까지 돌아오고, 우린 유정 언니에게 보고를 마쳤다. 그리고 유정 언니가 민간인이 왜 대피하지 않고 안에 남아있었는지 이슬비에게 물어봐달라 부탁한채 지부장님에게서 온 연락에 잠시 자리를 피했다. 나는 나가려던 이슬비를 붙잡고 내가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이세하는 그런 나를 쓸 데 없이 비장하다고 놀렸으며, 이슬비는 그럼 그렇게 하라 무심하게 말하곤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라도 너를 봐야지, 언제까지나 겁쟁이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담요를 두르고 안전한 교실 안에 홀로 앉아 창밖을 보고 있던 너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 쪽을 돌아봤다.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지만 티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네 앞에 있는 책상을 돌린 후에 붙여 앉았다. 너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나를 마주 봐왔다. 네 앞에 앉은 것까진 좋았는데, 보고 싶었다는 말 외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말없는 우리 둘을 지켜보던 해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하늘을 발갛게 물들여가며 얼굴을 감춰가고, 길게 늘어진 다홍 빛의 햇살만이 교실 바닥을 물들여 가고 있었다. ㅡ뭐야, 서유리. 할 얘기 없어? 네 말에 나는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피했다. 할 말은 많았다. 차마 다 하지 못할만큼 너무 많았는데, 그랬는데‥. 네 얼굴을 보니까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아.

"그.. 왜.. 학교에 남아있었던 거야? 대피 방송이 나갔을텐데.."
"‥할 말이라는 게.. ‥‥그냥, 보고싶어서 그랬어."
"응?"

너는 뭐가 불만인지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늦어 집에 가야겠다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ㅡ아직 가면 안 돼! 이렇게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에 소리치며 황급히 따라 일어나 네 팔을 붙잡았는데, 흩어지는 네 머릿결 사이로 언뜻 네 눈물이 보인 것 같아 나는 숨을 멈췄다.

"..엄마가 걱정하실 거야. 그 때처럼, 또 나를 찾으러 오실 지 모른다구."
"그, 정미야‥ 그게.."

너는 내 팔을 뿌리치고 소매 안쪽으로 눈가를 닦았다. 역시 울고 있는 거구나. 마음 한 켠이 따끔따끔하다. 널 울린 게 나라니. 나 정말.. 한심해졌구나. 안절부절못하는 내 앞에서 너는 여전히 눈을 가리고, 젖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거기에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 난 그냥.. 보고싶었을 뿐이야. 너가 보고싶었을 뿐이라고. 내가 위험에 처하면, 너가 날 구해준댔잖아? 나 혼자 버리고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네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눈을 깜빡였다. 떨리는 어깨에 손을 올려 널 꼭 안아주고 싶지만서도 너를 이렇게 작아지게 만든 것이 나라는 중압감에 쉽사리 그러지도 못했다. 울지 마,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나쁜 게 맞아,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울지 마..

"대체 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어.. 왜 나를 혼자 버려뒀어! 이제 그 잘난 클로저가 됐다고 나 같은 건 필요 없는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나는 그냥 너가 클로저를.. 싫어하는 걸 아니까, 네게 말할 수가 없었던 것 뿐이라구.. 나라고 좋아서 이런 게‥,"
"‥그래, 클로저고 유니온이고! 다 싫어. 우리 아빠도 모자라서 너까지 나한테서 뺏어가 버린 것들을 내가 어떻게 좋아해! 나한테 남은 게 대체 뭐야,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너까지 나를 떠나게 만들었는데! 매일 같이 보던 널 내가 위험에 처해야 겨우 볼 수 있는 거, 그런 건 정말 싫어! ‥왜 멋대로 내가 널 싫어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날 혼자 둔거야, 대체 왜그랬어 서유리. 대체 왜‥"
"미안해.. 미안해, 정미야‥"
"넌 내 옆에 있어야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면 안 돼‥"

너는 주저 앉아 울었다.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네 앞에 같이 앉아 나는 널 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내가 바보라서 미안해. 너를 울려서 미안해. 너를 이렇게 아프게 해놓고, 네 말에 기뻐해버리는 어린 아이라서 미안해. 너는 힘겹게 울음을 토해내면서도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고, 나는 그런 네가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한참 후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너는 쪽팔리다며 툴툴댔고 나는 네 등을 토닥였다. 겁 많은 나 덕분에 서로가 아파했던 시간에 미안하면서도 나는 이 순간의 네가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ㅡ서유리, 너 울었냐? 눈이 빨간데. 이세하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유정 언니에게 향했다. 언니도 내가 울었다는 것쯤은 눈치챘을 테지만 왠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내가 이슬비 대신 다녀온 게 맞냐고만 물었다.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까닭을 궁금해하는 언니에게 나는 문득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보고서에도 들어갈 내용인데‥. ㅡ그게, 음, 보고싶어서라는데요. 대체 뭐가 보고싶었냐는 언니의 말에 나는 눈을 굴리다가 차원종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어했다는 말을 내뱉어버렸다. 널 조금 이상한 애2로 만들어버려서 미안해. 나는 황당해하는 언니에게 시간이 늦어 친구를 집에 좀 데려다주겠다는 말만 남긴채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너한테 들었을 땐 참 좋았는데, 내가 말하려니 진짜 부끄럽네. 네가 있는 교실 문을 열기 전에 나는 찬 손등으로 볼을 문질렀다.

너와 오랜만에 걷는 하교길이었지만 우린 별다른 말은 나누지 않았다. 서로 부운 눈을 하고 달 밝은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너와의 일상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내게 네가 항상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네가 내게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는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늘 우리가 헤어졌던 갈림길에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네 집 방향으로 향했다. 너는 날 의아하게 바라봤고, 나는 볼을 긁으며 오늘 많이 놀랐을테니까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너는 계속 걸으며 그럼 다음엔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멀지 않은 길이 아쉬워 걸음을 늦춰봐도 네 집은 금방 가까워졌다. 너는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채 도어락을 풀고 집으로 들어섰다. 나는 네 집 앞 담벼락에 기대어 네 방의 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너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은 켜졌고, 내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에 닫혀있던 창문이 열리고 네 얼굴이 보였다. 너는 네 방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쁘게 웃었다. 너가 나를 돌아봤을 때, 내가 너를 올려다볼 때, 우리가 눈이 마주쳤을 때 늘 그랬듯이, 그렇게. 너는 잘가라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집에 돌아가면 전화라도 할 작정인지 손가락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한참동안 그런 네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정미야,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 네게 아직도 하지 못한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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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차원종 납치 사건이나 유하나랑 삼각관계라던가..! 기타 등등도 구상 중에 있었고 무엇보다 둘의 갈등이 좀 더 길어져야 했는데.. 귀찮아서 빨리 글을 맺었습니다. (..) 그래서 너무 전개가 빠른 감이 있습니다. ㅠㅠ 나름 아쉽긴 해요. 혹시라도 이 소재(원작 기반)를 다시 쓰게 된다면 추가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정미의 매력은 츤데레인데 그런 게 잘 표현이 안됐죠.. 세무룩._.


아무튼 유리정미는 사랑이니까요. 유리정미는 꾸준히 쓸 겁니다. 갓정미 찬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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