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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클로저스-용의 딸(프롤로그: 지하도+독사)

작성자
CodeW2
캐릭터
레비아
등급
특수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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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9.09.07
  • view12113

용의 딸

-프롤로그-




   한때는 사람으로 붐비던, 강남의  한 지하도. 



차원전쟁이 발발하기 전, 이 곳은 강남 교통을 담당하던 곳이었지만 이젠 버려진 금지구역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유니온 한국 지부, 그리고 서울 시청이 연합해 몇번이고 이곳을 다시 활성화하려 했으나 이 곳은 전쟁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고 오염된 곳이었다. 왠만한 위상능력자를 제외하고 이 곳에 발을 들이면 여지없이 이세계의 오염에 목숨을 잃을 것이 뻔했다. 



  과거의 인적이 끊긴 후 이곳은 이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이 되었고, 현재는 한국 위상장비 최고 대기업인 벌처스 사 개인 소유지가 되었다. 왜 벌처스 사가 이런 곳의 땅을 구매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단지 그곳의 위험한 환경과 한국 내 굉장한 재력과 권력을 쥐고 있는 벌처스 사의 소유지라는 것 때문에 더 이상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랬던 지하도에는 인적이 끊겼고, 그렇게 먼지 속에 쌓여 잊혀져갔다. 그런 그곳에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죽 구두 소리가 적막으로 뒤덮였던 그곳의 침묵을 깼다. 곧이어 거의 낙후되어 어두운 전기 조명이 다시 빛났다. 잠시 멈추었던  구둣발 소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나는 곳에는 회색 양복을 입고 짧고 검은 흑발의 남자가 유유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파랗고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까무잡잡한 살색에 우락부락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한쪽으로 길게 머리가 가리고 있는 그의 반쪽 얼굴 사이로, 짙은 갈색의 흉터가 보였다. 마치 강하고 커다란, 대장 늑대의 분위기였다. 



  그가 지하도를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전화 진동 소리가 울렸다. 



   "전화받았소."



  그가 전화를 받자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늑대개 팀의 대장인, 트레이너 씨죠? 용케 전파가 잡혔군요. 지금 지하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벌처스 제품이오."



   그의 대답에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우후후... 역시 우리 벌처스는 대단하다니까요?"



   "내 현재 위치를 보니, 당신이 홍시영 감시관인가 보군."



  그의 대답에 홍시영 감시관은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이제부터, 당신이 대장으로 있는 늑대개 팀을 한동안 감시하고 통제하게 됐어요. 늑대개 팀은, 현재 전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에요. 지난 번의, 그 사건 때문에 말이죠."



  트레이너와 홍시영 감시관은 동시에 같은 장면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 소녀에 관련된 회상이었다. 하얗고 긴 머리칼의 소녀. 그 소녀의 손과 몸에는 사람의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주변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낭자한 것을 찍은 CCTV 감시 화면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전력이 부족해진 결과, 대장인 당신은 대원들과는 다른 임무를 진행하게 됐어요. 저는 당신 대신 현장에 나가서, 한 동안 늑대개 팀을 통제하게 되었고요. 계획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에요.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섭섭하게 생각한 적 없소. 우리는 지시에 복종할 뿐이오."



  그녀의 대답에, 그는 짧고 굵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어떤 감정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그것을 들은 홍시영 감시관은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듬직하군요.


  그나저나, 지금 대원들의 파일을 확인 중인데.... 후우. 벌써부터 위가 아파오네요. 


  많은 처리부대를 감시해 봤지만, 이 정도로 골칫덩이들을 다뤄보는 건 저도 처음이에요."



  그녀가 종이를 넘기며 말하고 있는 것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사각거리는 종잇소리가 몇 번 들린 뒤,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진심인가요? 사건의 원흉인 차원종을, 임시 대원으로 쓰겠다는 것 말이에요."


  "일시적인 조치요. 상부의 허락은 받았소." 


   상부의 허락을 받았다. 그 말에 홍시영 감시관은 조금 못마땅한 듯 했으나 이렇게 말했다. 


    "뭐, 회사의 방침이 그렇다면 저도 따르죠. 


  원활한 통신을 위해, 최신예 뻐꾸기를 지원해 드리겠어요. 


  감시관으로서 내리는 첫 번째 지시에요. 뻐꾸기를 이용해, 늑대개 팀의 대원들에게 '즉시' 강남으로 집합하라고 지시해 주세요. 그리고 저도 그들의 싥력을 알고 싶어요. 그러니 오는 길에, 강남 근처에 출현한 차원종들과 '가볍게' 교전을 치르라고도 전해주세요."


  그녀의 흥미로운 목소리가 끝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소. 지시에 따르겠소. 안 그래도 막... 이쪽도 계획의 1단계가 끝난 참이오."


  그는 잠시 전화를 켜 놓은 채 앞에서 걸어오는 묵직한 발소리에 멈추었다. 곧 어둠 속에서 인간이 아닌 자들, 차원종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도마뱀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들 중 하나가, 못마땅함과 경멸을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 


  "흥. 마음에 안 드는 구나. 인간 따위와 손을 잡게 되다니."

   

  그러자 트레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안들기는 이쪽도 마찬가지다. 차원종. 


  하지만, 우린 피차 개일 뿐이지. 


  개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한다."


  그는 말을 끝내며, 자신의 목에 걸려져 있는 은빛의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당겨보이며 말했다. 


  지하도의 어둡고 음침한 조명을 받아 그 목걸이는 섬뜩이는 빛을 냈다. 


  

   훗날의 기나긴 이야기는, 사람들이 잊은 이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짤랑.... 짤랑.... 짤랑....


  묵직하고 섬뜩한 쇠사슬 소리가 깊은 실험 병동 속에서 울린다. 그곳으로 회색 양복을 입은 우락부락한 한 남성과, 폭발탄과 소이탄, 레이저 조준기, 확장 탄창, 조준경, 소음기로 개조한 신식 소총, 대위상 수류탄과 유탄, 유탄 발사기, 최신식 방탄 전투복, 주야간투시경, 방독면 등으로 중무장한 6명의 남성들이 향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주위에서 느껴지는 중압감과 압박감에 몸이 눌리는 듯 했고, 그 기세는 그들이 걸어가고 있는 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만 회색 양복의 남자는 이에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어두운 조명 아래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내 그들은 병동 앞에 도착했다. 병동의 자동문에 달려있는 각종 장치만 보더라도, 그 안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대개 인류의 주적인 차원종을 포박하거나 힘을 못 쓸때, 또는 차원문의 발생을 억제하는 위상력 억제장치, 주위 위상력의 파장과 흐름을 스캔한 뒤, 차원문의 개방 여부와 공기중에 흐르는 위상력의 성질을 알려주는 위상변곡률 장치와 위상 성질 가늠장치.


  그리고 대위상력 강화 철문. 특수한 자재로 만들어 위상력에 단순한 물리력으로도 대항이 가능했다. 그리고 차원중력 발생 장치와 대차원종 용 신경가스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장치들도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문에 달린 장치들은 하나같이 알려주고 있었다. 이 안에는 위험한 괴물이 들어있다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안의 존재가 나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양복의 남자가 자동문 앞의 조명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트레이너였다. 그는 자동문에 락이 걸린 3차례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식기에 카드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기계 인식음과 함께 쉬익 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하얀 수증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기체가 공기 중에 퍼져나가고, 그 기체 사이로 병동 안에 굵은 쇠사슬과 구속 장치로 칭칭 묶이다시피 한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굵은 위상력 억제 사슬로 묶여져 있는 그것은 바로, 인간형 여성 차원종이었다. 그것도 인간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매우 희귀하고 고차원적인 종류에 속하는. 언뜻 보면 백발을 가진, 예쁘고 젊은 인간 소녀처럼 보였으나 결국 그 근본은 인류의 주적인 차원종이라, 사람들에겐 대단히 위험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그들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묶여 있는 차원종 앞에, 트레이너는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다가갔다. 단지 그는 선 채로 차원종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 뿐이였으나 험악하고 위협적인 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앞에 있는 차원종 역시, 중압감과 위압감을 한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기와 기가 맞부딪히며 자웅을 겨루었고,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도망갈 기세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차원종 소녀는 분명히 비웃고 있었다. 잔뜩 조소를 띄우던 그녀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런...이런.... 이렇게 까지 철저하게 저를 짓밟고 억누르고 있음에도 안심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대체 당신들은, 저를 어느 정도까지 짓밟으셔야 만족하시 겠어요?"


  마치 그들을 비웃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들에게 속박되어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흐음... 아직도 저항하는 건가? 그런 과정이 계속될 수록 고통스러운 건 너일 텐데."



  트레이너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자신의 위협적인 기세를 거두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한결같은 중압감과 독기 가득한 대답이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나저나 찾아오신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런 별 볼일 없는 대화를 하러 오신 것은 아닐 거고, 당신들의 상관이라는 자가 명령을 내렸나 보군요?"



  "그 말대로다. 벌처스 상부의 지령을 네게 전해주려 왔다."



  "흐음..."


  그녀는 언뜻 여유로워 보이기 까지 했다. 마치 자신을 사형하겠다는 소식을 교도관으로부터 듣고도 태연한 거대한 범죄 조직의 대부처럼. 되려 기대하고 있는 듯한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유쾌한 기운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인류의 주적인 차원종에게 고작 그런 소식을 전하려고 수고하시는 걸 보면, 당신도 참 가엾단 말이죠. 그래서, 당신들의 상관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말투로 미루어 보아, 분명히 그녀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양복의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흐음... 뭔가 기대를 하고서 내게 결과를 물어보는 건가?"

  

  "부정하진 않겠어요."


  그 대답에 트레이너는 표정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차원종. 너는 우리 벌처스 사의 휘하 실험실에서 폭주를 일으켜 처리부대인 '늑대개 팀'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 외에도 너는 벌처스 사유의 재산과 시설을 파괴했지. 이것만으로도 네가 받아야 할 처분은 사실상 당연한 것이다."


  "후후후.... 그래요... 죽음. 죽음 뿐이죠."


  죽음. 그것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이성적이었고 유쾌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이 축복인 것 처럼 말이다. 


  자신이 일생을 바쳐 추진해온 계략이 드디어 성과를 거둔 사람의 그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마치 거대한 보상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해줄 트레이너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흠... 네 기대와는 달리 벌처스는 너를 살려두기로 했다. 너로 인해 생긴 우리의 전력 공백이 메꿔지는 날까지, 네가 죽인 처리부대 인원들을 대신해 너를 임시대원으로 삼을 거다. 실망이 크겠군. 내심 죽는 것을 바랬을 텐데 말이다."


  

  "....."


  

  그 말을 들은 차원종 소녀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이를 가는 듯한 표정으로 변한 그녀는 유쾌함은 온데간데 없이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분노로 인해 위상력 억제 사슬을 두르고 있음에도 자색의 오라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남자들은 겁에 질린 숨소리와 함께 일제히 총구를 그녀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러자 회색 양복의 남자가 손을 들어 그것을 제지했다.



  "...어째서죠? 전 당신들의 주적인 차원종이에요. 그런 저를 살려두시겠다는 건가요? 훗날에 뭐가 될지 알고요? 절 죽이지 않고 살리게 됨으로서 나중에 다가오게 될지도 모르는 그 커다란 재앙을 감내하거나 막아낼 무모함이, 여러분에겐 있으신 건가요?


 분명히 당신들의 상관 나으리들 께선 이렇게 말씀하셨겠죠? '후환이 되기 전에 죽여버리자'라고 말이죠. '싹수가 노란 년이니 어서 죽여버리자' 라고.


  ...어떻게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군요."


  

  "착각하지 마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너를 통제할 수단을 이미 모두 갖춘 상태다. 


그리고 우리도 네가 차원종이라는 것, 너의 위험성. 네가 한 행동을 감안하면 절대 살리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너로 인해 입은 손해를 최대한 빠르게 복구하기 위해 그 대안으로 널 임시 방편으로 쓰는 것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빠드득 이를 갈은 차원종은 한참 조용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한 마디로, 저를 도구로 부리시겠다는 거로군요. 당신들의 줏대에 맞추어서 속죄하고 처벌받으라는 말씀 아닌가요?"


  그녀의 분노는 어느새 사그라지고 다시 냉소와 독기, 조롱이 가득 찼다. 그녀는 한것 비꼬며 위압감을 더해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것을 끝까지 들은 트레이너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훗. 내심 기대했던 바가 깨지니 어쩔 줄 몰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법이군."


  

  "...."


  그녀는 위협하듯 속에서부터 증오와 살기, 위협을 가득 담아 으르렁 거렸다. 기세가 눌린 남자들이 다시 한 번 총을 쏘려 총구를 차원종에게 겨눈 채 방아쇠로 손가락을 옮겼으나, 트레이너는 여전히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뜻으로 한 손을 내리지 않았다. 



  "잘 들어라. 차원종. 애초에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것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배신을 당할 일도 없지. 네가 지금 그런 꼴이다."


  

  "후우... 허를 찔렸군요. 하긴, 가끔가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인간들에게 한 방 먹을 때가 이었죠. 당신이 그런 부류에 속하네요. 분하게도 말이죠."


  그녀는 여전히 냉소를 띈 채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자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트레이너가 다시 대답했다. 



 "흠, 생각보다 그렇게 낙심할 필요는 없을 거다. 전력의 공백이 메꿔지면, 너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처분당할 꺼니까 말이다."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후후후... 어차피, 제 삶은 뭘 잃어도 아쉬울 게 없는 삶이랍니다. 팔이 없어지건, 다리가 없어지건, 저의 반신이 없어져도. 제 목이 날아가도 말이에요.


  제가 쓸모없어 지거나, 당신들의 꼭두각시 부대의 전력이 메워지면 전 분명히 처분당하겠죠. '도구'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을 테니까요."


  

  그녀는 어느 새 광기를 한 가득 담은 미소를 띄며 인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지옥으로부터 솟아오른 악마, 마구니, 야차, 악귀와도 같은 광기였다. 트레이너를 제외한 모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총구를 차원종 소녀의 이마에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겨누고 있다 해도 불안했다. 극도의 두려움에 이미 압도당한 그들의 심신은 이곳에 있기를 거부했다. 때문에 조준하고 있어도 레이저 조준기의 불빛이 위아래로 격렬하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폭풍우에 휩쓸린 표류선 같았다. 


  기가 눌릴 대로 눌린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앞에 있는 공포와 광기의 덩어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가만히 그것을 즐기듯 바라보던 차원종은 이렇게 말했다. 


  

  "후후후... 결국 저를 끝까지 '도구'로 이용하고 버리겠다는 거로군요.


  좋아요. 당신들의 꼭두각시 놀음에, 기꺼이 어울려 드리죠. 하지만 분명히 약속해 주세요. 


  저를 반드시,


  '반드시' 죽여주겠다고.



  그녀는 피색과 자주색이 뒤엉킨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도저히 인간이 감당하거나 버티거나 직면하기 힘든 광기, 공포, 증오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간 삶의 절망, 어둠만을 바라보고 자라온, 그리고 그것밖에 겪은 것이 없었던 자의 시선이었다. 



  총을 든 남성들은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공포에 압도되어 복도 바닥을 구르고 기어가면서 까지 나가려는 자, 분뇨를 흘리면서 뛰어나가는 자, 급하게 나가려다 무기에 발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 허우적 대며 나가려고 하지만 나가지도 못하고 문턱에서 헤메이는 자,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리는 자.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트레이너는 차원종에게 말했다.



  "좋다. 그럼 이제부터, 너의 인식명을 붙여주도록 하지. 

지금 이 순간부터, 너의 이름은 '레비아'다. 내가 널 길들여주겠다." 


  "...그럼 저도, 당신에게 명칭을 써야겠죠.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죠?"


  차원종의 질문에, 그는 잠시 잠잠해졌다. 


  "왜 그러시나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너를 길들이는 조련사니까, '트레이너'라고 부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트레이너 님."


  차가운 얼음처럼 인간미 없고 무감정한 시선으로 레비아를 내려다보는 트레이너. 그간 삶의 어둠에서 흘러나온 증오와 분노, 그리고 수치심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트레이너를 올려보듯 노려보는 레비아.


  유쾌하지 않은 그들의 첫 만남으로부터, 그들의 기나긴 인연과 함께 마침내 기나긴 이야기가 그 막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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