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아압-!!!"
달이 높게 떠오른 한밤중. 유니온 본부 뒤뜰에서 여성의 기합성이 울려 퍼졌다. 달빛을 받으며 여성, 레비아는 손에든 스태프를 있는 힘껏 상대에게 휘둘렀다. 자줏빛 위상력을 휘감은 스태프는 상대방의 정수리를 노리고 빠르게 쇄도했지만 이를 가볍게 고개를 젖혀 피한 상대는 그대로 레비아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당황한 레비아의 손목을 강타해 무장을 해제시켰다.
"앗……!"
한발 늦게 자신의 상황을 눈치챈 레비아는 멍하니 비어버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흠…. 아직 멀었구만. 어서 가서 무기나 주워와. 다시 시작하게."
이를 마주 보며 나타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재촉했다. 그 말에 따라 무기를 주우러 돌아선 레비아는 조금 전의 일을 회상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레비아는 혼자서 훈련을 하기 위해 방을 나섰었다. 처음엔 훈련실을 이용하려 했지만 다른 클로저들이 사용 중이었고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어색한 그녀는 결국 홀로 뒤뜰에서 훈련하기로 했다. 그렇게 홀로 수련을 하던 도중 마찬가지의 이유로 뒤뜰에 온 나타와 마주쳤고 잠시 고민하던 나타는 갑작스레 대련을 제안했다. 과거에도 몇 번 대련을 한 적은 있었기에 레비아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대련을 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시네…."
나타의 공격을 피하며 레비아는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나타를 바라보았다. 대련을 시작하고부터 나타는 공격은 거의 하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내고만 있었다. 가끔 공격하더라도 그녀의 손을 노린 짧은 강타로 무기를 날려버리는 것으로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대련이니 생명에 위험이 갈만한 공격은 자제한다 쳐도….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시는 건 나타님답지 않으신데? 어디 안 좋으신가?'
의문 속에 레비아는 거리를 나타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뻗어 그에게 광선을 쏘려 했다.
".....읏…!"
하지만 공격하기 직전 그녀는 손을 거두고는 위상력을 응축시킨 스태프를 휘둘러 자주색 충격파를 날렸다. 빠르게 자신에게 쇄도하는 충격차에 마찬가지로 참격을 날려 무산시킨 나타는 빠르게 레비아와의 거리를 좁혔고 레비아는 그런 나타를 향해 또다시 스태프를 휘둘렀다. 이에 나타는 차분히 검을 휘둘러 요격했다. 검과 스태프가 부딪히자 그 충격으로 주변 땅에 금이 갔고 두 사람은 서로의 무기를 교차한 채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레비아는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위상력을 양팔에 집중했고 이를 지켜보며 나타도 차분히 위상력의 출력을 높여갔다. 그렇게 수 초간 힘겨루기가 이어지던 중 갑작스레 나타가 먼저 힘을 빼며 맞대고 있던 검날을 살며시 옆으로 눕혔다. 마주하던 힘이 한순간이 사라진 탓에 레비아는 자신의 힘을 못 이겨 앞으로 쓰러졌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타의 칼등이 그녀의 목에 닿아있었다.
"아…. 또 져버렸네요."
"그래. 또 내 승리로군."
멍하니 승패를 말하는 레비아에게 나타는 심드렁하게 맞장구치며 검을 거두었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비아에게 나타는 땅에 떨어져 있던 스태프를 던져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그것보다 너 왜 광선공격을 안 하는 거냐?"
"......?!"
감사를 표하던 레비아는 이어진 나타의 지적에 굳어버려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자각을 하고 있었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타는 한숨을 내뱉었다. 더스트의 정신지배에서 해방된 이후 그녀는 전투 중 주력으로 사용하던 광선의 사용을 거부하는 태도를 줄곧 보여왔다. 광선공격 외에도 이차원의 뱀을 소환하는 빈도도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새로운 전투 방식을 연습하는 거라면 그걸로 좋아. 하지만 넌 그런 게 아니잖아? 아마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겠지. 틀렸냐?"
"...아니요. 나타님의 말씀대로예요."
계속되는 나타의 추궁에 레비아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수긍했다.
"...그 기술들을 쓰려고 할 때마다 당시 기억이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행동을 멈춰버리고 말아요."
떠올리기 싫은 기억. 적의 술수에 넘어가 자신을 잃어버린 체 아군을 공격하고 그 목숨을 빼앗을 뻔했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그녀의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전투하던 도중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떠오르며 그녀의 행동을 옭아매었다.
"한심하죠? 그날 나타님께 위로받고 다른 분들에게 격려받으면서 다 털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러긴커녕 이렇게 계속 과거에 얽매여 있다니."
"...과거에 얽매이는 게 뭐 어때서 그러는데?"
"......?네?"
자책하던 레비아는 갑작스런 나타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떨쳐버릴 정도의 기억이라면 그건 정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기억이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기억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아. 그건 죽도록 괴로운 기억일수록 더 심하지……."
마치 경험담을 말하는 것처럼 나타는 애수에 잠긴 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티끌 한점 묻지 않은 손바닥이 순간 피투성이로 변해있는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이에 쓴웃음 지으며 나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은 나쁘기만 한 게 아니야. 그걸 양분 삼아 사람은 더욱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갈 수 있어. 기억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거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뭐 그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 그러니 이 나타님께서 두 팔 걷고 직접 도와주지."
여전히 의기소침해 있는 레비아를 바라보며 나타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에 레비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나타는 쓰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제법 큰소리가 울리더니 그를 중심으로 검보라색 위상력이 흘러넘쳤다. 당황한 레비아가 반응할 새도 없이 위상력은 둘을 집어삼키더니 이에 멈추지 않고 퍼져나가 뒤뜰 전체를 감싸고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이, 이게 대체……."
당황한 레비아가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과 나타를 포함해 주위를 감싼 검보라색의 장막이 보였다. 손을 뻗어 장막을 만져보자 장막은 강한 반발을 일으키며 그녀의 손을 튕겨내었다.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 허락 없이 안에서 밖으론 어떤 것도 나갈 수 없게 구성해 놨으니까."
"그, 그건 알겠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아직 혼란스러운 레비아의 모습과 상반되게 나타는 차분히 그녀에게 걸어가 지근거리에서 그녀를 가리켰다.
"지금의 넌 솔직히 방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윽…!"
"피라미들을 쓰러뜨리는 거라면 모를까 상위 개체와의 싸움에서 주력 기술을 봉인한 넌 방해만 될 뿐이야.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나타의 가차 없는 지적에 레비아는 별다른 반박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넌 지금부터 네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네?"
하지만 이어진 나타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기술을 못 쓰는 이유는 네 기억 즉 트라우마가 원인이다. 그러니 그것만 극복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아니…."
말을 하던 나타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진지한 투로 선언했다.
"잘하면 그때 보여줬던 그 힘을 이번엔 너 자신을 잃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
"전력 강화 측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더스트 그 망할 꼬맹이가 또 그런 수법을 벌이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어. 그러니 지금 이 훈련은 반드시 완료해야만 한다."
말을 마친 나타는 잠시 레비아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그 사리오 약하지만, 의지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에 나타도 살짝 미소지으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자. 시간도 없으니 그럼 바로 시작한다. 지금 당장 네 안의 힘을 해방해봐.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네?! 하지만 그랬다가 또 폭주하면……. 꺄악-!!!"
갑작스레 느껴진 강력한 악력에 하던 말을 멈추고 비명을 지르는 레비아.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나타는 손의 힘을 빼지 않고 말했다.
"걱정은. 그 경우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널 되돌려 놔주마. 그러니 넌 걱정 같은 거 집어치우고 어서 하라는 대로 해……!"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 손 좀…!!!"
한동안 그녀의 비명이 울리고 나서야 손에서 힘을 푼 나타. 레비아가 그런 나타를 살짝 흘겨보았지만, 그는 짓궂은 미소로 답할 뿐 주눅 든 기색은 없었다. 이에 그녀도 포기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의식적으로도 또 무의식적으로도 억누르고 있던 그녀의 힘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녀의 몸에서 부터 피어오르는 자주색의 위상력을 보며 나타도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중요한 건 네가 너 자신을 완전히 믿도록 하는 것. 그 점을 잘 유의하면서 천천히 힘을 증폭시켜봐."
나타의 말에 따라 레비아는 조금씩 위상력을 증폭시켰고 그때마다 선명해지는 자주색 위상력이 공간을 채워갔다.
"....윽…!!!"
그러던 중 집중하던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뿜어져 나오던 위상력의 파장이 흐트러졌다. 이를 기점으로 전신에서 자주색 위상력이 폭발하든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녀의 안색 또한 급격히 나빠지며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아…. 역시 안되겠……!'
"당황하지 마."
그렇기 레비아가 힘을 통제에 실패하고 폭주하려던 순간 나타가 그녀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뿜어져 나오는 위상력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밀어내며 레비아에게 다가간 나타는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뻗었고 그대로 위상력을 전개했다. 청자색 위상력이 일어나더니 레비아의 자주색 위상력을 억눌렀고 그에 따라 그녀의 안색이 점점 좋아졌다.
"폭주할 것 같으면 내가 억눌러주마. 그러니 너는 집중해서 스스로의 힘으로도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노력해라."
천천히 위상력을 거두며 말하는 나타의 목소리에 레비아는 묘한 안도감을 가지고 다시 위상력을 끌어올렸다. 때때로 폭주의 기미가 보였지만 그때마다 나타가 위상력을 이용해 이를 억눌렀다.
..."다들 모인 건……. 아닌 것 같군."
아침 모임 시간. 자리에 모인 팀원들을 둘러보며 트레이너는 밀려오는 두통에 골을 썩였다. 회의실에 모인 인원은 자신을 포함한 하피, 티나, 바이올렛뿐이었고 나타와 레비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후…. 아침에 단말에 와있던 연락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설마 진짜로 오지 않을 줄은…."
한숨을 내쉬며 트레이너는 이른 아침 단말기에 도착해 있던 메일을 다시 확인하였다.
'레비아 녀석과 수련 중이다. 어쩌면 오늘 작전엔 늦을지도 모르겠다. 뭐 급한 상황이면 중단하고 바로 백업하러 갈 테니 봐달라 고. 꼰대.'
"하아……. 뭔가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이 녀석의 행동이 묘하게 자유분방해진 느낌이다만."
한숨을 내쉬며 트레이너는 단말기를 집어넣고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뭐 그런 관계로 오늘은 우리 네 명이 우선 작전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어머? 의외네요. 전 당연히 그 두 사람을 찾으러 가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
하피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동의의 뜻을 표했고 이에 트레이너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으며 시선을 피했다.
"뭐 그 두 명 모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곧바로 작전에 복귀했었다. 이렇게라도 전선에서 물러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후후. 트레이너씨도 참 물러지셨다니까요."
놀리는 듯한 하피의 말에 트레이너는 몇 차례 헛기침하더니 아침에 전달받은 자료를 들어 올렸다.
"뭐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작전지역으로 이동한다. 인원이 부족해진 만큼 더 긴장하고 간다. 알겠나?"
"""네!"""
트레이너의 말에 세 사람 모두 힘차게 대답했고 이에 트레이너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
.
"하아… 하아…… 하아……!"
"흠…. 생각보다 골치 아프네, 이거."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는 레비아를 내려다보는 나타. 훈련을 시작한 지 몇 시간째. 어느 정도의 제어가 가능해진 레비아였지만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면 예외 없이 파장이 흐트러지며 폭주의 기미를 보였다.
'음…. 솔직히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지는 몰랐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괴롭고 힘든 일이다. 특히 레비아의 경우는 잘못하면 다른 인격에게 자신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타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제일 큰 문제인 다른 인격이라면…. 저번 싸움에서 내가 완전히 박살 냈을 텐데…….'
그때 레비아의 인격을 되돌리기 위해 그녀의 의식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나타는 위상력을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방출하며 그녀의 다른 인격 쪽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렸었다.
'혹시나 해서 살펴봐도 역시 다른 인격 쪽이 남아있는 건 아니야. 그렇다면 위상력 파장이 흐트러지는 건 그저 힘의 크기가 너무 거대해서 이 녀석이 제어하지 못할 뿐……. 그래서 내가 억눌러 주면서 조금씩 감각을 익혀가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잠시 고민하던 나타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아니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폭주의 기미가 보이는 건 이상해. 단순한 위상력의 폭주면 모를까 지금 이 녀석은 진짜 다른 인격에 잡아먹히는 듯한 분위기야. 이 녀석 본인은 그 인격이 이미 사라졌단 걸 모르는 상태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불안정한데?"
레비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며 나타는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생각을 가속했고 얼마 안 가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결론은……. 레비아 너 설마 아직도 널 못 믿는 거냐?"
말하는 순간 그 어깨가 떨린 것을 포착한 나타는 역시 그런 거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말이야…. 처음에 말했지만, 이 훈련에서 제일 중요한 건 네가 너 자신을 강하게 믿는 거거든?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겠지?"
"...알고…. 있어요."
나타의 지적에 레비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알고 있더라도…. 전 저를 믿지 못하겠어요. 그동안 몇 번이나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나타님을…. 다른 사림들을 위험에 빠뜨릴 뻔도 했어요. 그런 저한테 자신을 믿으라고 하셔도…. 무리에요. 절대……."
자신을 타박하듯 말하는 레비아를 내려다보며 나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건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 거 오래간만에 짜증나게 하네!"
계속되는 레비아의 자신감 없는 태도에 결국 뚜껑이 열린 나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는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게 새웠다.
"잘 들어! 전에도 말했지만 넌 아무 잘못 없어! 그 사건은 더스트 그 망할 놈의 농간 탓에 벌어진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사고였어. 네가 널 원망할 필요 따윈 없다고.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고 오염된 지역은 이 전쟁이 끝나서 위상력의 접촉이 줄어들면 가만히 놔둬도 금방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그러니까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어디에도 없어!"
"하지만 그렇더라도…! 또 언제 제가 폭주할지…!"
"야 이 멍청아! 그러니까 더욱더 스스로를 믿어야지!"
울먹이며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레비아를 더 강하게 붙잡으며 나타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폭주하는 게 두렵겠지. 언제 또 자신을 잃을까 무섭겠지. 이해한다고 하진 않지만 동정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너 자신을 믿어!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무리에요. 전 절대……."
"아니! 가능해! 네 곁에서 널 계속 지켜봤던 내가 보증하지. 그러니까 믿어. 너 자신을! 그게 안 된다면……. 날 믿어라."
순간 발버둥 치던 걸 멈추고 나타를 올려다보는 레비아. 나타도 말을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의 두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눈물진 보라색 자안 위로 나타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날 믿어. 내가 네 곁에서 네가 폭주하지 않게 억눌러주마. 폭주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돌려놓겠어. 네가 스스로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니 옆에서 널 지탱해주마. 그러니 날 믿고 널 한번 믿어봐."
어느새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나타. 그런 나타의 손길과 귓가에 맴도는 나타의 마지막 말 덕분에 레비아는 그저 멍하니 나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볼은 평소보다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
.
.
"후……. 이번이 마지막 작전지역인가요?"
하이드가 따라준 아이스티로 목을 축이며 바리케이드 너머 작전지역을 바라보는 바이올렛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이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답하곤 특경대의 대장과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걸로 오늘도 어떻게든 무사히 넘어가는 분위기네요."
하피 또한 배치된 화물에 앉아 숨을 돌렸고 티나 또한 그 옆에 앉아 휴대용 냉장고에서 나오는 냉기로 몸을 식히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타씨와 레비아씨는 결국 오늘은 나오지 않는 걸까요?"
"트레이너에게 온 메일에 의하면 훈련이 끝나면 온다고 했다던 것 같은데…. 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거나 오지 못할 만큼 훈련이 고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렇게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이었다.
"? 어라? 이 기운은……."
가장 감각이 뛰어난 하피를 시작으로 다른 늑대개들과 트레이너도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두 명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저 멀리 건물을 발판삼아 뛰어오는 익숙한 두 인영이 보였고 이를 확인한 직후 빠르게 가속한 두 인영은 곧바로 그들의 앞에 먼지를 일으키며 착지했다. 먼지가 걷히자 보인 것은 전투복을 차려입은 나타와 레비아였다.
"흠…. 이제서야 왔군."
"하, 늦어서 미안해 꼰대. 생각보다 이 녀석이 애를 먹여서 말이지."
나타가 레비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답하자 레비아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어깨를 움츠렸다.
"뭐 늦은 만큼 일할 테니 넘어가 달라고. 오늘은 여기가 마지막이지?"
"그렇다."
"좋아. 그럼 이번엔 나랑 이 녀석 둘이서 해결할 테니 너희들은 좀 쉬고 있으라고."
나타의 잠시 고민하던 트레이너는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티는 안내지만 연전으로 인해 피로가 쌓인 게 눈에 보였다. 두 명이 빠졌던 만큼 평소보다 체력소모가 컸던 것이리라. 그에 비해 나타와 레비아는 직전까지 훈련하고 왔다지만 이렇다 할 체력소모는 없어 보였다.
'거기에 현재 나타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별문제 없겠지.'
생각을 정리한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면 긍정의 뜻을 표했다.
"좋다. 다만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되면 즉시 우리도 출격하겠다. 그 점은 상관없겠지?"
"뭐 그러던지. 그럼 가자고 레비아."
"아, 네…!"
허락이 떨어지자 나타는 레비아와 함께 바리케이드 너머로 유유히 걸어가 전투태세를 갖췄고 트레이너는 특경대들과 이야기해 작전을 조정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작전 예정시간에 도달했고 이어서 이변이 시작되었다.
"전방에 다수의 차원압 왜곡 현상 발생. 모두 전투 준비-!!!"
주위의 차원압을 체크하던 특경대가 확**에 대고 소리치자 특경대는 물론 대기 상태인 늑대개들도 긴장한체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차원이 일그러지며 수십 개에 이르는 차원문이 생성되고 거기서 세 자릿수는 족히 넘어 보이는 차원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를 목전에 두고서도 나타는 긴장한 기색 없이 평소와 같은 걸음걸이로 레비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그럼…. 준비됐겠지?"
"네…! 후……."
다가오는 차원종의 대군을 앞두고 차분히 심호흡하던 레비아도 나타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위상력을 끌어올렸다. 점차 증가하는 위상력을 느끼며 레비아는 살며시 나타를 뒤돌아보며 물었다
"...막아주실 거죠?"
"네가 폭주한다면야. 그럴 일은 없어 보이지만"
망설임 없는 나타의 대답에 레비아는 살짝 미소지으며 다시 물었다.
"...믿어도 될까요?"
"누구를? 나를? 아니면 너 자신을? 어느 쪽이든 안심하고 믿어보라고. 둘 다 믿을 만하다고 내가 보증하지."
이어진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진지한 나타의 대답에 레비아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집중하며 위상력을 개방했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자주색 위상력이 주위를 물들여가는 와중 그녀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켜주실 거죠?"
"...그래. 너를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모두 내 모든 걸 걸고 지켜주마.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싸워보라고."
그리고 되돌아온 나타의 진지한 답변에 만족한 그녀는 전신에 흐르는 힘을 한 번에 개방시켰다.
"[용의 재림(再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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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어어 이제 거의 끝이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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