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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일반]침식의 계승자 외전-흉성 : 악귀와의 나비잠

작성자
Heleneker
캐릭터
은하
등급
그림자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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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23.06.05
  • view6171

24년도 개정판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오늘도 그 꿈을 꾸어요.

교단에 의해 폭주하며 저주를 흩뿌리는 나의 본체.


본체에서 흘러나온 저주에 의해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본체를 부서버린..... 저의 모습.


죄....송 해요..... 모두..... 죄송해요.....!

여전히 저는 이 꿈속에서 눈물 흘리며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네요.

이 사과는 나의 본체에 대한 사과일까요? 아니면 저주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사과일까요?

아니면......






"루시 씨?"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살짝 복슬거리는 주황빛 머리칼이 보이네요.]


"음..... 자온 씨.....?"

이 남자 분은 자온. 제 동료이자 과거 본체를 부수고 폭주하는 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를 구해준, 가족이예요.


"루시 씨, 괜찮으십니까?"


"아니... 흉성, 당신이였군요."


가족인 것 치곤 말투가 좀 거리감이 있죠? 자온 씨를 포함해서 지금의 가족들은 폭주하는 저를 제압하다가 무리를 해 죽을 뻔 했었어요. 그 중에서도 후유증이 가장 심했던건 자온 씨였고요.

그 때 당시의 자온 씨는 뷜란트라는 차원종 분과 계약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힘으로 부상을 회복하긴 했지만..... 그 회복 과정에서 부서진 제 본체에 남아있었던 사악한 용의 저주가 그를 오염시켜버렸어요.

그 과정에서 뷜란트 씨와의 연결고리가 오염되어 버려 자온 씨는 그의 힘을 대부분 잃었죠. 오염되어가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인격이 나눠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깨워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셔서 불가피하게 깨워드렸습니다."

자온의 다른 인격, 흉성은 땀을 흠뻑 흘린 루시의 땀을 닦아주며 물을 한 잔 건네주었다.

"나쁜 꿈이라도 꾸신겁니까?"

"본체가 폭주했던 그 날의 꿈을 꿨어요. 이젠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네요."

"저주로 죽은 다른 사람에 대한 죄책감 말이십니까? 당신의 잘못이 아닌걸 알잖습니까. 오히려 그날, 당신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 큰 것을 잃었습니다."

"애당초 유니온 놈들이 지원만 보내주었다면 이렇게까지......"

"그만, 이미 지나간 일인걸요. 게다가 그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은 없어요. 제가 그날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다면 그건 본체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 힘들었던 상황으로 억지로 여러분을 끌고갔던......"

"됐거든. 우린 널 믿고 간거였으니까 우리한테까지 죄책감 가질 필요 없거든? 오히려 우린 네 본체를 구해주지 못한게 늘 걸리거든?"

"어, 자온 씨...."

확 달라진 말투가 고개를 들어보니, 자온 씨가 원래 인격으로 돌아왔네요. 

"울상짓지 말고 이거나 먹고 기운차려. 안 그래도 우리 가족들은 다 울상들이라 너마저 안 웃으면 장난아니게 우울하니까."


자온은 흉성의 인격일 때 물과 함께 들고왔던 과자를 루시의 입에 넣으며 말했다.


불평같은 투정같지만.... 그래도 저게 자온 씨 나름대로의 격려란 말이죠.

이를 아는 루시는 그가 먹여준 과자를 조용히 우물거렸다.

"이젠 과자에서도 단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거야?"


자온은 루시의 표정을 지긋이 바라보다 물었다.


"....들켰나요?"

"너는 과자같은 단 거 먹을 때 꽤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었는데, 이제는 조금도 표정이 안 변하잖아."

그렇게 말하던 자온 씨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제 입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약과..... 그래도 이건 아직 단맛이 좀 느껴지네요."


약한 생강과 시나몬 향.... 조금 덜 달게 만든 은은한 단맛이 바삭한 식감과 함께 입안에 돌기 시작했다.


"그립네. 내가 이거 원하는 식감으로 만든다고 너한테 부탁해서 같이 만들곤 했는데."


바삭!


바삭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힘차게 울렸다.


"그 때 고생 많이 했죠. 히히."

약과를 하나씩 더 집어들은 두 사람이 그날의 추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



"약과요?"

"응. 한국 전통과자인데....."

"그건 알고 있어요. 근데 여기저기 많이 팔고 있지 않나요? 저기 열려있는 떡집에도 팔고 있던데요?"

"그건 그런데..... 원하는 식감이 안 나와서. 여기 것들은 너무 부드럽달까?"


자온은 볼멘 소리로 불평하면서도 새 약과 봉지를 뜯으며 입에 물었다.

"시럽에 재우는 과자라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건가요?"

"응. 옛날에 형님이 내게 만들어주셨던 약과는 바삭한 식감이였거든. 그래서 아에 내가 만들어볼까 했다가 내가 요리는 잘 몰라서...."

"음.... 그래서 제게 부탁하시는 거였군요."

"루시 너는 과자 많이 만들어 봤으니까 잘 할 거 같았거든."

"처음 만드는 과자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좋아요, 같이 만들어 봐요!"

"고마워.... 진즉 너한테 먼저 부탁해볼걸. 괜히 은하한테 먼저 갔다가....."

"은하 씨가 뭐라고 하셨길래요?"

"쓰랄데 없는거 가리지 말고 아무거나 먹으라고...."


루시는 한 렌트 주방에 연락해 예약한 후, 그곳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렌트 주방, 앞치마와 머리수건을 두른 두 사람의 섬세한 손길로 밀가루와 설탕 등 각종 제과 재료들이 정량으로 정확하게 계량되었다.

"시럽에 재우는 과자라곤 해도 시럽에 재우는 시간과 밀가루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여러 레시피로 만들어 볼게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루시 쉪."

"쉪이라니..... 맞기야 하지만 부끄러운데요."

"그러니까 잘 부탁한다고. 계량은 이걸로 끝난거지?"

"네. 재료도, 도구도 다 준비됐으니 그럼..... 조리 시작할게요!!"

자온은 때론 과감한, 때론 섬세한 손길로 움직이며 루시의 지도에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은 엉망진창, 원하던 바삭함과는 정반대의 축축 눅눅. 엉망진창인 결과물에 좌절하면서도 루시의 격려를 받으며 몇번이고 다시 시도하였고,

바삭------

"딱 좋아. 바삭함도 당도도.....!!"

"드디어 완성했네요....!!"

오랜 실험 끝에 완성된 성공작에 두 사람이 환호했다. 


"시나몬을 반죽이 아니라 시럽에 섞어서 재우는 거였었네. 그나저나 이거 다 어떡하지....?"


한편으론 각종 시행착오로 만들어진 실패한 약과 무덤을 보며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맛은 있으니까 포장해서 다른 분들께 선물하도록 해요. 선물 포장지 부탁해놨으니 곧 오실텐데...."


"응? 누구한테?"


끼익----

"이봐요, 꼬마 언니. 사오라는 거 사왔..... 뭐예요, 이 약과 지옥은?"

렌탈 주방 문을 들어오던 은하가 한무더기로 쌓인 약과에 살짝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주방 빌려서 뭐하나 싶더니.... 얘 투정 들어주느냐 그런거였어요? 그냥 아무거나 먹으라니까."

"들어주지도 않았으면서 잔소리는. 온 김에 완성된거 먹어봐."

"됐거든? 난 단 건 취향이 아니라서."

"그렇게 많이 안 달아. 한 번 먹어 봐."

"됐다니....우물우물...."

자온은 말하는 은하의 입으로 작은 약과 하나를 넣었다.


"....꼬마 언니, 솜씨가 좋은데요? 맛있네요. 많이 달지도 않고."


살짝 짜증을 부리려던 은하도 나름 괜찮은지 표정을 풀며 약과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은하 씨 마음에도 들었다니 기쁘네요!"

"그건 그거고.... 단 거 취향 아니라는데 막 입안에다 넣어? 한번 찔러볼래요, 엉?"

"잘 먹었으면 됐잖아!?"

"왜 꼭 두 분은 싸우는거예요, 도대체!??"

은하와 자온이 또 싸우기 시작했고, 루시는 두 사람을 말리면서 평소와도 같은 평온한 하루가 끝나갔다.



*******



"그랬던 적도 있었지."

새삼 그립네요.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게..... 그나저나 그래도 표정이 안 좋네. 잠시만 있어봐."

루시의 안색을 살펴보던 자온은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더니,


쿵! 쿵!


결박에 재갈까지 물린 사람 두 명을 끌고 와 내던지더니,  살짝 피가 흐를 정도로 상처를 내었다.

"유니온의 개인거 같은데 마침 우리 거점 근처를 얼쩡거리고 있더라고. 하나는 지금 먹고, 다른 하나는 뭐.... 보존식으로 만들든가 하지 뭐."

"그 부분은 흉성에게 맡기죠 뭐. 음..... 이 분이 좋겠네요."


루시는 쭈그려 앉아 코를 킁킁거리더니, 한 쪽을 골랐다.


"신선한 건 먹은 지 좀 오래 됐었죠. 잘 먹을게요."


루시가 선택한 사람의 피를 핥더니,


"꺼으.......끄으으으으으.........!!!!"

그 피를 통해 그 사람의 위상력과 생명력이 루시에게 흡수당하기 시작했다. 재갈 속에서 간신히 비집어 나온 비명이 들리거나 말거나 루시는 아랑곳 않고 흡수를 이어가고, 마침내 그 사람의 위상력과 생명력이 모조리 빨려나가 미라가 되고 나서야 흡수가 멈추었다.

"하아...... 달콤하네요."


루시는 황홀하다는 듯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우웁.....우우우우우!!!!!!"


일행이 자신의 눈 앞에서 미라가 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다른 한 사람은 묶인 자신의 몸을 아등바등거리지만,


"뭐라는 건지."


자온은 가볍게 무시하며 끌고 갈 준비를 시작했다.


"자온 씨. 거기 그분, 넣어주시겠어요?"

덜컹


루시의 곁에 있던 감옥관이 열렸다.


"오랜만에 맛 봤더니... 조금만 더 먹고 싶네요."


"음, 뭐. 알았어"




끌고가려던 걸 멈추고 루시의 관 안에 그 사람을 욱여 넣으며 뚜껑을 닫아버렸다.

"천천히 먹어. 금방 신선한 걸로 구해다 줄게. 오늘은 이제마저 푹 쉬고.... 나도 이제 좀 쉬러 가야겠다."

"감사해요. 자온 씨도 잘 쉬세요."

"그래, 잘 자."

자온은 루시의 방 불을 끄며, 미라를 끌고 나갔다.


"오늘은, 좋은 꿈 꿀 수 있겠네요."


루시는 담요를 다시 푹 덮으며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녀의 꿈은 그날의 악몽이 아닌, 자신의 가족인 동료들과 함께 과자를 만들며 다함께 웃는 꿈을 꾸었다.

이젠 이뤄질 수 없는 달콤한 꿈이라는 걸 인지했지만, 그럼에도 그 달콤하고 따뜻한 꿈에 위로 받고 싶었던 그녀는 자각한 사실을 잊기 시작했다.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잊기위해 더욱 깊게 꿈을 꾸며, 그녀는 나비잠에 들었다.





next : 저격수와의 간병




악귀-루시 플라티니 : 몽환의 군주, D백작의 도움으로 본체의 위치를 알아내 교단의 절멸을 진행 중, 교단이 폭주시켜 수많은 사람을 저주하는 본체를 부순다.

본체가 퍼뜨린 저주를 자신에게 흡수하던 중, 그 속에 섞인 사람의 생명력을 같이 맛보게 되어 사람의 생명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을 탐하는 악귀로 전락한다.


자온은 침입자를 제거하면서, 사람의 생명을 필수로 하게된 루시를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종종 사로잡아와 루시에게 건네준다.


나비잠 :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혹은 가볍거나 평안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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