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셨습니까? 그럼 작전을 시작하죠. 우리의 추축이 맞다면, 섬의 관리자는 섬의 일반 주민들이 모여있는 쪽을 노릴 겁니다. 섬의 주인에게 맞서기 위해 다른 위상능력자들이 자리를 비운 지금… 섬의 관리자가 나선다면 그들은 손도 못 쓰고 당하겠죠. 그러니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반드시요.
그 길목의 차원종들을 처리하고 계세요. 섬의 관리자는 반드시 올 겁니다. 저도 숨어서… 장치의 발동을 준비하죠.”
“알겠습니다. 그 사람이 올 때까지 이 주변 정리를 좀 해야겠네요.”
“후… 코팅은 끝났어요, 그만 가보죠.”
“네. 가요!”
준비를 끝마친 세 사람 앞으로 보이는 차원종의 모습.
은하가 선두로 나이프를 던지려던 순간.
촤자작-!?
순식간의 은하의 앞을 가로질러 차원종의 목덜미에 자기 이빨과 발톱을 새기며 나타난 여우.
킹-
“너… 이번에도 왔구나.”
또다시 나타나 차원종을 상대한 여우는 어느새 가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기척을 전혀 못 느꼈어.’
지난번에는 전투가 끝나 경계를 느슨하게 풀고 있어서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막 전투에 들어가 경계심이 고조된 순간인데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마치 자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게 아니라 나타난 것처럼-
‘두 번까지는… 아직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이 애는 또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은하가 홀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때 루시는 이전에 실패한 여우와의 스킨십에 재도전하려고 가연에게 말을 걸면서 손은 조용히 여우에게 향했지만-
아르르-
“흐잉…”
여전히 루시의 손길만은 거부하며, 사납게 으르렁거리면서 루시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는다.
“호야 그러면 안 되지.”
“…호야?”
으르렁거리는 여우를 품 안에 안고 그러면 안된다며 혼내는 가연이 내뱉은 말에 은하는 의문을 표했다.
“설마… 그사이에 이름을 지은 거예요?”
“아, 네. 계속 이름 없는 채로 지내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흐음… 그런데 왜 이름을 호라고 지은 거예요?”
“아, 그건… 예전에 강아지를 기르면 꼭 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거든요.”
옛 생각에 잠시 숙연한 눈빛을 보였지만, 품 안의 여우가 금세 얼굴을 핥으며 애교를 피워 다시금 밝아지는 모습에 은하는 저 여우는 이미 가연을 제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여우가 방금 한 걸 보면 방해는 안 될 것 같네요.”
“그럼… 같이 가도 되는 건가요?”
“네, 뭐… 놔두고 가면 그것대로 신경 쓰일 것도 같고, 뭣보다 제대로 일 인분 하는 녀석을 놀리기엔 우리한테도 아쉬운 일이니까요.”
아직 미심쩍기는 하지만 가연을 주인으로 인식하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라며 같이 가는 걸 허락했고, 그 말에 가연은 품 안의 호를 보며 기뻐했다.
두근!
“윽-!!”
하, 하필 이럴 때…?! 차, 참아야 해… 참는 거야. 루시, 마물들로 어떻게든 버텨야 해…!
“루… 시야?”
“괘, 괜찮아요! 얼른 가요!”
또다시 이유 모를 갈증에 괴로워하던 루시의 모습에 가연이 다가갔고, 그런 가연의 손길을 뿌리치고 감옥관을 둘로 나눠 전방을 향해 크게 휘두르자. 전방의 차원종을 관이 씹어먹는 듯한 모습이었고, 루시는 가연과 은하의 손길을 피해 달려 나갔다.
“이야- 몇 번을 봐도 무식하리만치 터프하네요.”
“……은하 씨, 저희도 빨리 따라가요.”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어서 따라가자며 루시의 뒤를 쫓아갔고.
키에에에-!!
촤악-!
“…비켜.”
앞을 가로막는 차원종은 그 어떠한 반응도 못 한 채 목과 몸이 분리되었고, 그런 가연을 보며 은하는 은근히 무서운 언니라며 작게 중얼거리며 가연의 사각에 숨어 자신에게 덤벼드는 차원종의 머리를 정확히 노려 나이프를 박아넣는다.
하-. 하아-. 하-!
“야, 금발.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겨우 따라잡은 루시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끊어질 듯한 숨소리에 은하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보았고.
“루시야, 정말 괜찮은 게 맞니? 많이 안 좋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마을로 돌아갈까.”
“괘… 괜찮아요. 그냥… 긴장을 좀 해서…”
“…언니의 사례도 있으니. 일단은 한번 믿어보죠.”
“……알았어요. 하지만, 계속 안 좋아 보이면 그땐 바로 마을로 돌아갈 거에요.”
루시의 상태를 걱정해 마을로 돌려보내려고 하는 가연한테 은하는 설득해봤자 루시가 전혀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일단은 지켜보자며 눈짓했고, 그런 은하의 눈짓에 가연은 알겠다며 수긍하면서 언제든 상태가 나빠지면 돌려보낼 거라고 말했다.
“은하 씨.”
“말 안 해도 알아요.”
두 사람은 서로 루시의 상태를 생각해 자신들만으로 관리자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한기남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울렸다.
저깁니다! 저기 관리자가 있군요! 시간을 좀 벌어주세요! 장치를 기동시킬 테니!
“알겠습니다.”
허공에서 흐릿하게 나타난 두 쌍의 환두대도가 고속으로 날아가 관리자를 스쳐 지나갔다.
촥- 좌작-
관리자는 자신을 스쳐 지나간 날붙이에 놀라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하아. 또 당신들인가요.”
그의 시선에 들어 온 세 사람의 모습에 관리자는 불쾌함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왜 자꾸 나타나서 절 방해하는 거죠? 대체 뭐가 문젠가요. 당신들한테는 저희 숭고한 이념조차 느낄 수 없는 건가요?”
“제가… 밖에서 보낸 시간이 별로 없어서 기본적인 상식 같은 게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런 저라도 지금 이 섬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어떠한 숭고한 이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그런 좋은 말로 포장할 자격조차 없을 만큼 추악하고 더러운 일을 하고있는 당신한테선 위선밖에 느껴지지 않네요,”
차분히 내려앉은 차가운 분노를 머금은 회색빛 눈동자가 관리자를 내려다보며 관리자가 하는 말을 맞받아쳤고, 그런 소녀의 말에 관리자는 인상을 쓰며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다.
“…실로 아쉽군요. 당신이라면 우리의 숭고함과 이념을 깨닫고 우리 신앙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왜 당신들 신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애초에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런 종교는 믿을 이유도 그럴 가치도 없습니다.”
잔뜩 날이 서 있는 가연의 말에 관리자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봐, 언니한테 말로 까이니까 기분이 어때요? 뭐, 그것보다 인제 그만 돈 내놓으시죠.”
“하아- 배금주의자 당신은 그렇게나 돈이 중요한 건가요? 그 정도 힘을 가지고도 황금의 탐욕에 눈이 멀다니… 실로 한탄스럽군요. …응? 당신 아직도 남아있었군요. 그래도 많이 힘들어 보이는 게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죠?”
“조용히… 하세요. 얌전히… 무릎을 꿇고, 항복하세요. 그러면 당신을 해치지는 않을게요.”
힘들어하는 루시의 모습에 관리자는 킥킥 웃으며 루시를 비웃는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협박이라니, 듣기에 나쁘지 않군요.”
한참을 비웃던 그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기더니-
“…정말 가소롭군. 이번에야말로 그 남은 불꽃 확실하게 꺼트려 드리죠.”
소름 끼치게 차갑게 변하며 총을 장전하자.
쿠웅-
갑자기 몸을 누가 누르는 듯한 중압감에 멈칫하고 시선을 올리자.
“뭘 꺼트린다는 거죠.”
“하- 정말이지. 그런 힘을 가지고 저희와 함께해주신다면 정말 덧없는 영광이었을 텐데.”
“저한테는 아니라서요.”
가연의 위상력에 의해 움직임이 봉쇄당한 관리자는 이런 힘을 가진 가연이 자신과 함께하면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하였고, 그 순간에 은하와 루시 두 사람이 달려들어 전우치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통해 공격을 가하였지만-
“하아- 역시 당신의 힘과 제 힘은 상성이 썩 좋지 않네요.”
순간 가연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타앙-!
“금발!”
가연의 뒤에서 루시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 소리에 은하가 황급히 루시를 감쌌다.
“아악……!!”
“은하 씨!”
“!? 당신-!”
은하의 부상에 분노한 가연의 주변에 떠오른 흐릿한 칼의 형체가 시위에 당겨진 화살처럼 날아가 관리자를 향해 꽂혔다.
…아니, 꽂혔어야 했다.
“여, 연이… 언니…….”
“……어.”
왜… 루시가…
“그래서 말했었잖아요.”
상성이 안 좋다고.
호가 왜 루시를 경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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