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야 꼰대! 멍하니 거기 서서…. 빨랑 정신 안 차리면 내가 썰어버린다?!"
"너……. 설마… 나타냐?"
검은 갑주의 존재에게서 나온 너무나 익숙한 그 목소리와 말투에 트레이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트레이너의 말에 남자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아? 이게 벌써 노안이 왔나? 아니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꼰대?!"
너무나 익숙한 그 태도에 늑대개들은 점점 그가 나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확신하기엔 기억 속 나타와 눈앞의 존재는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머리카락 색이나 복장만이 아니라 체격이나 신장도 확실히 더 성장해있었다.
"저… 정말 나타인가요? 그럼 증거를 보여주시죠?"
하피의 질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검은 갑주는 갑자기 뭔가를 눈치챈 듯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 언제 이런 걸 입었데? 이러니 네놈들이 날 못 알아보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군. 하지만 난 틀림없이 나타다. 그 증거로 이걸 보라고."
그렇게 말하며 검은 갑주는 목 부분의 갑옷을 잡아당겨 안쪽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푸른색과 검은색의 배합으로 디자인된 초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나타의 목에 채워진 벗을 수 없던 족쇄. 착각할 리 없는 증거를 확인한 그들의 생각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었다. 눈앞의 존재는 그들의 동료였던 나타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잠깐만요. 당신이 나타 씨라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대체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거지? 설명해라."
팀원들의 요구에 난감한 기색을 띠는 검은 갑주, 나타는 골머리를 썩였고,
‘설명하라고 해도…. 나도 대체 뭐가 뭔지….’
한숨을 내쉬며 바로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
.
.
.
.
.
"으윽……. 여기는…."
눈을 떠보니 나타는 안개로 가득 찬 의문투성이의 장소에 있었다.
"뭐야 여긴. 난 분명… 강물에 빠져서 죽… 었을 텐데…… 그럼 여기는…."
주위를 살피는 나타. 하지만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시야를 방해하는 안개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건가…? 거기에 감각도 묘하게 붕 떵 있고…. 역시 난 죽은 거로군… 그렇다면 여기가 죽으면 오게 된다는 삼도천이란 건가?"
"그건 틀렸다."
"?!!!!"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타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더욱 놀랐다. 붉은색 스케일 메일을 몸에 두른 새까만 피부를 가진 거인이 어느새 뒤에 나타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거대한 덩치와 피부색 등이 그가 인간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는 눈앞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한때는 동료 같은 관계에서 종국엔 서로의 목숨을 걸고 혈투를 벌였던 존재.
"...맘바…."
나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에 존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를 들은 맘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답했다.
"그래. 오래간만… 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만…."
맘바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타. 하지만 곧 자조하며 자신의 상황을 확신했다.
"하하…. 네놈이 보이는 걸 보면… 난 확실히 죽었나 보군."
자기 죽음을 확신하는 나타를 바라보며 나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랬다면 편했겠지만 아쉽게도 넌 아직 주죽지 않았다."
"?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럼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 네 몸은 확실히 죽음의 문턱에 다가갔다만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맘바의 말에 순간 화색을 띤 나타였지만 곧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아…. 어차피 곧 죽을 거란 건 변하지 않았단 거 아니야?"
"그 말대로다. 지금 네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 아니 그 이상으로 위태롭다."
"쯧…! 그나저나 내가 아직 살아있다면 넌 대체 어떻게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넌 확실히 내가 죽였을 텐데?"
혀를 차며 궁금한 것을 물어오는 나타에게 맘바는 눈을 감고 회상하듯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난 그때 죽었다. 네놈의 칼날이 내 심장을 꿰뚫고 폭발시키며 내 목숨을 끊었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 한가지 미련이 생기더군……."
"? 미련이라고?"
"그래. 너를 포함한 너희 늑대들이 이를 결말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죽기 직전 남아있건 마지막 의식과 영혼의 일부를 네 목의 족쇄에 옮겨놓았다."
"? 이 망할 개목걸이에 네 의식이 들어있다고?"
맘바의 말에 놀라 자신의 목을 더듬는 나타. 손에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을 느끼며 맘바를 바라보자 맘바는 이에 긍정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그 족쇄는 평범한 방법은 물론 용의 힘을 가지고도 벗기는 게 불가능한 물건. 너희들의 결말을 끝까지 보기 위해선 안성맞춤의 물건이었지."
"하? 그래서? 내가 죽었으니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하려고 불렀냐? 위로라도 해주려고? 그러려고 부른 거면 그만둬. 오히려 짜증 나니까."
성을 내며 덤벼오는 나타에게 맘바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런 거였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이렇게 나타나건 전혀 다른 이유에서다."
"? 또 무슨 이유가 있는데?"
"...내가 널 이렇게 부른 건… 바로 저자 때문이다."
손을 들어 올려 나타의 반대편을 가르키는 맘바. 이에 나타가 고개를 돌리니 안개뿐인 그곳에서 갑자기 붉은 위상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위상력이 잦아들며 또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단단한 외골격에 둘러싸인 거대한 핏빛 육체. 머리 위로 돋아난 부서진 한 쌍의 뿔과 등 뒤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꼬리.
“…너는… 분명 메피스토란 개체명의…."
"그렇다. 나는 심연의 악마, 너희들이 메피스토라고 이름 지은 존재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마 메피스토를 보며 나타는 침을 삼켰다.
"…네놈이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흠~벌써 잊었나? 난 분명 그대에게 내 힘의 일부를 나눠줬었을 텐데?"
메피스토의 말을 듣고 이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나타. 승급을 위해 임무를 실행하던 도중 메피스토 타입의 분신에서 그 힘을 강제로 부여받았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나타는 다시 메피스토에게 물었다.
"분명 그때 네놈의 힘을 억지로 받긴 했지만… 삶은 달걀 여자의 힘으로 처리했을 텐데?"
"흥! 어리석구나! 설마 한낱 인간의 힘으로 이 몸의 힘을 전부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비웃음을 날리며 메피스토는 자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붉은 위상력을 흩날리며 강력한 압력을 내뿜는 그를 보며 나타는 식을 땀을 흘렸다.
"확실히 그때 그 여자의 힘으로 내 힘은 대부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너에게 넘긴 건 단순한 내 힘의 일부가 아닌 영혼의 일부분도 함께 넘겼었다. 그렇게 힘에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남아있던 영혼조각은 남아서 네놈의 몸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
"…때라고?"
"그래. 네놈이 이간의 힘이 아닌 우리의 본연의 힘을… 제1 위상력을 순순히 몸에 받아들이는 때를!"
메피스토의 말에 한가지 기억이 뇌를 스쳤다. 그가 레비아와 싸우기 위해 사용했던 각성제. 그 각성제의 작용으로 나타는 제1 위상력과 제2 위상력을 동시에 사용 가능해졌다.
"네놈이 몸에 받아들인 힘을 토대로 나의 조각은 힘을 축적하며 네놈의 목숨이 끝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대체 뭐 때문에…."
"그야 당연히 네놈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메피스토의 선언에 나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죽는다면 그 육체를 그릇으로 나의 부활을 꾀하려 했지."
"큭…. 그래서? 그런 걸 내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흠…. 원래라면 죽은 네 몸을 빼앗고 그 자리에서 부활할 속셈이었지만…. 설마 용의 영혼이 너를 보호하고 있을 줄이야…."
메피스토의 말에 나타가 맘바를 돌아보았다. 이에 맘바도 멋쩍은지 고개를 돌리고 볼을 긁적였다.
"딱히 널 도우려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이 녀석이 부활하면 여러모로 큰일이 벌어질 테니 조금 손을 빌려준 것뿐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의 부활을 방해하는 정도일 뿐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하지. 안 그런가 전(前)용이여?"
메피스토의 말에 부정하지 못하는 맘바. 이에 메피스토는 마치 아량을 베푸는 듯한 억양으로 말을 이어갔다.
"뭐~그렇다고 용의 방해를 무시하고 부활을 진행하자니 실패할 확률이 생겨버리지. 나로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부활의 기회를 확실히 하기 위해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싶다. 그래서 여기서 한가지 내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내기라고?"
메피스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의아해하는 나타. 이에 메피스토는 친절히 그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내기의 내용은 간단하다. 난 지금부터 조각이 축적한 힘을 한 번에 개방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기 있는 용의 힘도 함께 불어넣는 것으로 위상력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너의 육체는 방대한 위상력에 침식되고 그 형태가 재구축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렬한 통증이 네 정신을 부숴나갈 것이다. 그 고통을 버티는 데 성공한다면 너의 승리, 만약에 너의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부서질 시 변질된 위상력 중 좀 더 짙은 위상력의 주인이 새로운 육체를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
메피스토의 설명을 묵묵히 들으며 나타는 머릿속으로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경우 이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다. 그럴 바에는 이 내기를 받아들여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는 편이 좋았다.
"...속지 마라. 나타. 이자는 지금 너를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타에게 맘바가 조언의 말을 던져주었다.
"신체가 재구축되면서 일어나는 고통은 일반적으로 견딜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나와 이 악마가 위상력의 지배권을 두고 싸우기 시작하면 그 여파로 상상을 초월할 충격이 너의 몸에 가해질 것이고 이는 정신에도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거기에 원래의 힘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 너의 족쇄에 옮겨둔 힘과 영혼만으론 솔직히 이 악마를 이길 수 있다 확신하기도 힘들다."
"...한마디로 이 내기는 네가 가장 유리하단 소린데. 뭔가 변명할 말이라도 있냐?"
맘바의 말을 듣고 나타는 메피스토를 노려보며 추궁했다.
"후후…. 확실히 그렇지. 너의 몸속에 자리 잡은 조각은 젊은 용의 영혼의 조각과는 달리 심연에 있는 나의 본체와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네 정신이 신체가 재구축되는 고통을 버틸 확률은 백의 하나 정도의 가능성뿐이지. 확실히 이 내기는 나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너는 이 내기를 받아들이겠지? 안 그런가?"
"쯧…! 이 능구렁이 같은 놈……."
혀를 차며 메피스토를 욕하는 나타. 그의 말대로 나타는 이 내기를 거절할 수 없다. 이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은 이 정신세계에서 나가는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될 테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확률이 낮다 해도 이 내기에 참여하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타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네 말대로 난 이 내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맘바 이 녀석도 내가 이 내기에 참여한다고 하면 못마땅해하면서도 참가하겠지. 하지만…. 넌 왜 이런 내기를 제안한 거지? 겨우 이 녀석의 방해가 성가셔서란 헛소리는 하지 말라고. 내가 볼 때는 내기를 하는 것보다는 맘바의 방해를 무릅쓰고 부활을 강행하는 게 더 쉬워 보인다만? 네 진짜 목적이 뭐야?!"
나타의 일갈에 메피스토는 처음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타를 칭찬했다.
"호~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군. 확실히 이런 내기를 하는 것보다 용의 방해를 무시하고 억지로 부활을 꾀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고 확률이 높지.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렇게 할 시 따라오는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득이라고?"
"그래! 바로 용의 권능과 제3의 힘! 내 본래의 힘에 이 두 가지가 더해진다면…. 과거에 실패했던 군단의 정복도 절대 불가능이 아니겠지."
메피스토의 목적을 들을 나타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내기의 결과 상상 이상의 괴물이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기를 거절해봤자 나는 죽고 저 녀석은 그대로 불안하지만, 부활을 시도할 뿐… 저 녀석은 잃을 게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선택은….’
"....하하. 확실히 네놈은 악마로군. 이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이런 정확한 타이밍에 해오다니."
설화 속 악마들은 인간을 유혹해 내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 내기는 인간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내기. 설령 상대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더라도, 아무리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인간은 이를 붙잡고자 계약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건 나타 또한 마찬가지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 나타는 결정을 내렸다.
"하! 좋아… 좋다고…!!! 그 내기 받아들여 주마! 이 썩을 악마 놈……!"
"?!! 나타 제정신인가? 저 악마도 말했지 않은가? 네가 이길 확률은 백에 하나가 될까 말까 하다고! 그런데…."
"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맘바가 놀라며 막았지만 그럼에도 나타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야. 너 너무 날 무시하는 거 같은데…. 무시하지 말라고. 뭐? 백에 하나? 그 정도 확률이면 충분해. 요는 내 정신이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설령 확률이 천에 하나, 아니 만에 하나로도 내가 질 일은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맘바를 안심시키는 나타. 이에 맘마도 한숨을 내쉬며 그를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너란 녀석은…. 좋다. 네 각오가 그렇다면 나도 말리지 않겠다. 나 또한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해 악마, 네놈의 승리만은 막도록 하겠다."
맘바의 참가 의사를 확인한 메피스토는 크게 웃으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크하하하하하하-!!!! 좋아-! 좋구나-!!! 그렇게 나와야지!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서로의 운명이 걸린 내기를 말이야…. 과연 승리하는 것은 누구일까? 상처투성이 늑대? 폐위한 용왕? 그것도 아니면 추방된 악마? 누가 되든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지겠군.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하-----!!!!!!"
메피스토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의 몸에서 퍼져나온 붉은 빛이 나타의 시야를 빼앗았고 직후 나타의 본래 의식이 돌아왔다.
‘으윽…! 여긴 다시 강물인가? 그렇다면 바로 전에 그건… 꿈… 은 아니군.’
눈동자를 굴려 가며 살펴보자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위상력의 실이 자신을 점점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붉은 위상력 사이로 한 가닥의 보랏빛 위상력이 퍼져나갔고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커허어어억--!!!!!"
순간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쉬며 대량을 물을 들이켜 버린 나타. 하지만 이를 신경 쓸 정신은 지금 나타에겐 없었다.
‘뭐, 뭐가 어떻게…!??!!! 끄윽…! 모, 몸이……!’
전신의 세포가 하나하나 태워져 나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며 강렬한 고통이 잇달아 일어났다. 분명 감각은 전부 다 마비되었을 텐데 어떻게 고통을 느끼는가 하는 생각이 한순간 들었지만 아마 메피스토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이리라 결론을 내리고 그 생각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쓸 정도로 지금 나타가 느끼는 고통은 여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세포가 타는 느낌은 어느새 세포 하나하나가 뜯겨 나가고 뜯겨 나간 자리에 새로운 세포가 다시 기생하면서 뿌리를 내리는 감각. 평범하게 쇼크사하고도 남을 고통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나타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크아아악...!!!! 끄으윽…! 제… 길……! 더럽게 아프네…!!!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속으로 비명과 욕설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버티던 때였다. 붉은색 위상력 사이로 뻗어나던 보라색 위상력이 한순간 범위를 넓히더니 그 순간 지금까지보다 한층 더 강렬한 고통이 나타의 전신과 정신을 덮쳤다. 몸이 세포 단위로 분해됐다가 다시 합쳐지길 반복하는 고통 속에서 근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만 포기하지그래?‘
귓가에 들리는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 어디선가 분명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이를 떠올릴 여유 따위 지금 나타에겐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살인자 따위가…. 그냥 죽어버리지그래?’
이번엔 어린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어딘가 익숙한 그 소리에 나타는 고통 속에서도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려 보려 했다.
‘…양심도 없이…. 혼자만 살려고 해?’
그러던 중 목소리는 다시 바뀌어 이번에 이제 막 변**가 온 듯한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목소리도 분명 알고 있는 목소리였지만 누구의 것이었는지 떠올리지 못하는 나타. 고통 속에 끊어질 것만 같은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며 생각을 계속하는 그의 귀에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를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 비겁하게 살아온 주제에…. 인제 와서 누굴 죽이는 걸 망설여? 거기에 죽고 싶지 않다고?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10대 소녀의 목소리가 나타의 귓가에 울리고 이어서 나타는 기억해 냈다. 이 목소리의 주인들을.
이…. 이건… 분명 그 수용소의 실험체들의……?!!!
나타가 기억을 떠올린 순간 나타의 눈에 이변이 일어났다. 시야가 일그러지더니 수많은 인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다 똑같은 피에 물든 구속복을 입고 있고 누구 하나 온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나타는 그들이 누군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잊을 수 없다. 과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왔던, 같은 시설에서 살았던 실험체들이었으니. 극심한 고통 속에 자신의 뇌가 만든 환상인지 메피스토의 함정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나타.
"너… 너희들은…! 커허어어억-!!!!"
하지만 나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또다시 강렬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그리고,
‘비겁하게 혼자만 살다가 결국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구나. 꼴 좋다?’
‘그렇게 죽을 거 뭐하러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남았데? 별꼴이야.’
‘아니면 뭐야? 너만은 다를거라 생각했어? 너만은 특별하다고? 정말 어이없네’
‘넌 그냥 쓰레기야. 너 혼자 살자고 같은 고통을 겪은 우리를 아무렇지 않게 죽여왔던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그런 주제에 인제 와서 누굴 구하기 위해 죽을 수 없다고? 꿈도 야무지지. 그냥 다 포기하고…….’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크으윽……!!!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증오와 악의로 똘똘 뭉친 저주의 말에 나타는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틀어막고 발악을 해도 그 말들은 그대로 들려와 나타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육체가 파괴되고 다시 생기는 것을 반복하며 생기는 고통만으로도 이미 평범하게 생각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에 그동안 억눌러왔던 죄책감의 대상에 의한 정신적 공격까지 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정신이 파괴되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고통 속에서 나타는,
"크으으으으윽...!!! 킥-! 키히히히히힛-!!"
신음을 흘리는 와중에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킥킥……. **……. 알고 있다고. 내가 길을 잘 못 들었단 정도는. 이미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지고 더 추해질 것도 없을 정도로 더러워졌지."
‘오~ 알고 있었네? 그렇다면 알잖아? 그냥 다 포기해버려! 그냥 죽어버리라고! 그걸로 모든 게 편해질 테니까…….’
** 듯이 웃으면서 자조의 말을 중얼거리는 나타. 이에 그가 드디어 망가졌다고 생각했는지 나타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 한 실험체가 그 귓가에 속삭이며 유혹하듯 손을 뻗었다. 이에 나타도 그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하지만, 손을 붙잡은 나타는 그대로 실험체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며 그 얼굴에 주먹을 휘갈겼다. 기습적으로 날아온 주먹에 맞은 실험체는 그대로 안개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나타의 얼굴엔 사나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겠어…!"
‘하아? 의미를 모르겠군. 네 입으로 말했잖아. 이미 망가질 만큼 망가졌다고.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아직 살려고 하는 거지?’
“킥-! 그야 남의 목숨을 죽여가면서 억지로 부지해온 목숨이니까. 내 손에 죽어간 네 녀석들을 포함한 모든 놈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쉽게 죽을 순 없는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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