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시즌1 스토리 스포일러 有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 주의
“미래 씨, 여기 계셨군요!”
“...”
신서울의 복구지역에 온 지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금의 짬 시간이 난 수현은 미래를 찾았다. 미래는 수현이 <쓰레기섬> 에서 만난 주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미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위상력에 각성한 자였다. 즉, 미등록 위상능력자였다. 차원종이 아예 안 나타나는 건 아니었던 장소에서 위상력능력자인 미래의 존재는 섬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섬 주민들이 있는 곳은 쓰레기섬이 아니었다. 엄격한 법이 존재했고, 특히 미래 같은 미등록 위상능력자에게는 좀 더 많은 제약이 필요했다. 생전 처음으로 겪는 사회의 법에 답답할 법도 하지만, 미래는 잘 적응해갔다. 다만, 숨을 좀 고를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길 때면 미래는 멍하니 하늘을 구경했다. 주로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현의 기척을 느낀 미래는 빤히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중얼거렸다.
“...외부인.”
“여전히 그런 호칭으로 부르시는군요.”
“싫어?”
“아니요, 그렇게 부르시는 게 편하다면 그렇게 부르셔도 돼요.”
수현은 미래가 앉은 자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수현을 아직도 바라보면서 미래가 변명하듯 작게 말했다.
“외부인 이름...어려워서...”
“아, 그러실 수 있겠네요. 섬 사람들에게는 제 이름이 복잡할 수도 있겠네요.”
섬 사람들의 이름은 주로 하늘, 희망 같은 짧은 음절의 명사형 이름이 많았다. 수현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수현은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미래는 이해를 못했나 보다. 머뭇거리는 미래의 목소리가 바로 그 증거였다.
“화, 안 내?”
“화를 왜 내겠어요. 이건 미래 씨 잘못이 아닌데요. 물론 섬 사람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화 낼 줄...알았는데.”
미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수현은 미래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주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인 대화였다. 수현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미래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 위를 올려다보는 걸 알아챈 수현이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미래 씨는 하늘 보시는 걸 정말 좋아하시나 보네요.”
“하늘 보는 거...좋아하는 거 맞아.”
“그렇겠지요. 그 섬에 있을 때 보던 하늘은 특히 저녁때가 가장 예뻤던 거 같아요. 물론 여기 신서울 하늘에 버금갈 정도는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기 하늘도 이뻐.”
희망적인 반응이라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섬에서 살던 사람들을 섬에서 나오게 하던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미래는 마지막으로 섬에 남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중간에 의견을 바꾸기는 했지만, 어쩌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현은 미래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아마 같은 대한민국의 하늘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
“여기 하늘도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외부인은, 착하네...”
미래가 살짝 미소 지었다. 섬에 있을 때는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는데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하면서 표정이 조금 많이 다채로워진 거 같았다. 또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는 미래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늘 보는 거, 하늘 언니랑 항상 봤어.”
하늘이란 미래가 속했던 그룹의 리더였던 자라고 한다. 상냥하고 따뜻했던 사람이라고 미래는 그녀를 소개했다. 수현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지만,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챙겨주었다는 걸 미래의 대화에서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그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따스함이 익숙한 기분도 들었다. 하늘 언니에 대해 수현은 좀 더 미래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하늘 언니란 분은 분명 미래 씨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맞아...그런데 착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말이시죠?”
“하늘 언니...자원봉사자라고 나한테 말했었거든.”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섬에 들어온다. 수현이 이것에 대해 나쁜 짓이라고 말했고, 그에 대해 미래는 ‘자원봉사자는 나쁜 사람’ 이라는 인식이 박힌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수현은 잠자코 미래의 이야기를 더 들었다.
“좋은 사람이, 무조건 착한 사람일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
“...”
“그런데 외부인은, 착한 사람 맞는 거 같아.”
“글쎄요, 과연 제가 착한 사람일까요.”
긍정해주는 미래에게 수현은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그건 아마도 이 섬 사람들을 방치한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처음 그 섬에 들어갈 때에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야하는 사람을 구해**다는 사명감에 똘똘 뭉친 채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누나를 찾겠다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착하다고 말해주는 미래의 말에 수현은 갈팡질팡했다.
수현이 조금 당황하는 걸 알아챈 미래가 손바닥을 보이게끔 손을 내밀었다. 이 의미를 수현은 한참 후에나 물어보았다.
“무슨 의미시죠?”
“손...좀 줘 봐.”
“손이요?”
“응.”
수현은 머뭇거리며 미래와 손을 맞잡았다. 수현의 손에 비해 미래의 손은 상대적으로 차가웠다. 수족냉증인가, 라고 생각하는 수현에게 미래는 담담하게 평을 내렸다.
“따뜻하네.”
“사람은 누구나 36.5도를 유지하니까요.”
“섬 사람들은...이렇게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 없어.”
불쑥 튀어나온 미래의 말에 수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래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섬 사람들은 대부분 병에 걸렸고, 병에 걸린 사람들의 손은 수현의 손만큼 따뜻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를 말해주는 미래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더 슬퍼보였다.
“초원이도...하늘 언니도...모두 손이 차가웠어. 그리고 과거에 남아버리면 그 차가운 손마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어. 손에 잡히지 않게 되었어...그래서 처음 네 손을 잡았을 때, 따뜻하다는 걸 느꼈고,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어.”
“미래 씨...”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의 손은 이렇게 따뜻하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이 온기가 다시 차가워지는 경험을 하기는 싫어.”
미래가 반대쪽 손으로 작게 주먹을 쥐었다. 아마 수현에게 가장 묻고 싶은 말은 이거였던 거 같다.
“그리고 내 손도...따뜻해지는 날이 올까?”
“물론이죠.”
“항상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하늘 언니 말처럼 미래를 열 수 있는...”
“미래 씨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리고 이미 그 미래로 잘 나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정말?”
정말로. 수현의 이 말에는 왠지 모를 울분마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던 거 같았다. 미래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아직은 잘 몰랐다. 다만 자신의 손을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잡아주는 수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만은 알아차렸다.
과거에 머문 사람은 손에 닿지 않은 곳으로 가버리지만, 미래를 함께 나아가는 사람들의 손은 닿을 수 있다. 바로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옆에 있는 사람의 온기가 손을 타고 누구보다도 잘 느껴진다.
미래는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
“고맙긴요. 당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인걸요.”
수현의 표정은 놀을 등지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미래는 지금 수현이 짓는 표정이 한없이 따스하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따뜻한 온기를 가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착하고 따뜻한 사람. 미래로 나아가야만 한다면 같이 가고 싶은 사람.
이런 소중한 사람은 항상 미래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그건 서로 동등한 위치일 때도 있었고, 수현이 미래보다 먼저 앞서서 이끌어줄 때도 있었다. 미래가 큰 부상을 입고 병원을 찾으러 사경을 해맬 때에도 수현은 굳건히 미래의 손을 옆에서 붙잡아주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미래는 바로 옆에 있는 수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왜 미래 씨가 미안해하세요.”
“하고 싶은 거...이제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져 버렸어...이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미래 씨.”
흐느끼듯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용서부터 구하는 미래에게 수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유능했어도, 이제 겨우 앞을 보기 시작한 미래가 이렇게 낙담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래도 수현은 다시 일어났다. 이미 이런 후회를 하는 것부터가 과거의 일이다. 미래는 과거에 남아버린 사람은 손에 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닿을 수 없는 것에 신경 쓸 바에는 지금 한창 떨고 있는 옆 사람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괜찮아요, 미래 씨.”
“...”
“당장 앞을 보기 힘들 때, 이렇게 낙담할 때,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미래는 꼭 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수현은 수진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수진도 수현에게 있어서는 과거에 남아있는 사람,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과거와 미래, 힘들면 그 두 가지를 생각 안하셔도 돼요. 우리는 지금 ‘현재’ 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이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도 되는 거예요.”
“...”
“우리,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가 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 같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거예요.”
미래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일침일까.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일까.
수현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미래의 표정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 미래가 반대쪽 손으로 수현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결 편해진 얼굴이다.
“...고마워.”
“...”
“나, 좀 더 힘내볼게. 우선은...너무 졸려...”
“네, 푹 주무세요. 아무런 근심도 하지 마시고요.”
미래는 곧장 잠에 빠졌다.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수현은 천천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미래는 이제 괜찮아질 것이다. 분명 더 강해질 것이다.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 탈바꿈을 하듯,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런 강해질 미래의 옆에 계속 있으려면 지금의 자신도 그만큼 강해져야 했다. 수현의 다짐 또한 그렇게 단단해져갔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미래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미래야--!! 수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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