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꿈을 꿔왔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오직 어둠만이 존재하는 곳.
빛도, 소리도, 냄새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속 난 늘 홀로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영원과도 같은 정적과 고독함만이 있는 곳.
난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내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그래서 이곳에서 벌을 받는 건가.
“…….”
그런 생각을 계속 되뇌다가 어느 순간 뭐에 홀린 것처럼 스르륵 눈이 떠진다.
“…….”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부터 생긴 이 꿈은 현실에 지쳐가는 나에게 꿈속이라 하더라도 결코 나의 안식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꿈.’
여느 때와 같은 꿈을 꾼 소녀는 오늘도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될 거란 생각에 살짝 침울해졌다.
그리고는 아마도 환각제로 인한 환상이었겠지만, 한 번이라도 겪어본 바깥.
그 그리운 감각이 오랜만에 뱉어진 내 목소리.
그 순간의 모든 것은 선물이었고,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결국 어린아이가 바라는… 그저 한여름 밤의 꿈.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론 씁쓸해졌다.
‘아직도… 바닷가의 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늘 상 나는 약품의 냄새가 아닌 바닷바람을 타고 노는 소금기를 머금은 짭짤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그럴 리가 없겠… 어?”
모, 목소리가….
분명 환각이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목소리.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지금.
다시금 나오는 목소리에 놀란 소녀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늘 보던 정신병이 걸릴 것 같은 무기질적인 백색의 방.
있는 거라곤 책상과 의자, 늘 책상 위에 놓여있는 공책과 필기구.
그리고 삭막한 영화에서나 본 외국 교도소에서나 쓸 법한 침대와 커다란 직사각형의 두꺼운 철문.
그런 것들이 아닌 조금은 좁고 허름하지만, 확실히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컨테이너로 만든 거주지가 눈에 들어왔다.
“……꾸, 꿈이 아니었어.”
그럼… 내가 바닷가에서 눈을 뜬 거나….
차원종한테 몸이 뚫린 거나….
위상력… 같은 힘을 쓴 게….
“전부 진짜였어…!”
차라리 꿈이어서 가능했다는 게 좀 더 현실성 있다고 여길 일들.
하지만 그건 소녀의 원하던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현실.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에 소녀가 당혹스러워할 때.
“언니. 일어났어?”
“엇…….”
순간 열리는 컨테이너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아라.
소녀의 얼빠진 반응에 아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우선 소녀가 걸치고 있는 이젠 넝마나 다름이 없는 옷을 대신해 소녀가 입을 만한 옷가지를 가지고 온 아라는 소녀에게 한번 입어봐라고 한다.
“저수지 언니가 전에 만들다가 입힐만한 인물이 없다고 놔둔 걸 내가 부탁해서 받아 왔어.”
“으… 으응. 고, 고마워… 아라야.”
“에헴.”
소녀의 서투른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져 가슴을 쫙 펴며 조금 건방진 표정을 지은 아라.
입고 나오라는 말만 남기고 컨테이너 밖으로 나간 아라를 보며 소녀는 지금 넝마나 다름없게 된 옷을 벗으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누가 날 옮긴 걸까?’
마을과 거리가 가까웠다면 애들이 다 같이 옮겼을 테지만… 그런 것 치곤 바지나 다른 옷가지 등에 땅에 쓸려서 묻은 흙 자국 같은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들었다는 건데….
‘음…… 모르겠다.’
뭐, 지금은 아라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자.
끼익-
“아, 언니. 이제 나왔…”
문을 열고 나온 소녀의 모습에 아라는 잠시 시선이 빼앗겼다.
하늘색이 감도는 청바지에 흰색의 티셔츠. 그리고 그 위를 덮는 갈색의 트렌치코트.
분명 흔하디흔한 복장이지만 소녀의 외모와 매칭되어 상당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우와- 언니 되게 예쁘다!”
“그, 그래…?”
사실 옷을 많이 입어본 적이 없는 소녀는 별생각 없이 주는 대로 입은 탓에 뭐가 예쁜 건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아라가 보이는 반응을 보고 따라서 반응할 뿐 소녀 자체는 옷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어. 언니 머리도 땋은 거야?”
“아… 응. 한 갈래만 너무 길어서….”
원래 연구소에 있을 때까지는 긴 장발이었던 소녀가 어째서인지 해안가에서 눈을 떠보니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있었다.
그것도 잘 다듬어진 게 아닌지라 왼쪽 옆 머리카락만 길어서 두 갈래 땋기로 묶었다.
‘머리 끈이 없어서 주변에 있던 노끈을 좀 잘라서 묶었지만….’
뭐, 별 상관은 없겠지.
“저수지 언니가 보면 굉장히 좋아하겠다.”
“그, 그래?”
“응! 그 언니는 옷 만드는 게 특기인데. 나중에 섬에서 나가면 밖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데.”
아라를 통해 듣게 된 저수지라는 아이에 대해 알게 된 소녀는 잔뜩 신이 나서 떠드는 아라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다.
“아, 몸은 좀 괜찮아?”
“응? 어… 괜찮아.”
“그래. 그럼 다행이다.”
한참을 얘기하던 중 자신이 온 이유가 생각난 건지 저수지에 관한 얘기를 멈추고 소녀의 몸 상태에 관해 묻자 조금 뜸 들여 답했지만, 그 말에 어린아이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짓는 아라.
“어제는 고마웠어.”
“어제? …아.”
아마 자신이 여기에 도착해서 아라와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차원종의 습격에서 애들을 피신시킨 날을 말하는 것이다.
“언니 덕분에 애들 전부 무사히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아라의 말에 소녀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누군가에게 받는 감사의 말이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것이었다며,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알게 되었다.
소녀는 아라를 바라보며 어제의 그 아이들을 볼 수 있겠냐 묻자, 아라는 소녀의 손을 조용히 잡고 문의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좁고 어둡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컨테이너를 나와 밝은 바깥의 풍경.
수많은 컨테이너와 폐기물 등으로 이루어진 해안가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
어릴 적 아버지의 고향을 여행 갔을 때 보았던 것보다 더 어지러웠지만, 점점 사라져가던 조그마한 기억의 파편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제 자신이 구한 아이들을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아라와 함께 좀 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단 한 번도 어른들을 **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저기… 아라야.”
“응? 왜 언니?”
“어른들은 다 어디 가셨니? 혹시 조업하러 가셨어?”
그 물음에 방금까지 기운찬 미소를 짓던 아라의 얼굴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어른들은… 다 죽었어.”
“뭐…. 다 죽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죽음이라는 단어.
더욱 놀라운 건 그런 말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 그래서 지금은 나랑 희망 오빠가 우리 그룹의 리더야.”
희망 오빠…?
처음 듣는 이름에 순간 호기심이 생겼지만.
“안녕~ 꼬맹이들. 오늘 또 잔해 수집 많이 했- …어?”
“……?”
순간 갑자기 보이는 트럭과 함께 나타난 여인.
자신을 보고 무슨 죽은 사람을 본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응?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왜 저렇게 보시는 거지?’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보며 죽은 사람을 본 것처럼 반응하는 것에 의아해하던 찰나.
“반금련 씨-.”
트럭의 뒤에서 들려오는 발랄하고 듣기만 해도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토끼 귀 같은 리본을 한 황금을 녹인 듯 밝은 금발에 해맑은 미소를 짓고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생기발랄한 목소리를 한 인형과도 같이 귀여운 외모의 소녀.
“어? 못 보던 분이시네요.”
“이봐 금발. 또 먼저 다니지 말라고- 응? 이 언니는 또 누구예요?”
금발의 귀여운 아이의 뒤에서 나른한 표정을 한 머플러를 두른 여고생.
아마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지만, 세상의 풍파는 다 겪어 본 듯한 지친 눈동자가 소녀를 바라본다.
“혹시 그쪽 지인이에요?”
“아니, 여기까지 따라오려고 하는 괴짜 지인이 있겠어?”
“하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런 곳에 오려는 사람은 없겠죠.”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뱉어내는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정말~ 은하 씨. 본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금발의 아이가 머플러를 한 소녀를 보며 은하라 부르며 그런 대화를 자제해 달라 부탁하자, 은하는 남 이사. 라며 흥미가 식었는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어휴~ 은하 씨도 참.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루시 플라티니라고 해요. 편하게 루시라고 불러주세요.”
“어, 어어…. 마, 만나서 반가워.”
은하를 보며 한숨을 쉬는 모습이 조금 성숙한 어린애가 어른인 척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중.
순간 고개를 돌려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에 놀라 어색한 반응을 보이며 인사를 건네자.
“그런데 이런 곳엔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예? 아, 저… 그게… 그러니까…. 누,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고 해야… 하나…?”
당황한 상태에서 들어 온 질문에 어리숙하게 말을 더듬으며 답하자.
“눈을 떠보니? 그건 참 예매한 표현이네요.”
“그, 그렇지…. 하지만… 정말 기억이 안 나…. 내가 왜 여기에 온 건지….”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늘 보던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새하얀 방이 아닌 옅긴 하지만 푸른 빛을 띠고 있는 하늘과 모래같이 어색하고 낯선 풍경만이 펼쳐진 이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모든 게 너무 오랜만이면서도 또 낯설기만 한 소녀는 자신이 왜 이곳으로 오게 된 건지도 알지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실험의 실험체로 살아온 그녀가 갑작스럽게 얻게 된 자유.
분명 바라던 것을 얻어 기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행복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소녀를 조여오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이름 모를 방랑자 언니.”
“……으응? 저기 루시… 라고 했지? 미안한데 그렇게는 부르지 말아줄레.”
“네? 하지만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셔서 이렇게라도 부를 수밖에 없는데요.”
자신을 부르는 루시의 표현에 어색함과 함께 오글거리는 감각에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 하자.
이름을 몰라서라는 이유로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는 말에 이해가 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부른 적도 불려본 적도 없던 자신의 이름을 오래간만에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 이름은… 가연, 가연이라고 해.”
--------------------------------------------------------
내일 애리 해결사 승급 기대합니다.
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9화 리스크 있는 물건 [2]
[슬비/은하] 밤하늘에 별 [1]
레버넌터리 - 죽음에서 돌아 온 소녀 [갯바위 마을 - 1.]
조커에게 축하받은 괴도의 생일 [2]
[애리 출시 축하+침식의 계승자 공지] From Successor, To Devilish. [4]
-
대표 캐릭터 선택 설정
캐릭터가 없습니다. 캐릭터를 생성해주세요.
잠깐! 게임에 접속하여 아이템을 지급 받을 캐릭터를 생성한 후, 참여해 주세요.
쿠폰종류 선택하기
-- 쿠폰을 선택해주세요 --
쿠폰 번호 입력하기
아이템을 받을 캐릭터를 선택하고, 확인 버튼 누르기
캐릭터를 선택해 주세요.
{{ GetLengthByReCommentTextareaValue }}/200
댓글 {{ GetReCommentTotalRowCou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