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서울지부 에픽 스토리 소재 차용
꿈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가설이 있어.
그렇습니까?
정확히는 ‘집단 무의식’이라고, 칼 융이라고 하는 정신의학자가 주장한 건데…….
…….
……요약하자면 무의식의 가장 깊은 영역에 개인을 넘는 집단, 민족, 인류 같은 보편적인 가치관이 있다는 소리야.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 있다는 소리지. 이번 릴림 사태로 인해 우리가 꿈을 통해 다른 이들을 꿈속에서 만난 건 기억하고 있지?
네, 덕분에 밤에 잔다고 해도 자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지만요.
인류에게 있어 ‘꿈’이라고 하는 건 무의식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어떻게 우리가 전원 꿈속에서 만나게 되고, 그 꿈속에서 만난 릴림이라는 존재가 실제화가 되었는지 아직도 의문점인 부분이잖아. 아무리 위상력이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초능력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말이야. 그런데 방금 내가 말한 저, 꿈속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과 집단 무의식이 비슷한 감이 있지 않아, 파트너?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집단 무의식이라고 함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라고 하고, 우리가 겪은 꿈속 세계가 전부 사실이라고 한다면 애리 씨의 꿈과 꿈은 서로 이어져있다는 가설도 곧 사실이 되고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오래 전에 대두된 집단 무의식에서 말한 것이 사실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꿈속의 세계가 아닐까 한다는……어떤 아마추어가 작성한 논문을 보고 있는 중이야.
선배는 그 논문을 어떻게 보십니까?
일리는 있지만 이런 건 유니온 내의 보고서에나 어울리는 가설이야. 뭐, 우리가 보기엔 가설이 아닌 정확한 사실이긴 하다만, 릴림 사태 때 꿈속 미궁을 전전하지 않은 자들이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거야.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꿈이 이어져 있다고 한다면, 꼭 릴림 토벌을 위한 수면유도장치가 없어도, 아주 개인적으로, 아주 사적인 이유로 남의 꿈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요? 만약 꿈속에서 그 꿈속의 주인을 조우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꿈이구나, 하고 그냥 치부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내가 살던 고향에 이런 설화가 있어. 꿈속으로의 초대,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아니요, 들어본 적 없습니다.
우리 호기심 많은 파트너를 위해 설명해주지.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는 해당 꿈속의 주인이 그 꿈으로 초대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야.
앞선 논문 설명에 비해 상당히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네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 구담으로 전해지던 이야기인데, 논문처럼 어려우면 잘 전래가 되겠냐고.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초대를 해야만 하고, 그 초대를 받아들여야만 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는 거였군.
무엇이 말입니까, 선배?
꿈에는 초대받은 자만 들어올 수 있다는 거…….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과 결합해본다면, ‘초대’에 응해야만 자신의 꿈속에 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개개인의 꿈이라고 하는 공간이 그 개인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공간이기에 꼭 ‘초대’라고 하는 시스템을 넣은 걸 수도 있다는 거군. 아니, 인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초대’라고 하는 법칙을 정한 거야. 그만큼 개인이 가지고 있는 꿈이라고 함은 아주 소중한 테리터리(territory : 세력권)일 테니까.
그건 선배가 억측을 하시는 걸 지도요. 하지만 제법 흥미로운 소리입니다.
생각해 봐, 파트너의 무의식에서 누군가의 농간으로 ‘당신은 볼프강 슈나이더를 끔찍이도 사랑한다’를 각인시키면 파트너는 파트너의 진짜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게도 만드는, 그런 거라고.
무슨 싸구려 최면입니까? 그런 요사스러운 기술에 관심이 제법 많으시군요, 선배. 게다가 비유도 선배의 사심이 한가득입니다. 불경하고 불손합니다.
아니, 잠깐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왜 그렇게 깐깐하게 굴어!
아무튼 선배의 그 가설 또한 저한테는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게 더 큰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만.
난 솔직히 지금 내가 말한 거 학술지에 실으면 유명해질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는데?
방금 전까지 아직 저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진실 겸 지나칠 정도로 급진적인 학설이라고 투덜거리는 선배를 본 것 같습니다만.
에이, 파트너……. 이럴 때는 그저 맞장구만 쳐줘도 된다고.
말마따나 선배의 말처럼 유니온 상부에 올릴 보고서에 적어두면 되겠네요.
가끔 보면 파트너는 매정할 때가 있단 말이지.
제가요? 선배한테만 그런 겁니다.
그래그래, 특별 취급인 건 고마운데 좀 상냥한 방향으로 특별 취급해주면 안 될까? 이해는 하지만 가끔 가다가는 상처를 받아서 말이야.
흠……. 특별 취급이라고 한다면, 좋아요. 오늘 밤 제 꿈속으로 선배를 초대하도록 할게요.
뭐야, 뭔가 아직도 작심하고 나를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선배가 말했잖아요. 선배의 고향에는 초대를 해야만 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저도 하는 겁니다.
하하, 이것 참 감사하군요. 파이 윈체스터 요원의 꿈속에 처음으로 가게 되는 손님이 제가 될 줄이야. 이거 가문의 영광이기까지 갈 것 같습니다.
선배야말로 저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선배부터 그 빈정거리는 말투 좀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제 나름대로 선배가 원하시는 대로 선배에게 아주 상냥하게 특별 취급해준 겁니다.
그래그래, 고맙다, 고마워……. 그럼 오늘밤 꿈속에서 보자고, 파트너.
네, 성심성의껏 선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렇게 정작 자기가 초대해놓았으면서 오늘밤에 파트너가 꿈을 안 꾸는 건 아니겠지?
선브애애애…….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검 뽑지 말라고!
회상 끝, 바로 종료.
어쩐지 꿈속이라 그런지 한껏 오랫동안 대화했다고 느낀 것이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 꿈속이라 이게 물리적으로 맞는지는 차치하더라도 – 사이에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볼프강은 허탈하게 웃었다.
……분명 오늘 오후에 파트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다만.
……진짜였잖아?! 이 꿈속 초대라고 하는 거!
볼프강 슈나이더는 자기가 내뱉은 말이 전부 사실로 드러나는 이 상황에 제때제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볼프강도 그렇고, 파이도 그랬겠지만 이 초대라고 하는 것을 반쯤은 믿기지 않아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대충 그때의 뉘앙스 또한 개그 콤비가 서로 만담 개그를 하는 것과 같은 거였다.
그래도 이렇게 모처럼 초대를 받았으니 예의를 – 꿈속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뭔지는 모르겠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 받아들여서…….
……잠깐만, 그러고 보니 파트너의 모습이 보이질 않네?
볼프강은 설마 자신이 또 농담 삼아 던졌던 말 - ‘……이렇게 정작 자기가 초대해놓았으면서 오늘밤에 파트너가 꿈을 안 꾸는 건 아니겠지?’ - 이 현실이 되었나 싶었다.
그런데 보통 그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직전에 한 말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이게 파이의 꿈속 안이라는 걸 볼프강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볼프강이 볼프강의 꿈속에만 있는 것인데 제멋대로 파이의 꿈속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볼프강은 여기가 당연히 파이의 꿈속이라고 생각했다. 볼프강도 사람이라서 꿈을 꾼 적은 당연히 있었다. 아예 없진 않았다. 그 중에는 이번 꿈과 같은 자각몽도 있었더랬다. 그리고 꿈의 횟수가 24년을 살았던 만큼 겹겹이 쌓이고 그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매번 달랐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사위(四圍)에 얼음 기둥이 솟아나 있고 눈보라까지 휘몰아치는 얼음 들판 위에 서 있는 꿈을 꾼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눈보라가 갑자기 잦아들었을 때야 볼프강은 자신의 주변에 그저 무수히 많은 솟아있는 얼음 기둥이 그냥 단순한 얼음 기둥이 아닌 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조각상이었다. 눈보라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면서 그저 단순히 우뚝 솟아 있는 얼음기둥으로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이라는 걸 알아버렸을 때, 또 한 번 볼프강은 경악했다.
지금 볼프강의 사방에 우뚝 솟아 있는 얼음 조각상들은 전부 다 한 인물을 본뜨고 있었다.
볼프강은 지금 자신의 주변에 수백, 수천의 파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 하필 얼음이라는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 표현력과 생동감은 지나칠 정도로 완벽해서 그냥 100%의 얼음만으로 이루어진 파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 볼프강은 자신의 성벽(性癖)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열렬히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렇게 수백, 수천, 수만의 조각상을 마음 한 구석에서 만들어낼 정도로 **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볼프강이 알고 있는 파이의 모습은 사냥터지기의 신규 교사로 들어오고 난 이후의 모습들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조각상들 중에는 유독 키가 작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있었다. 이 유독 키가 작은 조각상들은 무엇일까, 라고 하기에는 거기에 있는 얼굴이 파이 그 자체라서 파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본 딴 조각상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파트너의 얼굴이라니, 귀하디 귀한, 아 이게 아니지.
아무튼 그래서! 볼프강은 여기가 자신의 꿈속이 아닌 – 자신의 꿈속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볼프강은 자신이 정말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인물로 본인을 여기며 본인을 안 그래도 그런데 더 끝없이 자학할 뻔 했다 – 파이의 꿈속이라고 생각했다. 파트너의 꿈속에 이런 풍경이 있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되지만……사실 파트너는 굉장한 나르시스트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자학하는 것보단 오히려 이런 나르시즘 같은 요소가 더 나을 터이니…….
……는 개뿔. 볼프강이 아는 파이도 이러지는 않았다. 그래서 볼프강은 또 수 초 만에 고민에 휩싸였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야! 파이의 꿈속이겠지, 그녀한테 오늘 자신의 꿈속으로 오라는 정식적인 초대를 받았으니. 그렇다, 여기는 파이의 꿈속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볼프강이 아는 겸허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파트너는 무의식(≒꿈속) 중에 이런 지나칠 정도의 나르시즘을 가질 여자는 또 아니었다. 그렇다고 볼프강 본인의 꿈속에 사실 갇혀 있다고 하기에는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아, 혹시 정작 꿈속의 주인인 파이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건 본인도 자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실 막상 본인도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도 은연중에 자신을 이렇게 얼음 조각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꿈속에서라도 볼프강의 얼굴을 미처 볼 수 없어서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자마자 볼프강 이외의 인기척이 무량배수의 파이 조각상 사이에서 느껴졌다.
‘드디어 주인공 등장인가.’
라고 볼프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안도를 느꼈다. 이 미치도록 많은 파이들 사이에서 사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 말 할 대상도 없었지만! - 서서히 위축되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던 얼음 들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잠깐만. 꿈속인데 이렇게 춥다고?
그리고 또, 또, 또!!! 볼프강은 여기서 한 세 번째쯤의 경악을 하게 된다.
볼프강은 드디어 나타나준 자신 이외의 인영의 정체가 당연히 파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작자는 파이였지만 파이가 아닌 자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겉모습은 파이였으나 그 알맹이는 파이가 아닌 자였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파이의 모습으로 의태한 자였다.
그 파이를 닮은 자가 볼프강을 인지하자 눈을 크게 떴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인지할 수 없는 목소리가 꿈속인데도 볼프강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당신.”
**, 저 의태하고 있는 목소리 또한 파이의 목소리다.
볼프강은 볼프강 나름대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분명 여기는 파이의 꿈속이고 – 자신은 정식으로 파트너에게 초대를 받았으니 – 그럴 터인데, 파이의 모습을 한 파이가 아닌 존재가 나타났다는 건…….
바로 정답이 귀결된다. 그리고 이 요상한 취미를 가진 인물의 정체도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파이가 들고 있는 사검의 본래 주인. 차원종들은 그를 보통 ‘극권의 군주’라 부르며 칭송했다.
볼프강이 한숨을 쉬었다. 극권의 군주다운 얼음을 다루는 기술이라고나 할까, 아니 그전에 이 말부터 해야 했다.
볼프강은 자신의 연인의 모습을 제멋대로 이렇게나 많이 조각한 심술꾸러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취미가 상당히 고약하시네.”
“-당신,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지?”
그러거나 말거나, 극권의 군주는 전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꿈속이라고 불리는 어느 누군가의 무의식 세계. 파이의 꿈속과 이 극권의 군주의 의식은 아주 놀랍게도 이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극권의 군주의 저 반응을 보건대 이어져있기는 하다만, 이렇게 파이가 아닌 전혀 다른 제3자가 개입하는 경우는 이제까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지금 극권의 군주의 꿈속도 ‘초대’와 같은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초대는 파이가 했지만, 초대장의 주소가 조금 잘못 적혀 있어서 다른 존재의 무의식에 스며들게 되었다는 건데.
“-그렇군.”
그리고 이 신에 필적하는 초월적인 존재는 금세 납득했다. 아마 자신과 이어져 있는 파이의 기억을 슬쩍 엿본 걸 수도 있었다.
“-초대라. 이걸 인간들이 해내리라는 생각을 감히 하지도 못했는데. 몽환의 법칙을 어느 사이 터득하고 있었다니. 몽환의 군주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해. 아니, 몽환의 군주가 개입을 하였기에 인류는 자연히 꿈의 법칙을 깨우치게 된 건가……?”
그리고 그는 마저 이어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피차 서로가 원하는 건 이루지 못할 모양이군.”
“저기……. 나 그냥 이 꿈에서 깨면 안 돼?”
“타인의 꿈속에 있다는 것은 그 해당되는 타인의 지배를 받는 것과 같은 것. 나의 소란스럽고 작은 주인이 깨어날 때까지 넌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 참 최악이군.”
“-나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도 고요한 눈보라 속에서 홀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만.”
“이것들, 다 당신이 한 건가?”
이것들. 자신의 조각상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는 볼프강한테 그 군주는 이마를 찌푸렸지만 이렇게 반문했다.
“-아름답지 않나?”
“이 말을 아까도 했던 거 같은데, 고약한 취미라고 말했을 텐데?”
“-그것은 네가 아직 그녀를 소유하지 못해서 그래.”
집착 아니면 광기……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검은 절대적으로 파이와 거리를 두는 것을 원치 않아한다. 그것이 해당 사검에 든 원래 주인의 절대적인 뜻이라고 했다. 고작 사검에 그 주인의 아주 작은 조각 같은 의식이 잠들어있다고 한들, 이렇게 인간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정교하고, 그리고 인간 한 명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광대한.
그는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파이의 조각상을 어루만졌다. 어째선지 자신의 눈을 뽑아버리려고 하는 듯한 그 과격한 제스처의 조각상을 나중에 가서는 끌어안으며 그가 볼프강에게 질문하길.
“-여기에 있는 그녀의 조각상이 무엇을 뜻하는 줄 아나?”
“…….”
“-내가 ‘공유’한 그녀의 모든 ‘시간’일세.”
나는 모든 것에서부터 너와 달리 확실한 우위에 위치해 있다……. 이걸 굳이 이 하찮을 뿐인 – 검은 책의 선택을 받았다고는 하나 – 인간에게 말하고자 하는 걸 보면……. 조용하고 사색하는 걸 즐긴다는 파이의 표현과 전혀 다른 행동양상이다.
그래서 볼프강은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우쭐해질 수 있었다.
“그래, 네가 나보다 위대한 존재인 건 알겠어. 하지만 이거 하나는 단언할 수 있어.”
“-무엇인지 들어**, 소란스러운 작자야.”
“……파트너는 여길 들어서는 순간 죄다 이 조각상을 부수고 다닐 거야.”
볼프강의 호언장담에 극권의 군주의 눈매가 무섭게 매서워졌다.
“역시, 맞았군. 아직 이거 파트너는 모르나 **?”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에 제멋대로 들어온 작자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나 보군.”
“완성시키지 마. 완성시켜봤자 여기서 얼마나 더 파트너의 조각이 많아질는지 몰라.”
그리고 분명 극도로 혐오하겠지. 난 분명히 경고했다. 볼프강의 되지도 않는 자뻑에 극권의 군주의 입술이 심각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비틀어졌다.
“-거슬려.”
그 말 한 마디에 볼프강은 잠에서, 파이의 꿈속에서 깨어났다. 적정 수면시간은 지킨 거 같은데, 푹 잔 거 같지도 않게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이것 또한 기분 탓이겠지만 조금은 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결국 꿈속 초대라는 건 그럴싸한 재밌는 설화였을 뿐이었다는 파이의 말에 볼프강은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파이는 모르는 것이 나았다. 그 군주의 미치도록 시린 광기의 일면을 들춘다는 건 말이다…….
……역시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더 했다가는 볼프강 자신도 파이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사랑하게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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