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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밤하늘 별과 질투투성이 벚꽃

작성자
firsteve
캐릭터
서유리
등급
태스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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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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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뒤에야 깨닫는 것이 있다.
 
그녀는 그 말이 제일 싫었다.
 
정말로 잃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깨닫는 그것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알기에 그녀 또한 그 말이 너무나도 싫었다.
 
“슬비야? 왜 그래?”
 
옆에서 세하가 걱정되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선을 넘으면서 힘든 고비를 함께 넘기면서 싹튼 감정은 어느새 그를 그녀의 남자친구로서 있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아니야. 미안해….아까 전에 본 영화의 말이 조금 인상에 남았나봐….”
 
“영화 마음에 안 들었어? 애써 고른 건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말해버린 슬비가 세하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표정이 잠깐 스쳤지만 그 후 곧바로 미안하다는 듯 세하가 그녀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또 내가 잘못 생각했나보네.”
 
“그런 게 아니라….하아…됐어…..나 집에 갈게. 나 이대로 하면 화만 낼 것 같아…..다음에 다시 데이트 하자.”
 
세하가 뒤에서 그녀를 부르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돌아**도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
 
정말로 싫었다.
 
자기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자신의 성격이.
 
바보 같이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그의 마음이.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분수도 모르고 화내는 자신이.
 
그녀는 너무나도 싫었다.
 
바보 같아….나 진짜 뭐하는 거야….모처럼의 데이트였는데….
 
슬비가 애써 예쁘게 정돈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사귄 지 3달이 가까이 되었지만 데이트 할 시간이 빠듯한 그들이었기에 오랜만에 하게 된 데이트였다.
 
그러나 오늘도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게 그녀의 마음에 크게 남았다.
 
미안하다고 하고….말해두고 올 걸….
 
가슴이 괴로웠다.
 
잃기 무서워서 다그치기만 하는 자신의 마음이 원망스러웠다.
 
내일……만나서 이야기하자. 오해는…풀어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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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학교에 도착한 그녀는 언제나처럼 세하를 찾았지만 있어야 할 세하가 보이지 않았다.
 
세하가….없네….아직 안 왔나…..
 
세하가 자리에 없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었다.
 
어지간한 경우에는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석봉이와 수다를 떨기에 그가 자리를 비운다는 건 정말로 드문 경우였다.
 
“어라? 슬비야. 세하 아까 전에 나갔는데? 둘이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어디로 갔냐는 슬비의 물음에 유리가 복도로 나가는 것까지는 봤다고 하자, 슬비가 곧바로 복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중앙 계단까지 걸어갔을까, 윗층에서 내려오는 세하와 마주친 슬비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세하야. 어디 갔다 오는 거야?교실에 가니까 없던데…”
 
“…..일일이 보고할 필요….없지 않아?”
 
“어어?”
 
평소보다 차가운 그의 말투에 슬비가 당황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슨 생각을 하든 너는 상관없잖아. 너는 언제나 네가 중요하지. 내 생각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아…..그…..미안해……내가 어제는 좀 심했지…..미안해….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됐어….넌 언제나 그런 식이잖아. 네가 화내고 나는 사과하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면 나는 용서해주고. 그런 식으로 3달이잖아.”
 
“미안하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비꼬는데? 사람이 사과를 했으면 받아줘. 내가 무슨 큰 잘못했어?”
 
그녀의 말에 세하가 한숨을 쉬고는 그녀를 지나갔다.
 
그런 그를 그녀가 확 돌려세웠다.
 
“어디 가!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왜? 너는 언제나 네 말만 하고 가는데 왜 나는 언제나 네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 해?”
 
“그…..그건…..우리는……사귀는 사이니까…..”
 
왜 사귀는 사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가 힘든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무언가 자신의 속에서 그것에 대한 다른 감정을 가진 것 같이 느껴졌다.
 
사귀는 사이? 아니.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했으면.....넌 어제 그렇게 안 했어.
 
세하가 싸늘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그녀가 움찔했다.
 
이토록 차갑게 그녀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지금 뱉어진 그의 말은 차가웠다.
 
“….됐어. 마음대로 해. 더 이상은…..나도 힘들어.”
 
세하가 그녀를 스쳐 지나가자, 그녀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많던 소리가 그 많던 냄새들이 그 많던 감각들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정적에 던져진 것 마냥 공허해졌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없었던 불안감이 그녀를 감쌌다.
 
생각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저 그녀는 복도를 달려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자…잠깐만 세하야….이야기….이야기 좀 하자…응?”
 
“…..난 할 이야기 없어.”
 
세하가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떼어놓고는 자기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내….내가 뭘 잘못했는데? 말해줘….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면 고칠게. 그러니까 이야기 좀….”
 
“더 이상 할 이야기 없다고 했지.”
 
그 때 그녀는 깨달았다.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을.
 
그가 내뱉을 말을.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그 말을.
 
그녀는 깨닫고 말았다.
 
“….이슬비. 우리….그만하자.”
 
그 순간…..
 
그녀의 세상이 붕괴했다.
 
세상이 색을 잃어버렸다.
 
“그….그런 거 함부러 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 세하야….그런 거…..함부러 이야기 하면….안되는 거잖아…..”
 
“어제 네가 간 후로 고민 많이 했어. 하지만…..이게 맞겠더라고. 나는 너랑 안 맞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는…..이렇게 많이 싸우진 않았을 테니까…..”
 
“아니야…아니야…..세하야….”
 
슬비가 그의 팔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가 놓으려고 한다는 사실에 그녀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고동쳤다.
 
돌아와달라고. 제발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그렇게 그에게 말해보아도 그의 눈은 이미 차가웠다.
 
어제까지 따뜻했던 그의 눈이 아니었다.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그녀를 죄어왔다.
 
“……애들한테는 내가 말할게. 넌 언제나처럼 그렇게 있어.”
 
세하가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그가 걸어가버리자,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이 색을 잃었다.
 
심장이 부서졌다.
 
사랑이 무너졌다.
 
세하가 떠났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물들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된 건지 조차 몰라서 돌아와달라고 말도 못하는 자신이 미워서.
 
어디서부터 그를 힘들게 했던 건지 조차 몰라서 미안하다고 말 못하는 자신이 미워서.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만을 밀어붙여온 자신이 미워서.
 
그녀의 눈물이 복도를 적셨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은 유리가 서둘러 뛰어나와 그녀를 달랬다.
 
“슬비야, 왜 그래?! 울지마….뚝 하자, 뚝?”
 
“유리야…..유리야아아….”
 
슬비가 유리에게 안겨 울기 시작하자, 유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를 토닥였다.
 
아까 세하도 표정이 안 좋던데…..둘이 싸우기라도 한 건가….아니면…..설마…..
 
유리가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슬비의 모습에, 최악의 상상을 하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그저 싸운 거겠지…..그렇겠지….세하가…..슬비한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하지만 정말로….세하가 그런 말을 했다면…..두 사람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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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슬비의 자취방에 온 유리가 그녀를 앉혀놓고는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래서….세하가…..헤어지자고….”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그녀의 모습에, 유리가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 한 번쯤 세하가 폭발할 거라고는 그녀 또한 예상했었다.
 
옆에서 봐도 너무나도 일방적인 관계에 유리 또한 걱정이 되긴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식으로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나 어떡해…..세하가 헤어지자고 했어……다른 사람도 아닌 세하가…..나한테….”
 
잔혹한 현실에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리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그들의 모습을 꾸짖고 세하한테 달려가라고 말할지.
 
아니면 두 사람을 위해 이대로 놔두는 게 좋은 건지.
 
어느 쪽도 타당했다.
 
어느 쪽도 정답이었다.
 
다만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 힘들었다.
 
어떤 답을 내리는 게 두 사람을 위한 것일까 고민하던 유리가 그녀의 탁상 위에 올려진 달력을 보았다.
 
“슬비야…..저 달력에 동그라미 크게 그려진 건 뭐야?”

“동그라미가 크게 그려진 거…..저거 어제 데이트…..그리고 저 색깔이면 기념일인…..데…..”
 
슬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리야….나…..나 어떡해…..어제……나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말이야? 제대로 설명을 해봐. 무슨 일인데?”

“아아….나 진짜 어떡해……틀렸어…..세하가 질리는 것도 이해가 됐어….”
 
“그러니까 뭐냐고 대체! 말을 해!”
 
유리의 말에 슬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어제……우리 100일 기념일이었어….”
 
“……뭐?”

“어제…….어제가 100일 기념일이었다고…..처음 사귈 때부터……100일 기념일만큼은 꼭 같이 있어주겠다고…..그렇게 말했는데…..그 말 듣고 세하가…..정말 좋아했는데….”
 
그제서야 그의 눈빛이 이해가 갔다.
 
더 이상 상처 받기 싫다고 말하던 그 눈이.
 
왜 헤어지자고 말한 그가 더 힘들어했는지.
 
왜 그렇게나 매정할 정도로 차가운 말을 던졌는지.
 
왜 나는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깨닫는 걸까.
 
슬비의 머릿속에 그와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한 순간도 그가 자신에게 화낸 적은 없었다.
 
언제나 그는 친절했고, 다정했고,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반면에 자신의 기억은 어리광 부리고, 제멋대로 굴고, 투정을 부렸다.
 
한 번도 자신은 그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적 없었다.
 
고백도 좋아한다는 말도, 데이트도 모두 그가 했다.
 
자신은 한 번도 먼저 다가간 적 없는 주제에, 언제나 먼저 다가오는 그를 당연하게 여겼다.
 
이야기 했어야 했다.
 
솔직하게 감정을, 미안하는 말을, 좋아하는 말을.
 
그에게 전했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입 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자신을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좋아한다 말해주는 세하의 마음을 계속 원했다.
 
사실은 그도, 아니, 그라면 더더욱 그런 사랑을 더 원하는 사람일텐데.
 
사랑에 목마른 건 그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첫사랑인 건 그도 똑같았을텐데.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옷처럼,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자리잡았다.
 
다 내 잘못이었어. 모든 게…..내 잘못이었어….
 
그러나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없었다.
 
이미 그 사람은 자신 때문에 상처를 받고 사라져버렸다.
 
그게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했다.
 
네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해.
 
네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한 번도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해.
 
한 번도 제대로 대답 못해줘서 미안해.
 
너에 대한 내 태도 모든 것이 미안해.
 
닿지 않는, 마음 속에서 우러난 진짜 감정들이 쏟아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리가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려 눈을 마주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하다니….어떻게 할 것도 없이 끝났잖아….세하가 헤어지자고 했잖아! 더 이상 방법이 없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잘못했잖아. 세하가 돌아올 만한 이유가 없잖아! 더 이상 나한테 좋은 감정도 없을 거야…..그래도….아주 잠깐이라도 행복했던 기억이라도…..가지고 있게 해줘…..나쁜 기억만 남겨주기 싫으니까…아니….차라리 나 같은 거 한테 질려버리게 만들어서 나를 버리게 만들어버릴래….그러면 세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짝.
 
뺨을 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돌아갔다.
 
“……적당히 해….적당히 해, 이 바보야! 너 바보야? 바보인 나도 아는 걸 왜 너는 몰라? 세하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걸로 끝이야?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있는 감정이야? 너….세하가 뭐하고 다녔는지 모르지? 너랑 헤어지겠다고 말한 뒤, 오늘 세하 무슨 일 있었는지 아냐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슬비가 압도당한 듯 고개를 젓자, 유리가 입을 열었다.
 
“…..방금 너 울고 있을 때 문자 왔어. 세하…..지금 병원이래.”
 
“병원…..?왜? 세하 어디 다쳤어? 많이 다친 거야?!대체 왜….”
 
“너 때문이야. 네가 오늘 빠진다고 하고 구역에 안 가서 세하가 대신 갔다가 폭발에 휩쓸렸어. 갈비뼈 2개 금이 갔다고 해.”
 
“안돼….안돼!!”
 
슬비가 황급히 옷을 입고 나가려고 하자, 유리가 그녀를 불러세운다.
 
가서 뭐할 생각인데.
 
“…..얼굴 보고 올 거야.”
 
“얼굴 보고 그걸로 끝이야?”
 
유리의 말에 슬비의 주먹이 떨리기 시작한다.
 
“…..슬비야. 내가 하나만 말할게. 세하가 너랑 헤어졌다고 말해줄 때….나한테 한 말이 있었어.”
 
슬비를 부탁해. 나한테는….너무 과분했나봐.
 
“세하는…..한 번도 너를 미워한 적 없었어. 나쁜 척 하고 해도…..세하는 바보라서 너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고. 자기가 제일 상처 받았으면서 자기가 아프게 만들었다고 자책하는 그런 바보라고. 그런 세하한테…..넌 가서 뭐라고 말한 건데?”
 
그녀의 말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사과를 하고 돌아와달라고 말해야 한다는 건 그녀가 제일 잘 안다.
 
그러나….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돌릴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모두 변명에, 제 좋은 빈말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그의 마음에 닿을 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가야 하는 건 맞는데….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 말은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아니야?”
 
“아니야! 이 마음은….진짜야…..돌아와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미안하다는 마음도, 변명 같은 말도 전부 진짜야…..나는…..!”
 
슬비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나는 세하를 좋아한단 말이야!”
 
“….그럼 빨리 가. 좀 있으면 세하 퇴원하고 나올 시간이니까.”
 
유리가 말을 툭 던지면서 문을 열었다.
 
“….네가 세하랑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확실하게 끝을 맺어. 그래야….서로 편하니까.”
 
“유리야…..난…..”
 
“….빨리 가. 또 기회를 놓치기 싫으면.”
 
그녀의 말에 슬비가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문 앞에서 유리를 돌아봤다.
 
“….고마워, 유리야. 네가 있어서…..참 다행이야.”
 
슬비가 복도로 뛰어나가자,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 면까지 닮았네, 너희 둘.”
 
그러면서 그녀가 자신의 지갑에 꽂혀진 사진 한 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친구인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슬비야. 나머지는…..너희 두 사람의 몫이야. 힘내….내 친구….그리고….내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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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분이나 달려온 걸까.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을 놓고 나온 탓에 평소에도 잘 쓰지 않는 다리로 그녀는 열심히 뛰었다.
 
여기서 멈춰버리면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춰버리면 두 번 다시 뛰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녀는 귓가를 스치는 빗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달려만 갔다.
 
그 때, 그녀의 발이 움푹 파인 곳에 걸려, 그대로 고여있던 물웅덩이에 넘어져버렸다.
 
다리가 멈추면서 지금까지 뛰어온 아픔과 부딪혀서 생긴 아픔이 동시에 몰려왔다.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육체적인 아픔보다는 자신이 지금까지 그에게 준 아픔이 고스란히 되돌아온 것 같이 마음이 아파왔다.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 해야 해, 슬비야. 아픈 건 참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니까.
 
왜…..하필이면 이럴 때 생각나는 거야…..세하가….나한테 해준 그 말이…..
 
멈춰버린 시간이, 스스로 망가뜨린 관계에 대한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쏟아져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할 걸.
 
좋아한다고 하루라도 빨리 말해볼 걸.
 
미안하다고 하루라도 빨리 말해볼 걸.
 
하루라도 빨리 내 마음을 보여줄 걸.
 
하루라도 빨리 꼬여버린 매듭을 풀어버릴걸.
 
정돈되지 않은 마음 깊은 곳의 감정들이 올라와 목에서 메아리 쳤다.
 
확실히 매듭짓고 와.
 
빗소리에 겹쳐 자신을 밀어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작한 것도, 끝내는 것도, 모두 자신의 일이라고 친구는 말했다.
 
매듭을 짓자고. 그 끝을 비겁하게 끝내고 싶진 않다고.
 
그녀는 억지로 다리에 힘을 줘서 일어났다.
 
욱신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다시금 그녀는 그가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쉴 새 없이 그녀의 얼굴에 빗물이 쏟아졌다.
 
그런 빗물을 손으로 대충 닦으면서 달리던 그녀가 겨우 병원 로비에 도착해, 환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이름은 없었다.
 
퇴원시간은 자신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
 
대략적으로 물웅덩이에 빠졌을 때쯤이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거기서 망설이지만 않았어도….볼 수 있었는데…..이제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때리는 빗줄기 사이를 달릴 힘도.
 
그의 차가운 눈을 마주할 용기도.
 
자신 손으로 만든 깊은 감정의 골을 돌파할 마음도.
 
모조리 사라졌다.
 
미안해…..미안해 세하야…..정말로 미안해…..
 
듣지 못할 말을 쏟아낸다.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도 좋았다.
 
그저 그녀는 사과를 하고 싶었다.
 
미안했다고. 사랑했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세상에 있는 모든 말을 가져와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떠났다.
 
그의 집에 찾아갈 용기도 이제는 없었다.
 
모든 게 끝이었다.
 
결국 끝내는 것마저 그의 손에 넘겨버렸다.
 
그 생각에 슬비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제대로 사과조차 못한 채 보내버린 첫사랑에.
 
결국 상처 밖에 주지 못한 그에 대한 미안함에.
 
그녀는 결국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때…..
 
여기서 뭐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의 울음이 멈췄다.
 
이제는 나, 환청도 듣는 구나…..
 
슬비가 속으로 바보 같은 자신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그녀를 부른 목소리는 그녀를 다시 불렀다.
 
“너 다리 왜 이래? 옷은 또 왜 이렇고? 어디서 굴렀어?”
 
“세하….야?”
 
분명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환자 명단에 분명히 이름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분명히 자신 앞에 있었다.
 
차가운 눈빛이 아닌 걱정하는 눈빛을 보이며.
 
심장을 파고 드는 얼음 같은 말이 아니라 심장을 녹이는 따뜻한 말투로.
 
이세하는 분명하게 이슬비의 앞에 있었다.
 
“너…..울어?”
 
들려온 말에 그녀가 울컥했다.
 
뭐라고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던 것은 이미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정말 그가 반응 조차 못할 속도로 그에게 안겼다.
 
“세하야….세하야….”
 
언어가 퇴화된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오는 말은 그의 이름뿐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아픈 것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색이 사라진 세상에 유일하게 색을 가진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저 안긴 채 울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세하가 한숨을 쉬며 그녀를 토닥였다.
 
“일단 일어나. 집에 가서 이야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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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서자, 그는 곧바로 집 안의 난방을 가동시키고는 수건을 가져와 그녀의 머리를 털었다.
 
“비 다 맞았네. 우산 못 써? 왜 이렇게 바보 같이 와?”
 
“비 같은 거….신경 쓸 겨를 없었어…”
 
“평소에는 별별 것에 신경 다 쓰고 다니더니……잠깐만 거실 소파에 있어봐. 맞는 옷이 있는지 모르겠다….”
 
세하가 옷을 찾으러 방에 들어가자, 슬비가 소파에 있던 담요를 몸을 감쌌다.
 
담요에서 나는 그의 향기에 슬비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슬비야. 들어가서 이거 입고 나와. 엄마가 너한테 주라고 나한테 던져주고 간 건데 맞는 지 모르겠다.”
 
세하가 내민 펭귄 잠옷에 슬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돌아왔다.
 
거실로 돌아오자, 세하가 구급상자에서 소독약과 연고를 찾고 있었다.
 
“다 입었어? 옷은 어때?”
 
“….괜찮아. 맞는 것 같아.”
 
“하여간에 우리 엄마….언제 네 사이즈를 알아낸 건지…..어쨌든, 여기 앉아서 바지 걷어. 약 바르게.”
 
그의 말에 순순히 소파에 앉아, 다리를 걷자, 세하가 소독약으로 상처를 소독했다.
 
따끔거리는 소독약의 느낌에 슬비가 몸을 움찔하자, 세하가 한숨을 쉬었다.
 
“뭐하다가 구른 거야? 나 없는 사이에 테러리스트라도 잡았어?”
 
“…..”
 
“하아….됐다….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솔직하게 대답 안 할 거라고 예상했어.”
 
세하가 툴툴거리면서 그녀의 다친 무릎에 연고와 반창고를 붙여준 뒤 상자를 덮고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밖에 비 많이 오니까 자고 가. 엄마 방에서 자던지 아니면 내 방에서 자던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눈을 감는 세하의 모습에, 슬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하야.”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나 피곤해.”
 
퉁명스럽게 되돌아오는 말에, 슬비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나 오늘 피곤해.
 
그녀가 피곤할 때 그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언제나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를 그녀가 막을 때마다 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가슴이 욱신거렸다.
 
자신이 불과 3개월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에게 준 상처가 말 끝마다 느껴져 왔다.
 
“…..그래도 들어줘. 할 말 있어.”
 
그러나 그녀는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오늘이 아니라면 영영 대답할 수 없다고.
 
다시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계속 재촉했다.
 
대답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세하의 모습에 슬비가 입을 열었다.
 
세하야. 좋아해.
 
단 여섯 글자.
 
포문을 연 여섯 글자에 세하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하지 마.”
 
“….끝난 이야기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네가 믿어주든 안 믿어주든 그건 상관없어. 나는 그저…..너한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내 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건지, 아니면 마지막 남은 좋았던 기억을 믿고 들어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 대화를 끝으로 모든 것을 놓으려고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건 이미 상관이 없었다.
 
차분하게 정리되는 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말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입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 무서웠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준다는 것도, 다 무서운 것 투성이였어. 처음이어서,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진정이 되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고,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해지는 이 감정이 처음이라서 더 그랬어. 그러면서도 너에게 좋아한다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걸 보여주기 싫었어. 나는 치사하고,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고, 너랑 있는 시간은 한 순간도 안 잊고 다 기억할 정도로 좋고, 네가 내게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침대에서 몇 번이고 기억하면서 잠 못 이루고, 애들한테도 자랑하고 싶었어. 하지만…..”
 
슬비의 입이 멈추었다.
 
이 말을 해버리면 정말로 자신의 속을 다 드러내는 것이니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무서웠어. 이렇게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네가 내 마음과 같지 않을까봐…..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너 하나 뿐인데, 너는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해주니까….내가 없어도 너는 잘 살아갈 수 있으니까…..그래서 무서운 마음에 너에게 험한 말을 했어. 나를 더 좋아해달라는 말 대신에 너를 의심하는 듯한 말을 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어. 그런데….하면 할수록 멈출 수가 없었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계속 괴롭히는 것 같았고, 그럴수록 네게 더 많은 확인을 요구했어. 그런 주제에….나는 너와 소중한 기념일 같은 걸 잊고 너에게….그렇게 해버렸어.”
 
울음에 잠겨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목소리를 크게 해, 겨우겨우 말을 이어갔다.
 
“미안해. 너에게 상처 줘서 미안해. 너에게 제대로 말 못해서 미안해. 네게 받은 마음을 소중하게 하지 못해서 미안해. 나 같은 걸 좋아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나 같은 게 첫사랑이 되게 만들어서 미안해. 이렇게 찾아와서 민폐 끼쳐서 미안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듯이 너무나도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그런 와중에도 소파에 묻혀있는 세하의 모습만큼은 분명했다.
 
“미안해….그리고…..정말 거짓말 같고 믿어주지도 않을 걸 알지만….그래도….꼭 이 말만은 해주고 싶었어.”
 
슬비가 퉁퉁 부은 눈으로 그를 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세하야. 세상에서…..제일 좋아해. 내 옆에 있어줘.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제발….내 곁에서 떠나지 마.
 
그녀의 말에 세하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엉망진창인 얼굴로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올려가며 웃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도 아파보였다.
 
그는 저 미소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거울에서 매번 보던 그 미소니까.
 
그녀에게 상처 받고 돌아온 날, 자신이 매번 짓던 미소였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좋아서.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짓던 미소니까.
 
결국 똑같은 것이었다.
 
그도 그녀도 결국 서로를 잃고 나서야 겨우 서로를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부탁할게….한 번만이라도 좋아…..다시 한 번만….내 손을…잡아주면 안돼? 나를…..다시 사랑해주면 안될까?”
 
작은 손이 그에게 뻗어져 왔다.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끌어당겨지는 힘에 그녀의 가벼운 몸이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잠옷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좋아해, 이세하.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너를 좋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게 던진 한 마디는 고요한 정적에 파문을 일으켰다.
 
“…..나도 질투 많아. 네가 다른 남자애들이랑 이야기하면 괜히 트집잡고 싶어. 네가 그 애들한테 웃어주면 그것에 3배 이상은 나한테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예쁜 옷을 입고 온 날이면 온 세상에 다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나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 나도 나쁜 생각 많이 했어. 그러니까….미안해하지마. 슬비야.”
 
그의 팔이 그녀를 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따스한 그의 온기가 그녀의 세상에 색깔이 채워 넣기 시작했다.
 
“…..3000만큼 사랑해. 슬비야.”
 
마지막으로 본 영화의 대사를 인용한 고백에 슬비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3000만큼 사랑해, 세하야.”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 준 그가 너무나도 좋아서.
 
자신의 곁에 남아주겠다고 해준 그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자신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강하게 껴안아주는 그가 너무나도 멋있어서.
 
그 모든 게 이세하여서.
 
그녀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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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irsteve입니다.
 
오랜만에 또 글을 올려보네요.
 
잘 지내셨나요?
 
Black knights 7화 작업 중에, 과제 폭격에, 레포트 폭격에, 퀴즈 폭격에, 난리법석이라서 틈틈이 쓰고 있던 세하 슬비 한 편을 여러분에게 먼저 선보입니다.
 
이번 작품도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일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을까요?
 
늘 쓰면서 어떻게 쓰면 더욱 많은 분들이 즐거워 하실지 고민합니다.
 
제 고민의 결과가 여러분에게 즐거운 한 때를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firsteve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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