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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테스트][부산] 두 번의 휴가

작성자
사랑니
캐릭터
하피
등급
특수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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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9.07.10
  • view4326

-키워드 : #부산 #씨앗호떡

***

-2021년 08월-

쿵..! 쿵!
...으직!
...쿠웅!

어울리지 않는 소음들이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흘렀을 즈음, 남자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색 빛 하늘 아래로 흰 구름이 사그라든다. 허탈한 웃음을 뱉으며 시선을 다시 아래로 향한다.
물감을 발라 찍어 누른듯한 풍경에 방향감마저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현실 감각이 무뎌져 세계에서 조금씩 동떨어지는 기분이 들려하는 즈음..

쿵!!

매서운 소리와 함께 정신은 순식간에 현실 속에 붙들린다. 그와 동시에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온다.

부산광역시.
짜증나리만치 내리쬐는 태양과 청량한 파도가 의외의 조화를 이루는 곳.
날짜까지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 사람으로 붐비어야 할 이 곳은..

쿠웅!!

-"꺄악!!"
-"무모하게 들어가지 마라, 레비아!"

의도치 않은 불청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

[과도한 업무량에 따른 일시적 휴가]

시작은 김유정의 한마디였다.
데이비드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매듭지은 뒤, 김유정은 검은양팀과 늑대개팀의 공동 휴가를 제안했다.
지금까지 기준치 이상의 업무량을 수행해 온 이들에게 합당한 휴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두 팀 모두 거절할 이유따윈 없었다.

첫 합동 휴가에 서로 서먹서먹하던 분위기는 목적지에 관환 주제로 넘어가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누구하나 입을 멈추지 않을 듯 하던 상황은..

-"...부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물의 발언으로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아! 혹시 나타님 그때 일 때문에 그러신건가요?"
어색한 적막을 깨뜨린 것은 작게 손뼉을 치며 입을 연 레비아였다.
-"아항, 그러고보니 나타씨는 모래밭에서 잠들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었죠?"
-"확실히 지금 다시 간다면, 색다른 기분이겠군."
-"나타씨,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었네요?"
뒤를 따르듯 늑대개 대원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타는 검은양과 함께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마치 나타가 중심에 있는 듯한 대화였지만 나타에겐 그들과 겹치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무슨 헛소리들 하는거야?"
이해하지 못할 상황을 물어 뜯으려던 나타의 첫 발언은...

-"그럼 우리도 부산으로 할까?"
-"찬성! 느긋하게 한국을 여행하는건 오랜만이잖아??"
-"미스틸도 부산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뒤를 이은 검은양팀의 찬성 발언들 의해 완전히 묻혀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나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이 결정을 절절하게 후회했다.

***

-"나타씨 덕분에 매우 짜릿한 휴가를 보내는데요~?"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며 하피가 능글맞게 말을 건낸다.
-"시끄러워! 좋다고 떠들어댄건 니들이었잖아!"

의미없는 말다툼이 진동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간만의 휴가에 들뜬 마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히 부숴져버렸다.
난데없는 차원종의 등장과, 그로 인해 패닉에 빠진 사람들 때문에 휴양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탓에 타 클로저들의 지원 역시 지체되었다.
결국 현장에 있던 검은양팀과 늑대개팀이 각각 시민 대피와 차원종 척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실없는 말싸움을 하고 있을 상대가 아니다. 나타, 하피."
꿀렁대는 줄기를 상대하던 티나가 무심하게 내뱉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객기따위가 아니었다. 티나의 걱정대로 확실히 지금까지의 상황은 꽤나 열세였다.
대상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에 다들 쉽사리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꽤나 시간이 흐른 뒤 늑대개는 의외의 공략점을 찾아냈다.

-"역시, 이 차원종은 뭔가 기묘해요!"
-"그렇죠? 뭐랄까 아까부터 자꾸.."
-"멈춘다."
무심하게 대신 대답한 뒤 나타는 쿠크리를 돌려잡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묘한 차원종이었다.
식물형인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랏빛.
끝에서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열려있는 수평 세계에 홀로 우뚝 솟은 기괴한 형체.
갖가지 것들이 모여 부조화를 이루는 차원종이었지만 그중 가장 거슬렸던 것은..

-"또다."

불특정, 불규칙한 주기로 자꾸만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었다.

-'아니, 불규칙은 아닌가'
차마 뱉진 못한 말을 삼키며 나타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지금이에요!"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하피가 외쳤다.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며 나타는 속도를 붙여 차원종에게 접근했다.

멈칫..

얼핏 보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찰나, 그 틈을 늑대들은 놓치지 않고 물어뜯었다.
갖가지 공격들이 물컹한 껍데기를 뚫고 파고들었다.

단잠에라도 빠지듯이, 차원종은 소리없이 고꾸라졌다. 

-"..쯧!" 
짧게 혀를 찼다. 이유없는 찝찝함이 몰려와 골이 아파온다. 등장부터 퇴장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역시나.."
숨을 고르며 하피가 입을 열었다.
-"나타씨도 눈치챘나 보네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나타의 눈칫살은 다른 대원들의 호기어린 관심에 묻혀버렸다.

-"저 차원종, 나타씨가 접근할 때마다 움직임을 멈추더군요."

자신을 향하는 눈빛들에게 짜증어린 눈빛을 돌려주며 나타가 자리를 뜬다.
여지껏과는 다른, 답답했던 싸움이 막을 내렸다.

***

-2020년 08월-

멍하니 앞을 내다본다.
짜증나리만치 내리쬐는 햇빛과 청량한 파도가 합을 이뤄 짜증을 더욱 돋군다.
날짜까지 맞아떨어져 사람들을 긁어모은 이 곳은 몰려든 인파와 소음으로 가득 메워졌다.

부산광역시. 이 얼척없는 장소와 상황은 망할 여자의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긴 말하지 않을게요. 잠깐만 다른 곳으로 떠나 있으세요."
-"..갑자기 무슨 소리요."
뜬금없는 발언에 마땅한 대꾸를 돌려보낸다.
하지만 여자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들으신 그대로에요. 당신네 팀들 모두. 잠시 어디로든 사라져 있으시란 말이에요. 당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요. 괜히 알짱거리면 귀찮아지니 다 함께 어디 휴가라도 다녀오시죠? 사이좋게."
중간중간 고의적으로 말꼬리를 비틀며 여자는 미소 지었다.

-"...미안하지만 그런 모호한 대답만으로 자리를 비울 순 없소. 우리는.."
-"트레이너씨."
말을 자르며 얇은 서류 한 장을 꺼내 살며시 흔들었다.
-"...이건."
-"더 이상 귀찮게 말은 필요없겠죠? 냉큼 사라져주세요. 후훗."

***

-"...킥"

휴가를 떠난 뒤 나온 첫 마디는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하다하다 휴가까지 주물럭 거려지다니, 기가 차는군 아주."

꼰대가 내민 서류에는 대원 수만큼의 티켓이 들어있었다. 애초부터 선택권 따윈 없는 제안이었다.
귀향을 선고받듯 떠밀린 대원들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제각각 흩어졌다. 소속감같은 알량한 감정이 생길만한 시간도, 사건도 일체 없었다.

-"저 나타님..실례가 아니라면 동행을 부탁드려요 될까요?"
차원종 계집만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왔지만
-"쓸데없이 참견말고 내버려 둬."
역시 알량한 간섭이었다.

-"..끝내주는 휴가로군."
무력한 감각에 휩싸여 또 한번 자조적인 웃음을 흘릴 때 즈음...

-"저기요."

난데없이 날아온 물음에 매섭게 뒤를 돌아보았다.
-"깜짝이야.. 왜 이렇게 무섭게 쳐다보세요?"
유독 튀는 보라색 머리카락. 어딘가 동떨어진듯 한 분위기.

-"클로저님, 맞죠?"

첫마디마저 범상치 않은, 이상한 녀석이 서 있었다.

***

풍채, 분위기, 그리고 말투까지.
어딘가 어긋나는 것들끼리 하나하나 모여 의외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물건 쳐다보듯 하지말고 냉큼 꺼지라고."
-"앗.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단지 클로저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빠릿하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이상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물론 길게 이야기 할 마음따위, 이 쪽에겐 조금도 없었다.
속으로 혀를 차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혹시 혼자 오셨나요?"
-"..그래. 그러니까 냉큼 니 무리로 꺼지라고."
짜증스럽게 또 한 마디 뱉었다. 나도 모르게 텀을 둔 것이 걸렸지만 막상 상대는 그닥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무리같은거 없어요. 저도 혼자인걸요."
쓰잘데없는걸 왜 자꾸 덧붙이는 건지.
거기까지 생각한 뒤 대답없이 자리를 떴다.

.....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으리라. 다른 인간들이 여기저기 움직이느라 분주한 모습이 눈에 밟힐 정도로.
그런데 왜 이 녀석은...

-"..왜 자꾸 졸졸 따라오는건데?"
-"아까 무리로 가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쭉 제 무리를 따라가고 있는 건데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뱉으며 작은 손가락을 내 쪽으로 뻗었다.
-"클로저님이요."

-"ㅁ..무슨 헛소리야! 누구 맘대로 무리네 마네..!"
-"에이, 혼자 있는건 외롭다구요."

말을 자르듯 튀어나온 그 말이 갑작스럽게 파고 들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목지기까지 큼큼한 기운이 올라온다.
-"이게 진짜.."
-"저 말이에요."
큼큼한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혼자 있으면 자꾸 어딘가 쿡쿡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잘은 모르지만 아마 외로운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곤 녀석은 손가락을 모두 펴며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니깐 조금만 도와주세요. 좋은 기억 하나 정돈, 만들어두고 싶거든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며 녀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조금. 서글프게.

***

-"와! 바닷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에요!"

남의 속도 모르고 녀석은 싱글벙글 웃으며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말이 괜시리 마음에 걸려 맘대로 하게 두었지만, 이상하게 내가 이끌리는 구도가 되어있었다.

손에 이끌려 관심도 없는 옷들을 구경하러 가거나, 바다생물들 하나하나에 보여주는 과도한 관심에 혀를 내두르거나.
의미 모를 상황들이 의미 없이 지나갔다.

-"...야. 쓰잘데없는 짓거리 그만하고 이제 끝내자고."
-"안돼요. 아직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게 많다구요. 분명 손, 잡아주셨죠?"

하.
장난스레 웃으며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의미라던가, 이유라던가 따위 없었다.
자연스럽게 손이 포개어졌을 뿐이다. 손 위에 내려앉은 꽃잎을 움켜잡듯이.

살짝 찡그리며 말을 덧붙혔다.
-"그럼 구경만 하지말고 들어가기라도 해보던가!"
-"음, 그건 안되겠어요. 이상하게 물이랑은 과하게 친해지고 싶진 않거든요."
한마디, 한마디가 동떨어진 느낌이다.

-"그보다 여기로 와 보세요, 클로저님!"
금새 바다에 질렸는지 어느새 녀석은 모래에 걸터 앉아있었다.

-"모래성, 어떻게 예쁘게 쌓는지 알고 계세요?"
-"몰라."
-"에이, 아시는거 같은데?"
-"...하아."
늑대보다 질긴 상대에게 고개를 내젓고 뭄을 움직여 바닷물을 길러왔다.

-"물, 만지는 것도 싫어하냐?"
-"음..괜찮을거 같아요. 젖는건 싫지만 조용히 떠 다닌다는 상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거든요."
...말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무시하고 바닷물을 살짝 부은 뒤 손으로 주물럭 다듬기 시작했다.
모래성은 서서히 강도를 더해가며 모양을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 녀석의 흥분도도 점차 높아지는듯 했다.

-"와아, 이런 식으로 만드는 거군요! 차곡차곡 쌓여가는게 너무 이뻐요!"
마치 마술을 보듯하는 과한 리액션에 아주 잠깐, 정말 찰나에 풀어져버린 내 표정은..
-"기억도 마치 이런거겠죠?"
이어진 한마디로 인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뭐?"
-"기억도 이렇게 물을 붓고 조물조물 다듬어 이런 예쁜 모양을 갖추는 거잖아요?"
꾸물.
-"모양이 살짝 어긋날 때도 있지만, 그땐 그 위로 모래를 덧대 예쁘게 포장하는 거구요."
꾸물꾸물. 꿀렁.
퀴퀴한 기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목지기까지 차오른다. 아니, 차오른다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답할 수 없다. 억눌리고 엉겨붙어 뱉어지지 않는다.

-"음, 그렇다면 기억에도 단단하게 만들어 줄 물을 부어줘야겠죠? 어떤게 있을까요? 예를 들면... 아, 동료라던가?"
쩍-
-"아니면 선생님?"
푸욱-
-"아, 무엇보다 추억이 제일이겠죠?"
꾸웅-
가지각각의 효과음들과 함께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억눌렀던 감정들이 펌프질되어 전신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대답해주세요! 클로저님은 어떤게 가장.."
-"같잖은 소리 좀 적당히 해!"
칼로 잘라내듯, 매섭게 내뱉는다.
-"뭐?..쌓아올려? ...덧붙이고 포장한다고? 키킥..아주 망상투성이군."
칼로 쑤시듯, 사납게 내뱉는다.

-"동료? 어제까지 어깨에 손을 얹고 처웃던 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칼부터 들이대더군."
부순다.
-"선생? 과거던 지금이던 사람을 짐승마냥 두드려대고!"
밟는다.
-"추억..추억이라고?...보답 받을 수 없는 추억이 얼마나 사람 미치게 만드는지 알기나 해!?"
짓밟고, 짓밟고, 짓밟아서. 원형조차 남기기 않으려 부숴버려도 사라지지 않는다.

-"[저..미안하지만,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었던가?]"
작은 모래 알갱이는 진득하게 남아 사지를 끈적하게 조여온다.

-"어..아..그..그게 아니라.."
사정없는, 상상치도 못한 공격적인 반응에 녀석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듯 버벅거렸다.
시종일관 똑바르던 눈빛이 처음으로 방향을 잃어버린것 같았다.

-"...제발 내 앞에서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그 말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저..정말 죄.."
-"..여기까지다."
끊어냈다.
-"네년이 계속 쫄랑쫄랑 따라다니던, 말을 걸어대던 이젠 관심없다. 네 맘대로해.
뭐가됐든 이 같잖은 짓에 어울릴 마음따윈 더이상 없어."
말도. 관계도. 깔끔하게 끊어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기 시작한 줄기는, 사정없이 엉겨 결국 잘려나갈 수 밖에 없다.

***

처음 녀석이 따라다닌,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조심스런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따위 없었다.
갈구한 관심에 이끌린 눈길따위도 없었다.
철저한 관심 바깥선에서 나를 따라오던 녀석은 작은 소리로 몇 마디 내뱉은 뒤,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같이 돌아다닌 시간에 비해, 마지막은 우스우리만치 가벼웠다.
마지막에 건낸 말조차 파도마냥 부서져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았다.

균열이 생긴 머릿속은 깨진 유리컵 틈새로 물이 새듯, 어떠한 정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조금 전 뱉어냈던 역거운 단어들은 밀물마냥 울컥울컥 역류했다.
지금까지 쭉, 일관되게 없었다. 내 마음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기억따위.

멍해져가던 정신을 되돌린 건 뜬금없이 찾아온 복통이었다.
-"..가지가지들 하는군."
아침부터 아무것도 받지못한 배는 굶주림을 넘어 아픔을 호소했다.

부산까지 오는 길동안 우리의 여비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이동을 위한 티켓 2장과 좀도둑 여자가 어디선가 구해온 여분의 옷이 전부.
그 중 티켓은 돌발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방책이겠지.
자조적인 비웃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1박 2일동안의 여행에는 식사도, 숙박도, 의문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일상이었다.

-"..키키킥..정말 끝내주는 휴가라니까."
한번 더, 비웃어주었다.
혹시나. 혹여나. 명목상이지만 난생 처음 받은 휴가에 대한 자그마한 기대.
잠시나마 그딴걸 품었던 자기 자신을.

"-...갈까."
있지도 않은 목적지로 발을 돌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달랬더니 왜 여기까지 와 계세요?"

차원종이라도 나타난 것 마냥 기겁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누구를 향하는지 따위 알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따위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단박에 알아 차렸기에 더 그랬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도 그러시더니..일부러 무섭게 쳐다보시는 거에요?"
보랏빛 머리가 바람에 살짝 나부꼈다.
살짝 숨이 찬듯한 하얀 입김과 촉촉한 땀방울들이 뒤섞여 반짝거렸다.
-"저 왔어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무척이나. 반짝거리게.

***

대답하지 못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소리는 입구멍을 지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뭐냐. 왜 왔느냐.
평소 쉽게 내뱉던 흔한 말 하나하나가 목에 갈퀴를 박아 넣는다.

-"..죄송했어요."
흔치 않은 말을 쉽게 내뱉는다.
-"일부러 상처 주려던 건 결코 아니었어요."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갈퀴를 박아 넣는다.

-"처음에 제가 그랬죠? 좋은 기억 하나쯤 만들고 싶다고. 도와달라고요.
미안해요. 제 입장만 계속 고집해서.. 어려운 일을 멋대로 떠넘겨서요.
이번엔 제가 힘내볼게요."

여전히 대답없는 빈칸에 질문을 밀어넣으며 녀석은 또, 손을 내밀었다.
-"자요."
내민 손 위에는 호떡이 하나씩, 쥐여있었다.

꽃잎 하나가 틈새 위로 들러붙었다.
-"클로저님과 제가 함께 앉아 유명한 음식을 나눠먹는다!"
틈새를 메우지도, 그렇다고 사이로 새어나가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기억하고 싶은 추억. 맞죠?"
싱긋, 단지 유리컵을 보랏빛으로 가득 채운다.

-"...핫."
뻘쭘하리만치 닫혀있던 내 입에서 튀어나온건 말따위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나온 웃음이었다.
호떡을 건네받아 살짝 베어물었다.
톡.토독. 안에 든 씨앗이 부서지며 물방울 터지는 소리를 내었다.

-"이런건 어디서 구했냐."
쓸데없는 질문을 던진다.
-"뭐, 물어물어 가져왔죠!"
쓸데없는 대꾸로 받는다.

반나절, 
우리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다.

의미없는 질문을 하고 뻔한 답을 듣는다.
가끔 그 순서를 바꾸어 반복한다.

구경도, 식사도, 모험도 하지 않았다.
오늘 중 가장 평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의미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로의 표정은 아마 더없이 밝았으리라.

문득 시선에 들어온 머리칼은 보랏빛이 꽤나 칙칙해져 보였다.
마치 시계 같다고 생각하며, 말을 건넸다.

-"이제 슬슬 갈 시간 아니냐?"
-"네?"
-"너 말이야. 혼자 왔다곤 했지만 돌아갈 무리는 있을거 아니냐."
-"...그렇네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는건 맞아요."
...대답하기 전 살짝 비쳤던 텀이 마음에 걸렸다.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네녀석은 뭔가 이상하다고. 말이나 하는 짓이 완전 동화 속에서 살다온 놈 같아."
-"그런 아름다운 고향은 없는데요."
혀를 살짝 내밀며 반박하는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술렁인다.
-"애초에 처음부터 나보고 클로저냐고 물었잖아? 그건 또 어떻게 안건데?"
쌓아두었던 질문들이 허물어진 벽틈을 비집고 줄줄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녀석은 살짝 미소를 띄운채 답지 않게 입을 닫고 있었다.

-"..비밀이네요 그건."
-"뭐? 무슨 헛소리야 갑자기?"
-"그치만 클로저님도 저한테 숨긴게 있잖아요?!"
-"그런 쫌생이 짓 한 적 없어!"
-"이름이요!!"
예상치못한 큰 목소리에 살짝 멍해져 잠깐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어떻게 아직까지 이름도 말 안해줘요?"
-"..물어본적도 없잖아?!"
-"와아..진짜 냉정하네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에 괜시리 무안해져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타."
-"네?"
-"나타라고. 비밀같은거 아니야."
-"힛, 좋은 이름을 빨리도 알려주시네요."
녀석은 살짝 웃으며 마치 암기라도 하듯이 나타, 나타라고 웅얼거렸다. 

-"이제 네 차례잖아. 얼른 말해보라고."
-"음..역시 그 비밀은 말해주기 좀 어렵고.."
-"뭐야? 약속이 틀리잖아?!"
-"잠깐만요, 대신 다른 비밀을 알려주면 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상체를 기울여 볼을 가까이 붙여왔다.
서로의 숨소리가 뒤엉킬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녀석은 손바닥을 볼 한쪽에 붙이며, 귀에 입을 갖다대곤 작게 속삭였다.

-"..빈카에요. 나타씨. 제 이름.."
빈카.
두 음절이 바닷바람처럼 나긋하게 귀를 간지럽혔다. 빈카는 얹은 손으로 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꽃잎이 살결을 살짝 스치고 떨어지듯이.
한 방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듯이.

-"미안해요, 나타씨."
그 말과 서글픈 표정을 마지막으로 나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

-2021년 08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시민 대피 작전을 끝냈는지 검은양팀과 김유정이 달려오며 말을 건넸다.

-"잘했어! 레비아!"
-"미..미스틸이야말로..수고많았어."

-"어때, 할만하던가?"
-"뻔한 걸 묻는군."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두 팀은 저마다 한 마디씩 주고 받기 시작했다. 이후 뒷처리를 위한 경관들까지 몰려들면서, 해변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찡그린 표정으로 자리를 뜨려던 나타를 붙잡은 것은 트레이너였다.
그는 손에 몇 개의 파일을 들고 두 팀을 불러모았다.

-"방금 출연했던 차원종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왔다."
-"브리핑 타이밍이 아주 환상적이군요~?"
-"...설명을 시작하지."
하피의 능글맞은 웃음을 흘러넘기며 트레이너는 입을 열었다.

-"이 차원종은 생김새처럼 식물형 차원종의 일종이다. 완전한 성장을 끝낸 개체는 보호색을 둘러
이 차원의 식물들과 비슷하게 위장하여 자연스럽게 녹아든다고 한다.
그렇게 자리 잡은 개체는 주변 식물들의 에너지를 조금씩 흡수하여 영양분으로 삼아 살아가지.
혹여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특정 포자를 분비하여 기억을 조작한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말이지.
..모두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행위로 볼 수 있겠군."

-"..그래서 데이터가 미미했군요."
-"잠깐만요, 그렇다는건.."
-"그래. 방금 전 상황처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난동을 피운건 처음 발생한 사례이다."
-"...대체 뭐 때문이지?"
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트레이너 역시 조용히 작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알 수 없군. 아직은...그리고 또 하나의 특이사항이 있었다."
-"특이사항이요?"
-"개체 조사 결과, 이 차원종은 성체로 거듭나기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니온 쪽에선 크게 유체기,잠복기,활동기로 구분짓더군.
유체기 때 스스로 이동하며 적합한 장소를 탐색, 긴 잠복기를 거쳐 적응을 끝내면 성체로 활동을 시작하는 듯 하다."
-"식물답지 않은 일생이로군."
-"단, 유체기와 잠복기 때의 데이터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다고 하는군."

벗기면 벗길수록 오히려 꼭꼭 숨기는 부분이 늘어난다. 이 모순적인 상황에 다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성체에 대한 정보가 미약하게나마 있어서 다행이에요."
새로운 종이쪼가리를 들고 나타난 김유정이 그 적막을 깨뜨렸다.

-"덕분에 명칭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거든요."
-"...뭔데?"
처음으로, 나타는 입을 열었다.

-"...[페리윙클]이라고 하네요."
-"...기억을 조작하는 차원종의 이름이 [페리윙클]이라니.. 끝까지 모순적인 녀석이군요."
모호하게 웃으며 하피가 말했다.
-"무슨 뜻이에요, 하피씨?"
슬비의 물음은 아마 모두의 생각과 같았으리라.

-"꽃 이름이에요, [페리윙클]. 그것도 아주 예쁜 보라색 꽃이랍니다?"
-"네에.."
작게 대답한 슬비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하피는 다음 말을 이어붙였다.

-"그 꽃의 꽃말,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무엇이죠..?"

-"...기억하고 싶은 추억."
-'...기억하고 싶은 추억."

똑같았다. 하지만 달랐다. 하피와는 달리 나타는 목구멍 안으로 삼켜버렸다.
마치 조작이라도 당한 것 마냥, 불현듯 떠오른 그 단어들을.

-"...어쨋든 알 수 있는건 여기까지네요."
모두의 침묵 속에서 종이를 반듯하게 접으며 김유정이 내뱉었다.

옳은 소리다. 여기까지였다.
작전도, 정보도, 알 수 없는 기억들도.
모두, 여기까지였다.

***

-epilogue .1-
-2020년 8월-

나즈막하게 가라앉은 해변가에서 바닷바람이 두 사람을 어루만지듯 지나간다.
눈을 감은 남자를 진득하게 바라보며 소녀는 웃고 있었다.
무척이나. 서글프게.

-"...정말 죄송해요, 나타님."
소녀는 남자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그때 말을 걸지 말걸 그랬나봐요..아니, 이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예쁜 기억들이었죠?"
스스로를 부정하듯 고개를 살짝 저으며 소녀는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구요? 나타님이 알려주신 거니깐요...
혹시나 못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따위엔 기댈 수 없었어요..
저 때문에 나타님이 아파하시는건 다시는 보기 싫거든요.
....그래도..."

톡. 작은 소리와 함께 손등 위로 살짝

-"...정말 많이 아프네요.. 보답 받을 수 없는 추억은.."

눈물을 받아낸다.

-"염치없지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또 한번 살짝, 소녀는 미소 지으며 남자에게 몸을 기울인다.
-"한번만 더.. 꼭 만나러 와주세요. 잠깐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여기서.."

젖은 꽃잎이 입술에 살짝 내려앉았다, 가만히 떠나갔다.

***

-epilogue .2-
-2021년 08월-

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튜브볼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다.
휴양지는 어느새 검은양팀과 늑대개팀을 포함한 인파로 들끓었다.
조금 전의 혼란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조사와 뒷처리를 마친 후 오염이나 다른 위협 가능성은 없다는 결과에 따라, 멈췄던 두 팀의 휴가가 다시 진행되었다.
서로에게 뿌려대는 물방울과 함께 웃음이 오고갔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뒤 휴식을 제안한 두 팀은 저마다 쉬거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타는 펼쳐둔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선글라스 때문인지, 청량한 하늘색에 약간의 보랏빛이 감돌았다.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어 꽤 진득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나타를 일으킨 것은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였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멤버들의 손엔 호떡이 한아름 쥐어져있었다.
-"얘들아! 먹을거 사왔어!!"
-"씨앗 호떡이에요. 부산에선 이게 유명하다고 하네요?"
그렇게 설명하며 호떡을 나누어 주었다.

호떡을 쥐어들고 나타는 모래밭에 걸터앉았다.
사그라드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떡을 베어물었다.
씨앗들이 입 안에서 눌려 터져나간다.

톡. 토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물방울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예상보다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여유가 있을때마다 틈틈히 쓰다보니 이제서야 올리네요.
덕분에 퇴고도 못했군요. 변변찮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여 관심이 있으신 분은 구글에 페리윙클을 검색해보세요. 소녀 이름이 왜 빈카인지 이해가 가실겁니다.
작중에서 표현해볼까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거 같아 그냥 제외했네요 능력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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