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다. 그리고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알람을 끈다. 끄응… 어제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피곤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슬비에게 잔소리 들으며 등교하는 것보단 학교에서 자는 게 훨씬 나으니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야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밖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탄 냄새도. 엄마, 오늘은 집에 계시는 건가? 아니 잠깐, 우당탕? 탄 냄새?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벗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내가 평소에 요리할 때 종종 쓰는 앞치마를 입고 있는 엄마와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비. 할 말을 잃은 나와 엄마의 눈이 마주쳤다.
“어? 세, 세하야. 일어났어? 아, 그게 이건 말이야…!”
엄마는 허둥지둥 상황을 설명하셨다. 상황은 이랬다. 아침에 일어난 엄마가 내가 일어나기 전 아침을 준비하려다 냄비를 태워 먹었다는 것이었다. 말문이 막힌 나는 일단 가스 불을 끄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매캐한 탄 냄새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래서, 왜 갑자기 아침을 차리고 있었어요? 평소에 배가 고프시면 내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면서 나를 깨웠잖아요.”
엄마는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그야 오늘 아들 생일이잖아! 서프라이즈로 이 엄마가 미역국 해주려고 했지. 이상하네~ 분명 유뷰트 백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물을 넣고 팔팔 끓였는데…”
아무래도 너무 팔팔 끓인 모양이다. 하긴 집안일은 거의 내가 다 해서 요리를 거의 안 해보신 엄마에게 미역국은 좀 힘들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를 위해 유뷰트에 찾아보면서까지 요리 해주시다니. 조금은 감동이다.
생일. 그러고 보니 새벽에 게임할 때 내 생일이라고 축하 케이크 아이템을 줬었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자! 어서 먹어봐, 아들.”
엄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역국과 어제 먹다 남은 밥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미역국 비주얼이 심상치 않다. 흘러넘쳐 버릴 정도로 많은 미역과 덜 익은 소고기, 그리고 어째서인지 갈색빛이 도는 국물. 과연 이 미역국은 냄비가 희생할 만한 맛을 할 것인가. 긴장되는 마음으로 국물을 한 숟갈 떠 입 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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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인데 학교에 와야 한다니, 이보다 더한 날이 더 있을까. 거기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남을 나이라고. 이게 다 차원종과의 싸움으로 학교가 쉬어 단체로 유급을 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평화를 되찾은 건 물론 좋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다시 다녀야 하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세하 형! 좋은 아침이에요!”
“야호! 좋은 아침!”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미스틸과 서유리. 쟤들은 월요일 아침부터 기운도 참 좋다. 저 기운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람. 나도 마지못해 손을 흔들어준다. 유급한 우리들과 달리 미스틸은 똑똑한 두뇌로 진급하여 우리들과 함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유리야 전부터 같은 학교에 다녀 교복 입은 모습을 많이 봤지만 미스틸이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분명 나이는 고등학생이라 제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있을 텐데도.
“세하야, 내일 모의고사인데 뭐 선택할지 정했어?”
“저는 물리 시험 쳐보려고요!”
뭐? 모의고사? 언제? 내일? 내가 멍하니 둘을 바라보자 서유리는 웃으며 내 등을 퍽퍽 두드렸다.
“뭐야, 너 내일 모의고사인지도 몰랐어? 하긴, 나도 아까 슬비한테서 들어서 알았지만!”
내일이 모의고사라니… 그래도 모의고사 당일에 생일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하나. 작게 한숨을 쉬자 미스틸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참, 그러고 보니 오늘 세하 형 생일이죠? 생일 축하해요, 세하 형!”
“저, 정말~? 우와~ 몰랐네~? 생일 축하해, 세하야!”
저 녀석들, 용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서유리는 반응이 왜 저렇게 어색해? 일단 축하를 해줬으니 나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서유리는 서둘러 자리로 가고 미스틸도 다른 반이라 얼른 돌아갔다. 이제 수업도 시작했으니 한숨 자볼까나. 하품하며 엎드리려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톡톡 건드렸다. 석봉이었다.
“세, 세하야. 오늘 새, 생일이었어? 새, 생일 축하해. 그리고 기억 못해서 미, 미안…”
생일 하나 기억 못 해줬다고 미안해하다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생일 기억 못 하는 게 뭐가 어때서. 대신에 내가 너 생일 기억 못해도 서운해하는 거 없기다?”
석봉이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정말로 좀 자볼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어온 건 우리 학교의 선생님이 된 제이 아저씨 -제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잠시 고민하였지만 결국 어색하여 원래대로 부르기로 하였다-. 아, 자기는 틀렸네…
제이 아저씨는 수업 시간에 자는 걸 뭐라고 안 하시긴 하지만 막상 자면 자기 수업이 지루했냐면서 속상해하시기 때문에 되도록 안 자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녹즙과 건강에 대한 얘기가 수업의 절반을 차지하여 지루하긴 하다. 특히 오늘은 피곤한 상태로 버티며 거의 졸며 수업을 들었다. 제이 아저씨가 수업이 끝난 지금 나를 잠시 부른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후.. 세하 동생.”
어쩐지 하실 말이 예상이 갔다. 또 수업이 졸릴 만큼 지루했냐 식의 신세 한탄을 하시겠지.
하지만 아저씨가 꺼낸 말은 예상 밖이었다.
“대장한테 들었어. 오늘이 생일이라며. 생일 축하한다고, 동생.”
“아, 네. 고마워요, 아저씨…”
전혀 예상외의 말에 나는 얼떨떨하며 대답하였다. 노란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보며 웃는 아저씨의 눈이 보였다. 이후 아저씨 내 머리를 잔뜩 헝클어 놓은 후 손을 흔들며 돌아가셨다.
이후 수업 시간에는 잠을 좀 자서 하교 시간에는 개운히 하교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정신도 맑아졌겠다 집 가는 동안 게임 좀 돌려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게임기를 꺼내던 참이었다.
“이세하! 같이 카페 가서 모, 모의고사 공부하자…!”
서유리가 내 어깨를 덥석 잡으며 말했다. 그 옆에서는 미스틸도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하 형, 카페 가서 모르는 문제 좀 가르쳐 주세요!”
엑. 그렇게 둘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나를 끌고 별다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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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보기에도 달달한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초콜릿 음료와 초콜릿 빵, 마시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오렌지 주스와 베이글, 그리고 내가 시킨 딸기 라떼. 이렇게 비싼 곳에서 많이 시켜도 되나 싶었지만 서유리의 말로는 자기와 미스틸이 돈을 합쳐 내겠다면 내 생일 선물이니 걱정하지 말고 먹어라고 하였다.
“근데 세하 넌 정말 그것만 먹어도 돼? 더 먹어도 되는데.”
“응. 애초에 단 음식을 별로 안 먹기도 하고 배도 별로 안 고파서. 그것보다…”
나는 꺼내놓고 펼치지도 않은 서유리의 문제집을 가리켰다.
“모의고사 공부하자면서. 평소에는 안 하던 애가 갑자기 하자고 해서 웬일인가, 했더니 역시나네. 공부할 거면 어서 공부해. 미스틸을 봐. 열심히 공부하고 있잖아.”
내가 서유리와 미스틸을 번갈아 바라보자 서유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문제집을 펼쳤고 미스틸은 모르는 문제가 있는 듯 나에게 문제집을 가져왔다.
“세하 형, 이 문제를 모르겠어요. 가르쳐주세요!”
해맑게 웃는 미스틸과는 달리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는 그래프와 숫자인지 영어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문자로 이루어진 문제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저기 미스틸… 문제를 풀어달라고 하기 전에 풀 수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 애초에 나는 과학하고는 담을 쌓아 물리 수업은 안 듣는다고. 이후 미스틸은 서유리에게도 문제 푸는 걸 도와달라며 문제집을 보여주었지만 서유리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미스틸은 원래 열심히 하니 그렇다고 해도 서유리까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줄은 몰랐다. 문제집 펼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막상 펼치면 그래도 열심히 풀어보려고 노력하다니. 그만큼 저 둘은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우리는 더 이상 클로저가 아니니까. 클로저가 없는 미래를 살아갈 거니까.
별다방에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오늘 저녁은… 아, 아침에 엄마가 만드신 미역국 아직 남아있지… 휴대전화를 꺼내 초록창을 켠다.
[ N : 망한 미역국 살리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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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에 엄마가 계시니 엄마표 꽈악 안아주기에 대비해야겠군.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며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세하야, 생일 축하해!”
펑! 소리와 함께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작은 폭죽을 들고 있는 엄마와 이슬비가 눈에 들어온다. 엥? 엄마는 그렇다 쳐도 이슬비는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지? 어안 벙벙한 내 모습을 바라보던 둘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서프라이즈 작전, 성공이야~!”
“대성공이에요, 선배님.”
서프라이즈 작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엄마와 이슬비는 우선 밥 먹고 얘기하자며 나를 식탁에 앉혔다. 그리고 식탁에는 아침에 먹었던 미역국부터 달걀말이까지 온갖 반찬이 진수성찬을 이루고 있었다. 한 입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간이 되어있는 부들부들한 달걀말이도 그렇고 특히 미역국은 마치 처음부터 다시 끓인 것처럼 맛있었다. 이걸 엄마 혼자서 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설마 이걸 다 이슬비가 만든 건가? 내가 묻자 이슬비는 웃으며 답했다.
“응. 하지만 그 미역국은 아침에 선배님께서 만드신 걸 조금 손 봤을 뿐이야.”
“이게 다 슬비가 도와준 덕분이지! 역시 슬비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잘했다니까!”
언제나 내가 만드 음식을 먹을 때면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던 이슬비이지만 어쩌면 나보다 이슬비가 더 요리 실력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의 망해버린 미역국을 소생시키다니… 밥을 다 먹고 난 후에 이슬비는 냉장고에서 케이크까지 꺼내왔다. 케이크까지 준비하다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아마 내 생일이라는 것도 슬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거겠지. 어색하게 행동했던 유리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어째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내 생일을 축하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랑 슬비뿐만 아니라 유리, 미스틸, 그리고 제이 아저씨까지. 오늘 하루 내 생일을 축하해 준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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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하고 슬비가 돌아가자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올해 생일도 이제 1시간밖에 안 남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갑자기 뒤에서 엄마가 나를 껴안는다. 평소처럼 전력을 다해 꽈악 껴안는 게 아닌 아주 조심스럽게.
“세하야, 오늘 하루 어땠어?”
오늘 하루라… 평범하게 학교에 가고 가끔은 수업 시간에 졸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이 모든 것을 다 함께 즐기고. 평범한 하루 속에 찾아오는 생일. 평범하지만 특별한 내 생일. 나는 그렇게 오늘 하루를 정의한다.
그리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듯 나도 미소를 띄운다.
“뭐어, 올해는 나름 즐거웠어요. 그리고… 모두에게 고맙기도 하고요, 생일 축하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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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하를 오시로 모시고있는 근로자입니다!!
세하 생일을 기념하여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소설을 써봤는데요.
제목인 <아마, 나는>에서 아마는 세하의 생일인 6월 3일의 탄생화로 감사라는 뜻의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나는>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을 세하에게 바치며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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