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거기 누구죠. 이 섬에 외부인이 들어 일은 없는데.”
무척이나 상냥한.
듣는 사람으로부터 경계를 허무는 것 같은 친절이 가득 묻어있는 목소리.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수금원이에요. 돈 받으러 왔는데요.”
“수금원……? 수금원이 왜 이 상황에, 이 섬에 있는 거죠?”
남자는 정말 의문이라는 듯 앞서 나선 은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네 교단의 명의로 빌린 돈, 얼른 갚아주시죠. 안 그러면 살짝 난폭해질지도 몰라요.”
조금 인상을 쓴 은하의 말에 남자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더니.
“아, 아아아. 그렇군요. 이제야 알 것 같네요. 그러니까 당신은, 빚을 받으러 온 거군요.”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입을 열었고.
“돈은 조만간 드리죠, 하지만……”
곧이어 지금의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이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불쾌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들어낸다.
“좀 불쾌하네요. 당신 때문에 감동이 많이 식어버렸어요. 죽은 줄 알았던 맹우의 생존에, 잠들어 있던 위대한 신의 부활에… 한참 흥분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남자의 그 기세에 다시금 그때의 공포가 다시금 그녀를 덮으려는 순간.
“다시 만나는군요, 당신.”
이전에는 들은 적 없는 명백한 적의를 품은 루시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이밀던 공포가 다시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응?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분명 나와 벗이 쓰러뜨렸을 텐데! 비어버린 관이 부서지는 모습도 직접 봤어! 그런데 어떻게……!!”
“마지막 힘을 끍어모아서, 일어섰어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자신의 손으로 처리했을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남자는 처음으로 놀란 모습을 보였고, 루시의 말을 들은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하더니 이내 뭔지 알아차렸는지 진정하곤 다시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역시 4천 년을 버텨온 괴물답게 끈질기네요. 그 순간에 마지막 분신을 만들 줄이야.”
“4천 년? 분신? 저 인간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 남자가 뱉은 말에 은하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에 의문을 표하고, 가연은-
“4천 년을 산… 괴물의 분신… 설마-!”
뭔가를 아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그 반응은 남자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다.
“응? 수금원 분과는 달리 그쪽의 분은 뭔가 아는 듯하네요.”
“으, 으으…”
남자의 시선이 닿자 극심한 공포심이 그녀를 덮쳤고, 그 긴장감에 이전에 보이던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짧은 시간 안에 급속히 빨라진 호흡과 함께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소녀의 모습에 은하는 말없이 가 연의 시야에서 그 남자를 가린다.
“댁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언니는 당신이랑 대화나 나눌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은하에게서 뿜어지는 명백한 적의.
그리고 그런 은하의 적의에 재밌다는 듯 미소 짓는 남자.
“흠- 저도 그녀가 저와 무슨 관계인지는 짐작 가는 게 없네요.”
철컥-
“하지만 저희 교단의 기밀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아쉽지만 처리해야겠네요.”
상냥한 미소의 뒤편에 숨긴 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탕-!
순식간에 급소를 향해 날아드는 탄환.
반사적으로 탄환을 피하려고 했지만, 뒤에 아직 과호흡 증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가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이프로 쳐내려고 하자.
컁- 캬걍-!! 강!
‘……응?’
분명 자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날아들던 탄환들은 은하에게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의해 격추되었고, 그런 이상함은 은하만이 아닌 뒤에서 가연을 진정시키던 루시와 총을 쏜 남자마저 느꼈다.
‘흠… 염동계의 능력인가.’
총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남자에게 있어 움직임을 제어하는 염동계의 능력은 썩 상성이 좋지는 않았다.
‘수금원이라는 저분의 반응으로 봐선 저분은 아니고.’
그리고 한 번 전투를 벌여본 적이 있는 루시는 이런 종류의 힘을 쓰지 않았던 걸 떠올리곤.
남은 가능성은 저기 과호흡으로 쓰러져있는 교단의 기밀을 알고 있는 소녀뿐.
“하하하, 이거 조금 곤란하게 됐네요.”
총기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그에게 있어 움직임을 제어하는 염동계의 능력은 상성이 좋지 않다.
“이러면 조금 실력을 발휘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빠른 속도로 접근하자.
“어딜-”
[뚫린 살갗]
남자를 향해 스테이크용 나이프를 던졌고.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회피해 가연을 향해 손을 뻗는 그 순간.
콰앙-!?
“……!?”
“제가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이네요.”
[수호자 마르두크]
루시의 관을 기점으로 생성된 방어막에 막힘과 동시에 강력한 일격을 정통으로 맞아 뒤로 물러난 남자.
“하- 그러고 보니 당신도 있었네요.”
“연이 언니한테는 손끝 하나 못 대요.”
“흠- 그거참 좋은 마음가짐이군요. 그럼 잘 지켜보세요.”
한순간 백 스텝과 함께 공중 난사를 가하는 그.
“어?!”
“칫-”
[격노하는 에아]
[새겨진 흉터]
두 사람은 스킬을 사용해 루시가 탄환을 막아내고, 은하가 남자에게 달라붙는데.
“어딜.”
빠른 속도로 자신한테 달라붙는 은하에게 탄환을 난사하며 뒤로 물러나게 한 뒤 앞차기로 은하의 손을 걷어차 순간 정면을 텅 비게 해 고화력의 공격을 퍼 붇는다.
“커억-!?”
“은하 씨!”
“남 걱정할 시간이 있을까요?”
“아-!”
타앙!
순간이라 할 시간에 은하를 처리한 남자는 이제야 좀 싸울 마음이 든 건지 조금 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고, 루시 또한 불시에 날아든 남자의 공격에 대응할 틈도 없이 그대로 당해 잠시 움직이지 못하게 된 순간.
“당신과 저의 관계가 좀 궁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철컥-
“안녕히.”
“아, 안돼!!”
아직도 과호흡으로 괴로워하며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가연의 머리를 향한 총구.
움직일 수도 없는 소녀는 그저 무력하게 눈앞의 총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굉음과 함께 머리에 감도는 기분 나쁜 온기, 본인도 모르는 사이 바닥에 쓰러진 채 몸 밖으로 뭔가가 빠져나가는 기묘한 감각. 그리고 또다시 느껴지는 전신을 더듬는 듯한 기분 나쁜 서늘함.
“아… 아아- 아아아!!”
“하아- 조금 아쉽네요. 오래간만에 벗 이외에 흥미를 끄는 존재를 발견했는데 말이에요.”
바닥에 쓰러져 머리가 피범벅이 된 가연을 안고 비명을 지르는 루시와 기껏 찾은 흥미로운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처리한 게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남자는 이내 가연의 죽음에 슬퍼하는 루시를 보고 총을 집어넣는다.
“아쉽긴 해도 더 하고 싶어도 슬슬 시간이 됐군요. 당신과 저 수금원의 처리는… 돌아온 벗과 완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는 편이 저와 벗의 유대를 더 깊게 해줄 테니. 그럼 멀리 가지 않겠습니다. 조만간 또 뵙도록 하죠.”
그 말을 남긴 채 쓰러진 은하와 이미 숨이 멎은 듯한 가연.
그리고 전의를 상실한 듯한 루시를 등지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남자.
“하아… **.”
“음?”
분명 처음 듣는 것 같지 않은 음성. 하지만 더 이상 들릴 리 없는 음성이….
“뭘 쳐다봐, 외** 흰둥이 **야.”
*
“흠- 이거 실수로 빗맞은 건가요? 그렇다면 제가 떠날 때까지 조용히 있으셨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하-? 뭐라는 거야. 이 외** 흰둥이는, 개밥을 처먹고 지져댈 거면 니네 집구석에나 쳐들어가서 짖어. 밖에서 발정 난 ****마냥 짖어대지 말고.”
“……하?”
소녀의 말에 남자의 여유 넘치는 미소에 금이 갔다.
“이거 참 떨고 계실 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입이 천박하신 분이셨군요.”
“하. 뭐, 그러긴 하겠네. 확실히 우리랑은 달리 이 애는 너 같은 쓰레기 **한테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 테니.”
새롭게 쓴 가면이 부서진 남자의 말에 소녀는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평상시 소녀가 보이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씁쓸한 미소를 짖고 있었다.
철ㅋ…
“이 **가. 남이 말하고 있을 때 뭐 하는 짓거리야.”
남몰래 탄환이 떨어진 총을 장전하던 남자는 순간 자신의 손목을 낚아챈 소녀의 모습에 놀라 격발하려던 순간-
콰광-!?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의 우레가 남자를 덮쳤고.
“커- 커헉…”
“뭘 이 정도로 아파해.”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무런 대처도 없이 직격으로 벼락을 맞아 상당한 치명상을 입어 몸이 마비된 남자에게 이제껏 보았던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 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그녀.
부드럽고 유순한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같이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분위기와 달리 언제라도 터질 것만 같은 위험한 화산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극도의 분노를 품은 눈동자는 착각인 건지 조금 붉은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우르르-
붉은 노을에 물들어있던 하늘이 그녀가 손짓에 반응이라도 하는 건지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여 원래의 붉은 빛을 잃고 달과 별이 빛을 잃은 어두운 밤하늘같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모여든 먹구름 속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꿈틀거리는 다수의 번개.
저 수의 번개가 한 번에 떨어진다면, 그로 인해 생길 피해는 대체 얼마나 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걸 알기에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비록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보았던 가연이라는 소녀는 심히 유약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여린 성향을 지닌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지금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행동을 전혀 거리낌 없이 하고,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존대하며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대화를 듣는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려는 것과는 달리 거칠고 투박하며, 상당히 공격적인 현재의 어투가 그동안 알고 지낸 가연이라는 소녀와는 확연히 달랐다.
“뇌명(雷鳴)-”
콰과아앙!!
“!!”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남자를 고문이라도 하는 건지 내려칠 때마다 그 출력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도 절대로 죽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고통을 느끼게 하겠다는 악의가 보였기에 이 이상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루시가 중간에 정신을 차린 은하와 함께 그녀를 막으려 달려드는데.
콰광-!?
“!?”
“!?”
순간 두 사람의 앞에 떨어진 우레가 마치 이 이상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그녀의 경고 같았다.
“끄윽-”
두 사람에게 경고로 번개를 날리자, 갑자기 머리를 붙잡고 중심을 잃은 건지 비틀거리는데.
“……하. 여기까지인가.”
중심을 다잡고는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그들의 머리 위에 몰려있던 번개 구름이 걷히며 다시금 구름 한 점 없는 말끔한 하늘로 되돌아왔다.
“이봐. 금발에 애인 척하는 늙은이랑 남색 머리에 세상 거지 같다는 얼굴.”
분명 둘의 이름을 알고 있을 가연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이상한 호칭으로 두 사람을 부르더니.
“이번에는 다행히 내가 나왔지만… 다음에는 나 말고 누가 나올지 몰라.”
“……뭐?”
“그 말은… 당신 말고도… 또 다른 누군가가 더 있다는 건가요?”
“……그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의문스러운 말에 은하와 루시 두 사람은 더욱 가연에 대한 의문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에게 그녀가 건네는 마지막 말은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한점의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 오히려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와도 같이 불안감과 처연함 만을 내보였다.
“그러니… 그러니 이 애를…. 이 애가 더는 죽지 않게. 이 이상 죽음을 겪지 않게… 너희가 이 아이를 도와줘….”
그 말을 끝으로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버린 가연을 은하가 재빨리 받아내면서 루시에게 지금 있던 일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하자며 무슨 일이 있어도 희망이나 아라, 마을의 아이들. 그리고 한 기남이나 반금련에게도 숨기자는 말을 하였고 루시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쓰러진 남자를 뒤로한 체 마을로 돌아갔다.
“하아- 하… 하…”
세 사람이 떠난 스카이 워커.
홀로 남겨진 전우치는 겨우 정신이 들어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 그 소녀 대체 정체가 뭐야.”
처음엔 단순한 염동 계열의 조금 강한 위상 능력을 갖춘 위상능력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의식을 잃고 다시 일어난 그 소녀는 자신의 탄환을 막을 때와는 달리 하늘의 번개를 부르는 날씨를 조종하는 부류의 능력을 펼쳤다.
“이거 꽤 심하게 당했군, 전우치.”
“!?”
다 죽어가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과 같은 은발의 머리카락과 옅은 옥빛의 눈동자에 외눈 안경이 잘 어울리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자신과 비슷하지만,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면서 생기는 특유의 중년미를 풍기는 남자.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 한 번 와봤거늘…. 꽤 심한 꼴을 당한 것 같구나.”
“하하… 이거 좋은 꼴을 보여드리지 못했네요. 백운 도사님.”
서둘러 격식을 차려 인사를 올리는 전우치를 보며 흡족해하는 백운.
그는 조용히 전우치의 곁에 다가와 손을 뻗자 전우치의 몸에 나 있는 자잘한 외상이 회복됨과 동시에 피로 같은 것도 전부 사라지는 등 몸의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자네의 벗이 사라진 뒤로 여전히 마음이 힘들었나 보군. 고작 이런 곳에서 이렇게 심하게 당하니.”
“아, 아닙니다… 그저 우리 교단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만, 내 내심 자네에게 그의 처분을 맡긴 걸 후회하고 있었다네.”
인자하기 그지없는 미소였지만 그 뒤에 숨겨진 소름 돋는 살의를 잘 알고 있는 전우치로선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저흰 어디까지나 교주님의 수집품. 그분을 위해 움직이고 교주님께 가치를 증명할 뿐이죠.”
“그래, 자네와 나는 어디까지나 교주님의 수집품이라는 걸 잊지 말게.”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닿는 순간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이 기분 나쁜 손길에 전우치는 소름이 끼치려는 걸 참으며 백운과 같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손을 치우고는 갈 길이 바빠 이만 가봐야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방심 못 할 영감탱이군.’
과연… 오랜 시간을 교단에 도사로 지내 온 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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