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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베스트]모음集 ver. 01(190331 ~ 190429)

작성자
SummerDia
캐릭터
파이
등급
태스크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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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e 2019.04.29
  • view9794
※ 한 달 동안 쓰긴 했는데 안 올렸던 거
※ 리포트는 나의 원수
※ 스트레스 받으면 피폐물만 쓰려는 버릇 좀 고쳐야 하는데...










① [볼프파이] 엄마미소 지어지는 볼프파이 1 & 2 (2019.03.31)

※ 리퀘박스에 ‘볼프파이 볼 때마다 엄마미소 짓는다’ 라는 글이 2개 중복으로 올라가있어서 쓰는 짧은 ‘엄마미소 지어지는’ 볼프파이 2개

 

 

 

 

 

01.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데이트, 라고 불리는 걸 시간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저 둘이 본격적으로 할 재간이 없었던 시기의 일이었다. 그래도 모처럼의 둘만 있는 시간이었고, 불과 몇 분 전에 초토화시킨 훠궈의 양은 많았기에 둘은 잠시 그 근처를 산책하기로 결정했다.

 

 “참 맛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선택한 맛집이라고. 맛이 없을 리가 있겠어?”

 “네이~네이~”

 

 태평스럽게 저런 말은 하지만 볼프강은 안내 책자를 **보면서 밤을 새운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인인 파이가 중국 음식을 안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었을 테고, 고향을 꽤 오래 비웠기에 약간의 향수도 가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결정한 메뉴였다. 볼프강은 훠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파이가 좋아해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책길도 아주 잘 되어있군요.”

 “플라타너스 나무네. 여름에 왔으면 더 절경이 분명했을 텐데.”

 

 중국음식점 근처에 왜 생뚱맞게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이라고 생각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둘은 이대로 본부로 돌아가기에 아쉬웠으며, 길게 뻗은 산책로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줄 핑계거리로 충분했다. 앨리스가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려고 한다면, ‘산책로가 생각보다 길어서.’ 라는 반은 사실이었던 이유거리는 되었으니까.

 

 그만큼 볼프강은 – 파이는 잘 모르겠지만 – 파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도 필요했다. 원래 연애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시작은 풋풋한 감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둘이 사귀기 시작한 건 불과 한 달 전의 이야기. 아직, 그런 풋풋함은 남아있다고 봐도 무방한 시기이지 않은가.

 

 볼프강은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파이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허전한 파이의 손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 손잡아도 되려나?’

 

 볼프강은 잠시 망설였다. 볼프강은 연애를 몇 번이나 해보았다. 적어도 파이보다는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성과 손잡는 것도 몇 번쯤은...했다. 그게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 게다가 파이와 손을 잡으려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전 중에 몸을 부추겨주거나, 감성적인 파이가 뛰쳐나가려는 걸 잡기 위해서라던가.

 

 ‘생각해보니 의외로 횟수는 많구나...’

 

 다만 그 때에는 제대로 된 감정이 실리지 않았을 뿐. 볼프강은 씁쓸했다.

 

 어느 순간 볼프강이 옆에 없다는 걸 깨달은 파이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보폭이 느려진 볼프강은 이제는 자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옆얼굴이 퍽이나 진지해서 파이는 함부로 건들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또각또각- 파이는 뒤쳐진 볼프강을 향해 제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서 왔다. 볼프강과의 보폭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가온 파이는 갑자기 볼프강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볼프강은 영문 모를 이 상황에서 파이는 태연히 지시까지 했다.

 

 “이리 줘보세요.”

 “뭘...?”

 

 이렇게 되묻는 자신의 얼굴은 얼빠졌을 것이다. 파이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 잡고 싶었던 것 아니신가요?”

 “...!”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졌지?! 되도록 표는 내지 않았던 거 같은데. 볼프강이 알기로 파이는 이런 분야에서는 자기보다 훨씬 둔했다. 그래서 볼프강은 신이 나서 하는 걸 파이는 대부분 뚱한 표정으로 대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해있는 볼프강을, 보다 못한 파이가 먼저 볼프강의 따로 놀고 있는 오른손을 덥석 잡았다. 얼음을 다루어서 항상 체온이 차가울 줄 알았는데, 맞닿은 파이의 손은 오히려 볼프강의 손보다 더 따스했다.

 

 그렇게 손을 맞잡고 있는데 파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걸을 때에 이렇게 손을 잡으면서 걷곤 했습니다.”

 “...”

 

 그 누군가 중에 분명 남자는 없으리라, 없으리라...볼프강은 최면을 걸었다. 파이는 싱긋 웃었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선배 손이 자꾸 제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그만 눈에 보여서 말이지요. 언제쯤 잡으려는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제가 먼저 이렇게 하는군요.”

 “...”

 “혹시...기분 나쁘셨나요?”

 

 아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쪽이었다! 볼프강의 얼굴은 삽시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볼프강은 나머지 다른 손으로도 파이의 손을 감싸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네? 겨우 이런 걸로 고맙다는 말 들으니 이상...”

 “아니야, 진짜로 고마워...”

 

 먼저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고, 잡아주기까지 해서. 볼프강은 이 산책로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한순간이나마 바랬다.

 

 

 

 

 

02.

 

 “파트너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구나...”

 “네...선배가 살던 곳보다는 많이 촌이죠?”

 “아니야, 전혀.”

 

 오히려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느낌이 풍겨서 좋은데. 마치 옛날 문학 작품의 하나를 보는 기분이야. 이런 볼프강의 반응에 파이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년.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으나, 우연찮게 이번 임무 수행지가 파이의 고향과 가까워서 파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고향과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먼 장소에 볼프강을 데리고 왔다.

 

 정확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나 비슷한 느낌의 마을. 파이는 높게 솟은 봉우리 하나를 가리키며 볼프강에게 말했다.

 

 “저 산 하나만 넘으면 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입니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지?”

 “선배가 자주 읽는 무협 소설에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커다란 폭포도 있고, 동굴도 있고, 대나무숲도 있습니다. 갈대밭도 있고요.”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볼프강이 한숨같이 내뱉은 소감이었다. 파이는 그 말에 ‘언젠가는 분명 기회가 있을 거예요.’ 라며 일이 많다는 식의 투정을 부렸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아직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휠 오브 포츈으로 1분이면 가는 산봉우리 하나도 넘기지 못해 이곳으로 볼프강을 인도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볼프강은 별 불만은 없었다. 볼프강 슈나이더라는 사람은 눈치가 너무도 빨라서, 이미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차분하게 기다려줄 뿐.

 

 그러고 보면 그랬다. 사귀기 직전, 볼프강은 파이에게 말했다.

 

 -기다려 줄게. 걱정하지 마.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신의 파트너를 보며 파이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볼프강은 그 미소를 그래도 고향 근처에 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로군, 이라고 치부했지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길 –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에 두 사람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파이는 탄식같이, 아니면 감탄같이 그 나무의 이름을 읊조렸다.

 

 “아카시아 나무로군요.”

 “봄이군.”

 

 봄날, 정말 그랬다. 이제야 파이는 자신을 감싼 낯설지 않은 고국의 공기가 따스함을 체감했다.

 

 그러고 보니 파이의 집 근처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어렸을 적 슈에와 같이 아카시아꽃을 따서 간식 삼아 먹고는 했었다. 그 때의 추억은 파이의 기준에서 볼 때 아주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었기에, 파이는 일순의 향수에 젖어 아카시아나무 가지 하나를 꺾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파이의 행동에 볼프강은 눈만 깜빡였다. 파이는 꽃을 하나 따,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은은하고 달콤한 내가 입속을 감돌고, 혀에는 어린 시절 파이를 끊임없이 유혹하던 달달함이 느껴졌다. 파이는 변하지 않은 이 맛에 감격을 했고, 자신의 이 돌발행동을 멀뚱히 보는 볼프강에게 얼른 부연설명을 했다.

 

 “어렸을 적에 봄이 되면 종종 이렇게 꽃을 따먹었어요.”

 “그래?”

 

 볼프강은 파이의 손에 걸린 꽃을 따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잠시 입을 오물거리던 볼프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맛 안 나는데?”

 “선배 같이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못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한테는 분명히 나요. 향긋하고 달달한 어린 시절의...”

 

 파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행복했던 추억은 거기서 끝나면 되었을 걸, 불행했던 기억으로까지 파이를 인도했다.

 

 “...”

 “...”

 “...죄송해요.”

 “난 네가 그렇게 갑자기 사과를 할 때가 제일 무서워, 알아?”

 

 침묵 끝에 파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에 볼프강은 불만을 표시했다. 아키시아 가지를 쥔 파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럴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볼프강은 너무도 잘 알았다.

 

 하기야, 몇 년을 같이 옆에서 지낸 파트너인데. 파이는 자신의 얼굴에 닿는 감촉 덕에 볼프강이 파이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는 걸 자각했다.

 

 “괜찮아.”

 “...”

 “다 털어놔.”

 “...”

 

 짧은 말들을 해주는 볼프강의 목소리가 너무 따스해서 파이는 그만 눈물이 솟구칠 뻔 했다. 가까스로 눈물샘을 부여잡아 그런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말이다. 대신 파이는 좀 더 볼프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이 쥐고 있던 아키시아 가지가 망그러지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파이가 먼저 볼프강에게서 떨어졌다.

 

 “아하하, 저도 아직 미숙한가 봅니다. 선배의 눈에는 저는 아직 어리게 보이겠지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볼프강은 말을 목 너머로 삼켰다. 지금은 그런 말보다는 부드러운 행동 하나가 더, 좋을 것이다.

 

 볼프강은 파이의 손에 있는 가지 중 성한 부분을 또 잘랐다. 접목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순백의 하이얀(白, Bai) 꽃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릴 이의 머리에 올려준 것뿐이다.

 

 “...”

 “처음부터 생각은 했지만...”

 

 정말 잘 어울리네. 볼프강은 자신의 작품에 만족스러워했다. 손에는 꽃다발 – 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볼프강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 이, 머리에는 같은 꽃으로 만든 장신구가 있는 제 연인의 모습이 볼프강에게는 너무도 눈부시게 보였다. 마치 따스한 5월의 신부 같았다.

 

 하얗게, 눈앞이 점멸될 거 같았다.

 

 아카시아는 파이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그 점을 볼프강은 남몰래 기억해두기로 했다.











② [세하유리] 잘 어울려(2019.04.15)

※ 짧음주의

※ 트리아이나 리벨리온 세하 x 소드&걸스 유리(태스크포스 세하유리)

※ 실제로 만나지는 않지만, 스쳐지나갔다는 날조를 넣었습니다!

 

 

 

 

 

 ‘설마...?’

 

 세하는 잠시 넋이 빠졌다. 불투명한 재질로 만든 것이 분명한 장막이 한 순간 투명해져서, 그 장막 너머로 어느 인물 – 심지어 매우 낯이 익은 인물이다 - 을 본 거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세하의 감이 잘 맞는다면 세하가 장막 너머에서 언뜻 본 사람은 서유리임이 틀림없었다.

 

 ‘아.’

 

 그 인물을 보았다, 라는 사실에서 반가움도 아닌 작은 찬사와 비슷한 한음절의 단어가 세하의 뇌리 속에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세하가 항상 보아온 흑요석 색의 윤기 있는 장발에, 잔잔한 물빛의 눈동자를 가진 생김새는 같았으나 세하가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낯선 옷차림 때문에 세하는 자신이 본 것이 헛것은 아니었는지 잠시 고민까지 했다.

 

 ‘흐음...’

 

 세하는 자신의 기억력은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모 티브이 채널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자마자 그냥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그런 **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기억은 잘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 세하 자신이 그 1초라는 찰나의 시간동안, 눈여겨**도 않고 그냥 무심히 흘러 보낸 풍경 하나하나가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뇌리에 고스란히 박혀있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뭐, 여기는 꿈속이니까 가능하다고 할지도. 세하는 이 극장의 주인의 말투를 잠시 빌렸다.

 

 서유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세하는 거기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세하는 이제까지 유리가 단 한 번도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고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 장막 건너편에 있던 서유리는 그 푸른색으로 도배된 옷을 입고 있었다. 서유리가 가지고 있는 옅은 물색이 아닌, 아주 진한...담청색 계통의 옷이었다. 세하는 유리는 밝은 색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늘상 생각해왔다. 쾌활하고 발랄한 유리에게 꼭 맞는 색이 그런 난색(暖色) 계열일거라고.

 

 하지만 그런 자신의 의견은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담청색의 짙은, 푸른색의 옷을 입고 있던 유리는 참 어여뻤다. 자기도 모르게 뇌리에 꼼꼼히 담아둘 정도로, 그리고 그 홍채에 기억해둔 모습을 곱씹으면서 계속 감탄해하고 있을 정도로. 아쉽게도 정면에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리는 옆에 있는 다른 두 소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지라 측면의 얼굴만 보여주고 있었다.

 

 장막이 다시 닫히기 직전, 유리가 크게 한 번 몸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으로 인해 유리는 완전히 세하에게서 등을 돌린 꼴이 되어버렸다. 장막은 이제 더 이상 건너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세하는 유리가 마지막으로 보였던 모습, 곱게 땋은 머리가 참 허전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했다.

 

 ‘음...’

 “이세하, 거기서 멍하니 뭐하는 거야?”

 “아, 나타.”

 

 마음에 걸리는 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자신도 유리처럼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인물과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한창 앞에 있는 축음기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세하는 또 멍하니 옆에 있는 둘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봤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너편에서 나를 봤을까?’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 * *

 

 

 

 지긋지긋한 꿈에서 깨어나고서 돌아온 – 물론 바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잠시 어딘가를 들렀었다. - 세하를 맞이한 사람은 제이와 유리였다. 미스틸과 이슬비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이는 늦봄의 노곤한 오후 햇살에 잠시 잠에 취해있었기에, 실질적으로 유리와 세하만 있었다고 봐도 되었다.

 

 “아, 돌아왔네?”

 “응...”

 

 반갑게 맞이한 유리를 보며 세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등 뒤에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는 선물 상자 하나가 유독 무겁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리는 눈치가 아주 빨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등 뒤에 숨긴 거 뭐야?”

 “어? 아, 이거...그냥 잘 어울릴까 해서.”

 “?”

 

 어차피 건네줄 거, 지금 주기로 했다. 선물용 포장지에 겹겹이 쌓여있던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청명한 푸른색의 리본이었다. 정확한 설명을 하자면 그 리본이 달려있는 예쁜 디자인의 머리핀이었다. 유리도 어지간히 마음에 둔 눈치였다. 뺨에 보기 좋게 일어난 홍조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거...나 주는 거야?”

 “...어.”

 

 이상하게 어색했다. 유리에게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깜짝 선물을 준 적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이리 동작 하나하나가 영 삐거덕거리는지 모르겠다. 유리의 눈이 햇빛에 반사된 물결처럼 반짝였다.

 

 “대박, 완전 예뻐. 진짜 나 이거 주는 거야?”

 

 유리는 무려 두 번이나 물어보았다.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그 직후, 눈매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나 아직 생일 아닌데...혹시 생일 선물 땡겨서 주는 거라든지...”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유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마 대충 질끈 묶어서 핀으로 고정시키려고 한 모양인데, 세하가 원하는 모양새는 그런 게 아니었다.

 

 보다 못한 세하가 손을 뻗었다.

 

 “내가 해줄게.”

 “어?”

 “...보고 싶은 모습이 있거든.”

 

 수줍게 말하는 세하의 목소리에서 이상할정도로 강인한 의지가 느껴져서 유리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세하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이런 것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어째 유리보다도 더 능숙함이 물씬 느껴졌다.

 

 ‘그 때 본 거...그대로...’

 

 반묶음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닥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세하는 몽환극장에서 스쳐보았던 유리의 머리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분명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던 머리핀을, 정중앙에 가지런히 고정시켰다.

 

 “됐다.”

 “어? 어디 보자...”

 

 유리는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작은 손거울을 통해 세하의 작품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하이라이트는 뒷부분이었기에 결국은 세하에게 손거울을 넘겨져서 마저 감상해야했지만.

 

 “우와, 세하 정말 손재주 좋구나.”

 “...”

 ‘역시...’

 

 잘 어울린다. 세하는 제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에 자못 뿌듯해했다. 유리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이리저리 셀카를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뿌듯함은 이미 선을 넘어선 듯 했다. 세하는 투박하지만, 그래도 진심이 가득 담긴 – 어쩌면 장막 너머에서 보았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 말을 꺼냈다.

 

 “잘 어울리네.”

 “응? 진짜? 그럼 앞으로 매일 이렇게 하고 다닐까?”

 “아니야, 가끔 해도 돼.”

 

 그냥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을 뿐이니까. 왜 이런 즉흥적인 선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로 – 유리는 세하를 몽환극장에서 전혀 ** 못한 듯 하니까 – 는 자그마한 비밀로 하기로 했다.











③ 190428

 세하는 자신이 왜 이 곳에 있는지에 대해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아무런 까닭도 없이 상당히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오는 아늑한 방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홀로 남겨졌다는 표현이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이 표현이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와는 반대로 세하는 손님용 의자에 한껏 늘어진 채로 몸을 기댄 상태였다. 고개를 살짝 올려보니 고급스럽게 생긴 서재용 탁자가 눈에 보였다. 탁자 위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뒤범벅인 서류가 흩뿌려지듯이 널브러져 있었다.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와 비슷한 강도로 푹신함이 느껴지는 듯 한 검은색 의자는 세하가 바라보는 기준점에서는 이미 등 돌려져 있는 상태였다. 의자의 등받이 부분이 Y축으로 제법 길었기에 의자의 바로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것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마도 세하와 등을 돌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어떤 남자일 것이다.

 남자의 질문은 참 뜬금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무슨 일로 왔냐는 건 도리어 세하가 묻고 싶었다. 그래서 세하는 남자의 질문에 답을 안 한 채, 그냥 자기가 말하고 싶은 말만 했다.

 “저...여기는 도대체 어떤 곳이죠?”
 “상담실이에요.”

 상담실이라며 소개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상담자 – 상담실이라고 하니 가장 어울릴 법한 인물은 그밖에 없지 않은가 – 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불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상담실이라는 걸 바로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의 퉁명스러운 목소리, 등을 기댄 채 면담자의 얼굴조차 ** 않는 태도에서 곧장 상담실이라는 것에 연관이 지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남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마음속에 담긴 비밀 하나 정도는 내뱉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과는 달리 지금의 당신은 아주 불친절한데요?”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누구나 감히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게 하는 것이 이 상담실의 목적입니다.”

 일반화된 상담실과는 다르다는 말인가? 세하의 침묵에 남자는 여상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마지막 설명을 끝맺었다.

 “오히려 당신에게는 잘 된 일이 아닙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나’ 는 당신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당신’을 나도 모릅니다. 어떤 비밀이든지 쉽게 터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나요?”
 “...”

 좀 궤변이긴 하나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세하였다. 세하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그것도 좋을지도 모르죠.”
 “그럼 털어놓으세요. 당신의 말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꼭 털어놓고 싶었던 속내를요.”
 “...그런 거 없어요.”

 세하는 그냥 의문이었다. 그런 고민들 한두 개는 가졌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 이 장소 안에서는 그런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런 사소한 것이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자기가 어째서 이 상담실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 혹은 이 상담실로 오기 전까지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기억마저도 없었다.

 무언가 엄청난 것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한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세하는 그걸 등 돌려있는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이상해요.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애초에 저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요?”
 “그야 당신이 직접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전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아쉽게도 당신에게는 없는 그 기억이 저한테는 있습니다.”

 아주 상담실 문 박살을 낼 정도로 두드려댔잖아요. 남자의 대꾸에 세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런 포악한 짓을 했다고?! 세하는 숨을 헙, 들이마셨다. 그런 거 기억에 당연히 없다. 애초에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리는 더더욱 없었다. 이상한 상담실과 이상한 상담사. 그제야 든 생각은 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세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손님이 일어나는 인기척이 들렸는데도 상담사의 의자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무튼, 전 빨리 나가야겠어요. 돌아가야 해서요.”

 돌아간다는 말에 오히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돌아간다고요? 그럼 이거 하나만 묻죠. 지금의 당신은 돌아가서 무엇을 하려고 했죠?”
 “그야 당연히...”

 세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의자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단단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억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된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시야가 새하얘져서...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실명에 균형을 잡지 못한 세하가 무너지자, 또 하나의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좀 먼발치에서 들리는 것을 보니 상담사를 자처했던 남자가 드디어 움직인 모양이었다. 또각 또각- 묵직한 갑주 소리가 미세하게 섞여서 들린 것은 착각이었을까.

 남자는 오도카니 세하의 앞에 섰다. 아마 세하를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아쉽겠지만 ‘이세하’ 의 기억은 여기서 끊어져야하지.”

 남자의 말투는 어느새 그 오만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말투로 변질되어있었다. 세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한탄했다.

 왜 이 남자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가 같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지? 세하는 거친 쇳소리로 앞에 있는 영문 모를 남자에게 물었다.

 “너...누구야?”
 “나? 나는 나야. 너는 너고.”

 남자의 반응은 담담했다. 뒤이어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 것은 덤.

 “너는 나를 직접 찾아왔어.”

 네가 담을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넘어서버린 직후였지.

 “도저히...참을 수 없었겠지.”

 미쳐가는 정신 속에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겠지. 깊은 심해로 끌려들어가는 기분, 우주복도 없이 우주 한복판에 떨어져버린 기분, 산소 하나 없는 곳에서 점점 말라져가는 기분...뭔들 표현 못하리.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가 미쳐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남자는 가만히 그 때를 회상했다.

 “넌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아프다고...살려달라고...이 고통 좀 어떻게 해달라고. 누구한테? 나한테. 계속 문을 두드렸잖아. 결국엔 문을 부수고 말았지만.”
 “...”
 “이걸 수천, 수만...무한대로 겪었지. 그리고 깨달은 거야, 너랑 나는.”

 ‘이세하’ 는 이제 없다.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도, 추억도, 마음가짐도, 가치관도...전부 다 점멸되는 것이다.

 “아팠잖아.”
 “...”
 “죽을 만큼 아픈 것을 멈추게 하는 건 이 세상에 별로 없어.”

 죽거나,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약물을 주입하거나. 하지만 이건 그 두 가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라서.

 “다행히도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더 있기는 했지.”
 “...”
 “실제로 해보고 싶었던 거잖아?”
 “닥...쳐.”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면서 세하가 경고했다. 남자는 덤덤했다.

 “솔직히 지금 네가 기억하려고 하는 것들...전부 좋은 것뿐이었을까?”
 “...”
 “아니지, 아니야...그리고 난 경고했다. 이세하는 이미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지금 남아있는 이세하의 인격인 척 하는 너는 그저 찌꺼기일 뿐이야. 그렇지...잔여 물질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까?”
 “...”

 손을 굳이 안 써도 결국에는 사라져버릴, 옛것. 안타깝기는 하다만, 슬프지는 않다.

 “응, 그런 거야.”

 오늘부로 이세하는 죽는 거다. 그리고 새로운 왕이 탄생하겠지.

 “미치광이 왕(The mad).”

 좋은 칭호다. 마음에 쏙 든다.





암광화 되어가면서 미쳐가는 세하 + 리퀘스트










④ 새벽빛이 피어오르며 밤하늘의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2019.04.29)

 새벽빛이 피어오르며 밤하늘의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끝을 향해 걸어가며 사라져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새하얗게 점멸되어, 이제는 개개인의 재기만으로도 되살아날 수 없는 참된 의미의 끝을 달리는 모습만은 이상하게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도 유일무이하게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 감상평이 얼마나 후한 것이냐면, 나는 유한하게 정해져 있었던 시간 속에서도 흥이 돋을 만한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의 유희 정도는 되어도, 그것이 제법 긴 시간이나 나에게 재미를 가져다주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짧은 유한대, 그와 반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무한대의 시간. 이 대비되는 두 시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이만큼의 재밋거리를 찾은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질리지 않을 거 같았다. 그렇다는 건, 또 무료해질 때쯤에는 새로운 곳을 계속 정처 없이 찾아다녀야 한다는 소리기도 했다. 집돌이 속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으레 귀찮아서 포기를 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람들과 나의 시간 감각이 비슷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고심을 하면 언젠가는 ‘찾아보긴 해야지.’ 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이니, 작은 유희거리를 찾은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서서히 대지 위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햇살은 지면 곳곳, 안 비치는 곳 없이 공평하게 빛을 내려주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맞이하는 아침은 참 새롭기도 하다. ‘끝’ 이라는 의미가 어느 이에게는 정말 끝이 나버렸다는 의미기도 하겠지만, 예외적으로 그 끝을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족속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후자다.

 그렇게 길었던 밤은 처음이었다. 길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건물이 불탔다. 먼지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서서히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이 광경을 수백 번쯤 반복하다가 처음으로 나를 막아서는 자들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나와 친숙한 이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아닌 이도 있었겠지. 그 당시의 난 그걸 확인할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사방이 어두웠고 한쪽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르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앞에서의 저런 연유로 역광 덕에 방해자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벤 것이 어떤 이였는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그게 감사할 일이었다. 난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단 한 번도 뒤를 돌아**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것들을 차마 볼 여유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약한 악취미를 가진 사람은 매번 자신의 발걸음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길을 확인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었을 테지만.

 끝에서 끝에까지 도착했을 때의 날은 아직 어둑했다. 내가 이곳으로 올라오자 드디어 새벽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었다.

 서늘하다. 무언가 비어버린 기분이다. 싸늘하다. 무언가 홀가분한 기분이다.

 만족스럽다. 정신없이 일을 치른 느낌인데 생각보다 깨끗하게 정리된 것이 보기 좋았다. 아예 잔해라고 칭할 만한 것도 없이 치워버려서 더 깔끔한 느낌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나는 내려다보았다. 휑하다. 텅 비어버렸다. 도시 전체가 회색으로 가득 차 있다. 흰색과 검은색을 섞으면 나오는 색이다. 꽤 좋아하는 색이다.

 해는 완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이라 하더라도 이미 사라져버린 도시를 화사하게 만들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그 탓에 쓸쓸하기까지 하다.

 난 저 도시에서 사랑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왔다. 아마 그것들은 이미 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다. 먼 훗날, 내가 죽게 되어서 하늘로 올라간다면 그 사랑했던 것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화를 낼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건 앞에서도 한 번 말했지만 먼 훗날의 이야기. 지금은 지나친 감성팔이보다는 이 엄청난 걸 나 혼자 힘으로 했다는 자만심에 흠뻑 취해있고 싶었다.

 프로필 같은 것이 있다면 취미 란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어. 취미는 도시 부수기. 아, 또 특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난 아무래도 적성을 뒤늦게야 찾은 거 같았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검으로 지면을 콩콩 내려치고 있는 내 잇새 사이에서는 즐거운 콧노래 하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 * *



 신서울이 하룻밤 만에 궤멸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도대체 어떤 힘을 가진 괴물이 그런 짓을 벌인 것일까, 하고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신서울을 궤멸시켰다는 괴물은 그 후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몇몇 사람들은 흔한 도시괴담으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폐허가 되어버린 신서울의 사진을 보면 그 의견을 관철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 유니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내렸다. 주된 내용은 신서울은 재기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영광이, 고작 하룻밤 만에 – 몇 시간 만에 – 죄다 무너지고 말았다.





※ 신서울을 무너뜨린 후, 데미플레인에서 자신이 무너뜨린 신서울을 바라보는 암광세하 + 첫문장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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